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 대신 '제재 해제' 총대 멘 韓 정부

입력 2018.10.11 03:20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0일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응해 취해진 '5·24 조치'를 해제하는 문제를 "관계 부처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5·24 대북 제재 해제 검토를 표명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이날 5·24 해제 검토 발언이 논란을 빚자 '본격적 검토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말이 앞서 죄송하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이날 답변들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유도성 질문에 미리 약속이나 한듯이 나온 것이었다. 강 장관은 "북한 관광 자체가 유엔 제재 대상이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했고 관광객의 물품 구입, 음식점 이용에 대해서도 제재 대상이 아니다라고 적극적으로 답했다. 관광은 유엔 제재의 직접 대상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끌어내 5·24 조치 해제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있는 길을 뚫겠다는 것이다.

5·24 조치는 2010년 북의 천안함 공격으로 우리 병사 46명이 떼죽음을 당한 뒤 정부가 취할 수밖에 없었던 최소한의 경제 제재였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역과 투자를 금지해 연간 최대 3억달러가 북 정권에 유입되는 것을 막았다. 5·24 제재 해제를 검토하려면 당연히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의 인정·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등 최소한의 선행 조치가 있어야 한다. 북은 사과는커녕 '남측 모략 자작극'이라고 했고 천안함 공격을 주도한 김영철은 4월 방북한 우리 기자단에게 '내가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라며 이죽거리기까지 했다.

지금 북을 북핵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낸 것은 전례 없이 강력한 대북 제재 덕분이다. 작년 말 촘촘해진 안보리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망은 유류 1L, 현금 1달러도 북에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올 1~8월 북한의 대중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89.3% 급감했다고 중국 정부가 밝혔다. 중·러가 아무리 '뒷문'을 열어줘도 북 정권으로선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대북 협상 성과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대북 제재만은 지키고 있다. 트럼프 말처럼 대북 제재를 풀려면 북핵 폐기의 결정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북한이 핵탄두와 우라늄 농축 공장에 대해 말도 꺼내지 못하게 막고 있는 지금 한국 정부가 5·24 제재를 풀겠다고 나서면 북핵 폐기를 하겠다는 건가, 북핵 보유를 돕겠다는 건가.

5·24 해제를 언급한 관계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외교 장관이란 사실도 매우 부적절하다. 외교부는 통일부와 달리 한국 정부의 대북 제재 해제가 북핵 폐기와 국제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고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 외교부는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 요구를 미루자"고 하더니, 5·24 제재 해제도 검토한다고 한다. 북핵 폐기의 핵심 사안은 뒤로 미루고 제재부터 풀어주자고 하니 주어를 가리면 북한 외교부의 주장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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