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논란②] NLL 후퇴로 와해된 3군 전력…해병대, 섬에 고립됐다

양승식 기자
입력 2018.09.25 16:30 수정 2018.09.25 19:15
정부는 ‘서해 완충 수역’ 설정 논란이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논쟁으로 번지자 수차례 해명하는 과정에서 논란을 키웠다. 처음에는 서해 완충 수역의 길이가 남북 각각 40㎞라고 했다가 남측 85㎞, 북측 50㎞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특정선(NLL)을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서해 완충 수역과 NLL은 별개의 문제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논란이 계속되자 정부는 추가 설명을 통해 "NLL 최남단에서 우리 덕적도를 잇는 직전거리가 32㎞, NLL 최북단에서 북쪽 초도를 잇는 거리가 50㎞"라며 "둘을 합하면 80㎞가 된다는 의미였으며, 덕적도에서 초도까지 거리가 135㎞라는 건 알고 있었다"고 했다. 폭 53㎞의 NLL 수역은 아예 계산에서 제외하고 수역을 설정했다는 의미다. 국방부는 더 나아가 "서해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 내 북한 해안포는 우리보다 6배, 포병은 8배나 많다"며 "합의를 준수하면 그 지역에서 (북한군은) 사격을 할 수 없다"고 했다. NLL과 관련돼 논쟁의 여지는 있으나 실질적으로 우리 군이 얻어낸 이득이 더 많다는 설명이었다.


송영무(왼쪽) 전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군사분야 합의식에서 서명을 마친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무너진 3군(軍) 합동 전력…해병대, 섬에 고립됐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실질적 이득을 얻었다는 말은 ‘허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신원식 전 합참차장은 본지 통화에서 "서해 완충 수역 일대 북한의 영토는 육지이고, 우리는 서해 5도 등 대부분이 섬이니 당연히 북측 해안선이 길다"며 "문제는 서해 5도 NLL 일대의 방대한 서해 수역을 내줌으로써 우리 군이 그동안 이 지역 방어 유지의 메커니즘으로 삼았던 해병대와 해군, 공군의 복합 군사 작전이 무력화됐다는 것"이라고 했다.

신 전 차장은 "서해 일대의 북한 해군전력은 우리에 비해 열세이지만, 황해도 일대에 배치된 수백문의 장사정포와 연안 미사일이 그 뒤를 받치고 있다"며 "이에 맞서고자 백령도·연평도 일대의 해병대와 해군 함정, 그리고 공군 3군 합동으로 전력 열세를 극복해왔는데, 이번 조치로 3축의 하나인 함정 전력이 무력화됐고, 해병대 전력은 더욱 약해졌다"고 했다.

반면, 이번 조치로 인한 북한군의 실질적 손해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NLL 일대 북한군 전력의 핵심은 구식(舊式) 해안포가 아닌 장사정포와 연안미사일"이라며 "북한의 해안포는 대부분 6·25 당시 쓰던 사거리 20㎞ 이내의 구식포이며 이 구식 포병 전력과 우리 군 전력을 맞바꾸는 건 1만원짜리를 1000만원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북한군은 황해도 장산곶과 웅진반도 일대에 76㎜와 130㎜ 구형 방사포 등을 주축으로 1000여문을 동굴 속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가 이번 서해 완충 수역의 최대 성과로 꼽는 게 바로 이 구식 해안포를 북한이 쓸 수 없다는 것인데 군 전문가들은 "사실상 폐기 직전의 해안포의 진지 문을 닫았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번 조치로 서북도서의 K9 자주포와 스파이크 ER 미사일은 실질적 운용이 제한됐지만, 북한의 장사정포와 연안미사일 전력은 건재하다. 신원식 전 차장은 "해병대를 섬에 고립시킨 꼴"이라며 "서북도서에서 덕적도까지 모든 섬이 고립되면서 인천·평택 앞바다까지 방어선이 없어진 셈"이라고 했다.


백령도에 배치된 K-9 자주포의 모습. 남북 군사합의로 11월1일부터는 백령도에서 K-9 자주포 실사격 훈련을 할 수 없게 됐다. /조인원 기자
◇K9 실사격 훈련 못 하는 해병대…北 훈련은 그대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 측면에서도 우리 군의 전력은 급격히 약화될 전망이다. 현재 서북도서 해병대는 NLL 남측을 향해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스파이크 미사일 등을 쏘는 훈련을 하고 있다. 황해도에 주둔 중인 북한 4군단은 내륙으로 포를 옮겨 사격 훈련을 한다. 11월 1일 완충 수역이 선포되면 해병대는 해상 실사격 훈련을 못 하고 빈 포로 사격 절차만을 익히지만, 북한 4군단은 예전과 변함없이 내륙으로 포를 잠시 옮겨 사격하면 된다. 북측은 평소대로 훈련할 수 있지만, 남측만 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신종우 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차라리 서해 5도와 황해도 북한군 포병 전력을 모두 물리는 합의를 했다면 ‘평화 수역’이라는 구색은 맞출 수 있었을 것"이라며 "훈련에 숙달된 북한의 해안포가 닫아놓은 진지 문을 언제든 열고 서해 5도를 공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군이 기댈 건 오로지 북한의 선의뿐"이라고 했다.


◇"北, 자신들의 ‘경비계선’ 교묘하게 적용한 것"

문제는 현 정부가 NLL을 여전히 ‘분쟁을 부추기는 선’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평화 해역을 조성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지 NLL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NLL 일대에서 얼마나 많은 분쟁이 일어났는가. NLL을 논쟁거리로 삼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 전직 장성은 "그동안 NLL 일대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 것은 북한이 NLL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북한이 NLL만 준수하면 서해는 아무런 문제 없는 평화의 바다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신원식 전 차장은 "이번 합의를 명확하게 NLL 기준으로 했다면 북한은 NLL을 인정해 버린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라며 "그래서 이번 협상을 진행하면서 자신들이 주장해왔던 ‘경비계선’을 적절히 섞어 완충 수역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번 해역 설정을 북측이 주장하는 이른바 ‘경비계선’을 중심으로 분석하면 북측은 60㎞, 남측은 75㎞의 수역을 내준 것으로 나타난다. 신 전 차장은 "북한은 수역을 정할 때 마치 기준선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했고, 우리 정부는 이런 북한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줬다"며 "하지만 NLL 무력화가 전제된 협상이었음이 하나 둘 드러나자, 정부는 꼬인 스텝을 풀기 위해 엉뚱하게 북한식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고 했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은 "북한은 항상 NLL을 없애려고 해왔고 서해 앞바다 쪽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려 했다"며 "특히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어 남·북한 선박 간 분쟁이 일어나면 경비선이 개입하고 NLL 일대는 사실상 상시 분쟁지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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