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교황이 평양에 간다면

김기철 논설위원
입력 2018.10.11 03:16
1991년 북한 외무성에 교황 초청 준비팀이 생겼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평양에 오게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김일성은 동구가 무너지고 한·소, 한·중 수교가 진행되자 외교적 고립을 벗으려 교황 평양 방문을 꾀했다. 하지만 아들 김정일은 생각이 달랐다. 교황 방문이 몰고올 후폭풍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김정일의 뜻을 읽은 북한 관료들이 적극 뛰지 않았다. 두 달 만에 외무성 준비팀도 해체됐다.

▶광복 직후 북한엔 성당 57곳과 신자 5만2000명이 있었다. 공산화와 6·25를 거치면서 대부분 사제와 신자는 월남하거나 순교했다. 지금 평양교구는 사제도, 신자도 없는 '침묵의 교회'다. 마지막 평양교구장인 홍용호 주교는 1949년 북한 정권에 체포돼 정치범 수용소에서 숨졌다. 북한엔 조선가톨릭교협회라는 단체가 있고 평양에도 장충성당이 들어섰으나 관제 성당, 가짜 신자들이다. 북한 헌법은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지만 그 말을 믿고 종교를 믿다간 목숨을 잃거나 수용소로 간다. 북에는 김씨 왕조 종교 외에 다른 종교는 체제 위협일 뿐이다.

▶한국 천주교는 북한 신자들을 잊지 않고 있다. 1975년 김수환 추기경을 시작으로 서울대교구장이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직해 이북 동포들이 신앙의 자유를 되찾도록 기도(祈禱)한다. 2015년부터는 북한 지역 옛 성당 57곳 중 한 곳을 정해 매일 기도하는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했다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에게 교황 평양 초청 아이디어를 주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다음 주 바티칸 방문 때 이를 전달할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년 전 카스트로 치하의 쿠바를 방문했다. 쿠바의 변화에 일조한 방문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공산 정권 폴란드를 방문해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 운동을 싹틔웠다. 교황의 폴란드 방문이 동구 공산권 붕괴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양에 간다면 환영할 일이다. 김정은은 국가 이미지를 바꾸고 국제 고립에서 벗어나려고 교황 초청 아이디어에 응했을 것이다. 엄청난 인파를 동원하고 가짜 신자들을 내세워 큰 쇼를 벌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북에 '사랑'과 '믿음'의 공기가 스며들어 간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는 "북한 주민이 진짜로 신을 믿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했다. 어떤 역사적 변화는 그렇게 왔다.


조선일보 A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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