"취약한 자의 '합의'는 합의가 아니다"...'강릉 노예사건'에 중형 선고

강릉=전효진 기자
입력 2018.10.12 11:51 수정 2018.10.12 17:32
강릉서 벌어진 현대판 노예사건
재판부 이례적인 중형
"미성년자 합의, 진심 아닐 수도"

"범행 내용을 전부 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죄질이 나쁩니다."

11일 오후 2시 20분쯤, 지적장애 모친(母親)이 가장으로 있던 다섯 식구를 ‘현대판 노예’로 부린 최모(여·47)씨 일가가 법정에 섰다. 7년이나 지속됐던 최씨의 범행은 익명의 제보자가 성폭행상담센터에 고발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방청객들은 탄식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법정 최고형’을 자주 언급했다.

피고인석(席)에 서있던 최씨 일가족 3명은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이날 춘천지법 강릉지원 형사 2부(재판장 신용무)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된 최씨와 그의 아들 안모(29)씨에 대해 각각 징역 8년 8개월, 15년을 선고했다. 검찰의 구형량(7년·14년) 오히려 높았다. 지적장애 일가의 자녀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최씨의 남편 전모(49)씨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이웃은 악마였다...지적장애인 가족 7년간 현대판 노예생활
판결문에 따르면, 최씨는 2011년부터 지적장애 3급인 ‘이웃사촌’ 김정실(53·가명)를 다방에 취직시킨 뒤 월급을 가로챘다. 이후 7년간 최씨는, 정실씨가 잡일로 벌어들인 6000만원을 쌈짓돈처럼 썼다. 정실씨 앞으로 나오던 장애지원금 7300만원도 마찬가지였다. 정실씨는 초등학생 수준의 지적 수준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 아들 안씨는 당시 13살이던 정실씨의 큰 딸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2015년부터 정실씨 큰 딸을 성매매로 내몰아 4000만원을 벌어들였다. 이 기간 최씨의 남편 전모(49)씨는 정실씨의 네 자녀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속된 이후 최씨 일가족은 모두 10차례 반성문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내용은 "이미 피해자와 합의가 됐고, 어린 (정실씨) 자녀들 보살펴줬으니 정상을 참작해달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지난 5월 24일 열린 첫 재판에서도 이들은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최씨는 법정에서 "정신적으로 모자란 사람들을 거두어 준 것일 뿐"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며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행내용 자체가 많고, 범행을 저지른 기간 또한 길다"면서 양형이유를 밝혔다.

일반적으로 피해자와 합의가 되면 형이 줄어든다. 그러나 재판부는 최씨 모자(母子)가 미성년 피해자와 합의한 것에 대해 다르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미성년) 피해자의 경제적 상황, 나이 등을 봤을 때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지 못한 채 합의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나이 어린 피해자들이 앞으로도 정신적 충격을 안고 살아갈 것을 고려하면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은 크게 참작하기 어렵다"고 했다.

중형이 떨어지자 최씨 모자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재판부는 두 피고인에게 8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5년 취업제한, 성매매 알선 등으로 얻은 수익(총 4000여만원) 몰수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다만 안씨에 대한 전자발찌 부착명령은 기각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성범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7년의 착취...법원 판결에 한숨 내쉰 큰딸
이날 법정에는 막내를 제외한 정실씨 세 자녀가 배석했다. 지속적으로 성적학대를 당한 큰 딸은 재판부가 판결하는 도중 한숨을 여러 차례 내쉬었다.

"판결이 나왔지만 아이들 상처는 어떤 걸로도 지워지지 않을 거에요. 큰 딸은 지체장애 어머니(정실씨)를 대신해서 가족의 ‘보호자’ 역할도 했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문제는 일가의 생계입니다." 정실씨 일가 사정을 잘아는 지인의 얘기다.

과거에 정실씨 가족들이 살았던 강원 강릉시 한 어촌마을./강릉=전효진 기자
정실씨의 네 자녀는 모두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실씨 다섯 식구들은 ‘노예’처럼 살았던 강릉시 어촌마을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서 지낸다고 한다. 피해자지원센터는 이들이 적당한 거주처를 마련할 때까지 당분간 생활 지원 등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네이버구독하기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