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논란①] 65년전 유엔군 양보로 그어진 NLL...다시 양보하라는 北

양승식 기자
입력 2018.09.24 18:00
평양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였던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의 후폭풍이 거세다. 논란은 정부가 자초했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지난 19일 군사분야 합의서와 관련해 이른바 ‘서해 완충 수역’을 발표하면서 수역의 길이가 80㎞이며 남·북 양측의 길이가 같음을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취재 결과 이 수역의 길이가 실제로는 135㎞이며 서해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북측은 50㎞인데 반해 남측이 85㎞인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군은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다. 여기에 군 당국자가 "청와대가 추석 때 NLL 포기 논란이 번질까 우려했던 것 같다"고 석연찮은 설명을 하면서 ‘NLL 포기 논란’이 불거졌다.

군 안팎에서는 NLL을 둘러싼 정부의 이번 대응이 안일했다는 게 중론이다. 한 전직 장성은 "NLL과 이로 인해 지켜온 백령도·연평도 등 서북도서는 수도권 방위의 최전선이었고 북한에는 목의 가시 같은 곳"이라고 했다. NLL이 무력화되면 북한군은 바로 인천 앞바다에 드나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퇴임한 송영무 전 국방장관도 "연평도는 적 목구멍의 비수이고, 백령도는 적 옆구리의 비수"라고 강조해왔다.


송영무(왼쪽)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군사분야 합의식에서 서명을 마친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을 배려했던 65년 전 NLL

NLL은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 한 달 뒤 설정됐다. 당시 공산군은 전쟁 전 상태인 ‘38 도선’을, 유엔군은 쌍방이 점령한 ‘현 접촉선’을 휴전선으로 제안했다. 격렬하게 대립하던 양측은 ‘현 접촉선’에 합의하고 이 선을 기준으로 남북 각각 2㎞씩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했다.

문제는 NLL이 당시 이 기준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쟁 내내 제해·제공권을 장악했던 유엔군은 동·서해의 거의 모든 부속섬을 점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유엔군 측 대표는 원활한 협상 진행을 위해 다른 곳은 양보하고 서해 5도(백령·대청·소청·연평·우도)만을 유엔군 통제하에 두기로 정전협정에 명시했다. 이때 서해 5도와 북한 사이의 해상경계선이 명시되지 않아 정전협정 한 달 뒤인 1953년 8월 유엔군사령관이 양 지역의 중간에 NLL을 설정했다.

군 관계자는 "당시 해군력이 궤멸해 전무(全無)했던 북한은 오히려 NLL을 울타리로 유엔군의 해상봉쇄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NLL은 북한의 해상봉쇄를 풀어준 선이었다. NLL 설정으로 인해 NLL 이북의 섬과 해역을 얻은 북한은 해군 함정과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항해·어로 활동을 보장받았다.

◇北, 20년 동안 NLL 이의 제기 없었다

북한은 NLL이 설정된 뒤 20년 동안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가 1973년부터 NLL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북한은 이때부터 NLL을 분쟁화, 무력화하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었다"라며 "그때그때 나오는 내부의 불안을 도발로 국면 전환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북한은 도발 와중에도 스스로 수차례 NLL을 인정해왔다. 1959년 북한 조선통신사가 공식 발간한 ‘조선중앙연감’은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표기했다. 1963년 5월 개최된 군사정전위 회담 당시 북한 간첩선 서해 침투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북측은 "북한 함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간 적이 없다"고 했다. 1984년 우리 측의 홍수 피해에 대해 북측이 수해 복구 물자를 지원했을 때도 양측 호송단이 백령도·연평도 인근 NLL 선상에서 만나 수송 선박을 인계·인수 했다. 1992년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에서도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관활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해 NLL이 사실상 해상 불가침 경계선임을 확인했었다.

하지만 북한은 1973년 10~11월 43차례에 걸쳐 NLL을 의도적으로 침범한 ‘서해사태’를 일으킨 뒤 NLL 무력화 공세를 계속해왔다. 지난 1999년 제1연평해전 직후에는 일방적으로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이른바 ‘경비계선’을 발표했다. 한 군 관계자는 "시작부터 북한을 배려해 양보했던 게 NLL"이라며 "한번 양보받았던 NLL을 다시 한 번 더 양보받지 못할 게 뭐가 있느냐는 게 북한의 심리일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박길우
◇노무현 정권 때 본격화된 국내 NLL 논쟁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NLL 개념이 국내에서 논란이 된 것은 지난 2007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과의 10·4 선언에서 이번에 논란이 된 ‘서해 완충 수역’의 전신 격인 ‘평화협력특별지대’를 추진했고, 동시에 논쟁적 발언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은 쌍방이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며 NLL이 영토의 개념이 아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이 발언은 이후 정치권 공방으로 이어졌다. 이후 NLL 논쟁은 진영 차원의 논쟁으로 정치화됐다. 2007년과 2012년 대선 때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NLL 포기 공방’이 계속됐다. 최근에는 여권에서 평양 합의를 앞두고 NLL과 관련된 ‘사전정지작업’성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친문 핵심인 최재성 의원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가 진전되면 평화 수역과 뱃길, 해주 개발과 북측 서남부의 관문을 이뤄내기 위해 반드시 변화를 시켜야 하는 게 NLL"이라며 "손대지 말라는 말은 무책임과 무지의 극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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