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여론몰이엔 한마디 대응 안 하고 수사 협조하겠다니… 대법원장 맞나"

신수지 기자
입력 2018.09.14 03:07

[사법부 70주년] 판사들 "압수수색 영장 청구하면 발부해주라는 가이드라인이냐"
젊은 판사들도 "실망스럽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의 공세가 날로 거세지는 가운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13일 "수사에 더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자 일선 법관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검찰이 그동안 이 사건을 넉 달가량 수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이 연이어 보도됐다. 검찰은 자신들이 청구한 압수 수색 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 이를 언론에 알리며 "수사 방해를 하고 있다"고 몰고 가는 등 법원에 전례 없는 공세를 취하고 있다.

상당수 판사는 "검찰의 법원 흔들기가 도를 넘었다"고 해왔다. 그런데 그 와중에 사법부 수장이 수사에 더 협조하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판사들 사이에선 "리더십을 잃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한 부장판사는 "판사 수십 명이 검찰청에 불려 가고 판사 사무실은 물론 대법원 청사까지 압수 수색을 당하는 상황에서 사법부 수장이 겨우 '수사 협조'라는 말만 되풀이하다니 실망스럽다"고 했다. 다른 고법 부장판사는 "검찰이 연일 압수 수색 영장 기각과 관련해 언론 플레이를 하는 상황에서 대법원장이 이와 관련해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은 검찰의 여론몰이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6월 15일 이 사건과 관련해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한 뒤 침묵을 유지해왔다. 그 사이 법원이 마치 수사 방해 집단처럼 비치며 코너에 몰렸는데 또 '수사 협조'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부장판사는 "검찰이 영장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탓에 기각이 되는데도 마치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하는 것처럼 외부에 비치고 있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을 하고 있는 영장 전담 판사들로선 힘이 빠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장이 수사 적극 협조를 재공언한 것은 사실상 영장 판사들에게 웬만하면 영장을 발부해주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게 아니냐"고 했다.

검찰 수사 촉구를 외치던 젊은 판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번지고 있다. 한 판사는 "원래 검찰 수사를 촉구했던 의도는 법원 조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명확히 해 의혹을 털고 가자는 것이었다"며 "지금처럼 검찰이 법원 전체를 헤집어놓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또 다른 판사는 "검찰의 무차별 공격으로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도가 땅으로 추락하고 있는데 대법원장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며 "이렇게 리더십이 없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사태가 뻔히 예상됐는데도 법원에 검찰을 끌어들인 김 대법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A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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