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北의 교황 초청, '불가역적' 종교 자유 허용 계기로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18.10.10 03:14

사실상 종교 자유 없는 북한… 30년째 교회·성당 하나씩뿐
지하교인 '신앙 自由' 얻도록 꾸준히 관심 갖고 요구해야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남북한 간에 굵직한 정치 이슈가 잇따라 진행되고 있다. 평양을 찾은 이들은 변화된 거리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실제로 화면에 비친 평양의 일부 거리 모습은 정상적인 국가 수도(首都)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새로 만들었다는 대동강 수산물식당은 보여도 새로 지은 교회나 성당은 없었다. 북한 전역에 교회와 성당은 여전히 1980년대 말 평양에 문을 연 봉수교회와 장충성당 한 곳씩밖에 없다.

북한은 왜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을 만들었으며 왜 더 이상 교회와 성당을 만들지 않았을까.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 태영호씨의 책 '3층 서기실의 암호'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다. "좋게 말하면 한국의 반(反)정부 종교단체들과의 교류를 확대하려는 의도였고, 나쁘게는 이들을 포섭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의외의 결과가 벌어졌다. 가짜 교회를 만들었더니 진짜 신자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찬송하고 성경 말씀 읽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자 아무리 아파도 자발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진짜 신자'가 생겼다.

북한은 1990년대 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초청하려 했다. 세계적인 사회주의 붕괴에 따른 고립을 탈피하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당시 교황청은 '진짜 신자를 바티칸에 데려오라'고 주문했다. 수소문 끝에 공산화 이전 신자였던 할머니를 찾아냈더니 "한번 마음속에 들어오신 하느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며 감사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당초 북한은 '선전용' 교회와 성당을 주요 도시에 확대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사례를 통해 종교의 무서움을 실감하면서 계획을 접었다고 한다.

몇 달 전 인터뷰한 탈북 음악인 부부는 '신앙 DNA'가 얼마나 생명력이 끈질긴지 보여줬다. 평양음대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인 정요한씨는 할아버지가 장로였다고 한다. 네 살 때 첫 레슨을 받을 때에도 할아버지는 손자의 손을 꼭 잡고 기도를 올렸다. 러시아 유학 마치고 한때 김정일의 총애를 받으며 공산당원 자격도 얻고 승승장구하던 그는 동유럽 방문 길에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탈북했다.

북한으로선 신앙을 간직한 생존자, 신앙 DNA를 물려받은 후손, 가짜 교회에 출석하며 진짜 신자가 되는 주민, 그리고 중국 등 외국을 오가며 선교사를 통해 신앙을 갖게 된 지하교인들을 보면서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탄압해도 절멸(絶滅)되지 않는 신앙인들을 보면서 심각한 체제 위협도 느낄 법하다. 북한이 최근 평양에 화려한 고층건물을 세워 '정상 도시'인 양 내세우고, 장마당을 통해 제한적 시장경제를 눈감아주면서도 새 교회와 성당은 세우지 않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평양 정상회담 후 선언문에서도 종교 자유 이야기는 한 줄도 없었다. 이 선언문을 보면서 북한의 지하교인들은 속으로 통곡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9일 청와대의 깜짝 발표가 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교황의 평양 방문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의 제안에 김 위원장이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화답하는 형식이었다. 북한이 교황을 초청하는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초청하려던 20여 년 전과는 상황도 다르다. 구두(口頭) 초청인 데다 전언(傳言) 형식이어서 북한 주민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으로선 상황에 따라 언제든 접을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한이 기왕 꺼낸 '교황 초청' 카드를 잘 활용하고 관리한다면 중요한 역사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교황 초청'을 북한의 종교 자유를 '불가역적'으로 진전시킬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성당과 교회를 더 세우고, 주민들이 북한 헌법 속에만 살아 있는 종교 자유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물론 첫 숟가락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지금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서는 것도 국제적인 제재와 압박 덕분이 아닌가.


조선일보 A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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