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시장 줄 선 '관광 비자' 중국인… 단속 뜨자 "산책 중"

김승재 기자
입력 2018.10.12 03:00

건설현장 불법 외국인 취업자 법무부 단속현장 동행 취재

11일 오전 4시 30분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력시장. 경광등을 켠 아반떼 승용차를 선두로 25인승 미니버스 2대가 멈춰 섰다. 이어 법무부 직원 30명이 내렸다.

공사장 일자리를 구하러 나온 한국인 50여 명이 환호성을 질렀다. "저 똥개 ××들, 싹 다 잡아가라. 남의 밥그릇 뺏는 ×들 추방해라." 새벽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한국인 구직자들이 건너편 보도를 가리켰다. 중국인 1000여 명이 공사장 일자리를 찾아 줄을 서 있었다.

이날 법무부 직원들은 불법 체류 중이거나 취업 허가 없이 일하려는 외국인을 확인하러 나왔다. 최악의 실업난에 외국인 불법 취업자가 늘어나자 법무부는 "10월부터 건설업 불법 취업 외국인은 한 번만 적발돼도 강제 출국시키겠다"고 했다. 일명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다.

11일 오전 ‘불법고용 근절’ 어깨띠를 두른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사무소 단속반 직원들이 불법 외국인 취업자들을 계도하기 위해 남구로역 인력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시작된 법무부의 집중 단속에도 불법 외국인 취업자의 수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박상훈 기자

법무부 단속 차량이 나타나자 중국인들은 휴대전화부터 꺼냈다. 법무부 단속반 사진을 찍거나 어딘가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어가 유창한 조선족 중국인 5명은 단속반 뒤를 쫓아다녔다. 중국인 근로자를 건설 현장에 공급하는 현장 팀장들이다.

법무부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윤영봉 총괄기획팀장은 "중국인들은 웨이신(微信·위챗) 메신저를 통해 수시로 단속 정보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조선족이 단속반을 따라붙는 이유는 법무부 단속반이 계도 활동만 하는지, 단속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날은 계도가 주(主) 목적이었다. 임진택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사무소 소장은 "1000명이 넘게 밀집한 상황에서 한 명에게 수갑을 채우는 순간 수백 명이 도망가면서 안전사고를 일으킬 우려가 크다"며 "오늘은 계도 활동만 벌이기로 했는데 여기 사람들은 그걸 귀신같이 잘 알고 태평하게 있다"고 했다.

단속하는 날은 인력사무소 주변 골목까지 막고 적발한다. 개별 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경우 단속 인력이 7명 안팎이어서 2~3곳이 모여 합동 단속을 한다. 남구로역 인력시장은 지난 2월 단속반이 20여 명을 적발했다. 인력사무소뿐만 아니라 공사장, 함바집(건설 현장 식당)에 주기적으로 들이닥친다.

단속반은 이날 중국인을 상대로 무작위 신분증 검사를 했다. 3개월짜리 단기 관광 비자를 지닌 한 50대 중국 남성은 "나는 일하러 여기에 온 게 아니라 아침 산책을 나온 것"이라며 화를 냈다. 주변 인력사무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구로동 일대에서 구직 활동을 하는 한족 중국인 90%는 3개월짜리 관광 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공사장에서 불법으로 일한다.

계도 활동을 하던 김대석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사무소 단속팀장이 한 40대 중국 남성의 휴대전화를 낚아챘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영상에는 법무부 단속 차량 번호, 단속 직원들 얼굴이 찍혀 있었다. 난민 신청을 거부당해 이의 신청을 해놓았다는 그는 "신기해서 아내에게 보여주려고 찍었을 뿐"이라고 했다. 김 팀장은 "난민 이의 신청서에 적은 글을 보니 전형적 가짜 난민"이라며 "출입국관리법상 난민 신청자는 체류 기간에 불법 취업을 하더라도 강제 출국을 시킬 수 없다"고 했다.

계도 활동이 이뤄지는 동안에도 중국인 500명이 현장 팀장을 따라 건설 현장으로 떠났다. 처음 법무부 단속반을 환호했던 사람들은 "오늘은 단속이 아니라 계도"라는 이야기에 실망하는 눈치였다. 사흘 연속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는 김창배(57)씨는 "일당 12만원짜리 자리를 7만~8만원 받고도 하겠다는 불법 취업 외국인이 줄을 서니 한국인은 갈 곳이 없다"며 "정부가 일자리 새로 만든다고 힘 빼지 말고, 빼앗긴 일자리라도 되찾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선일보 A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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