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선배 생각하며… 이 악물고 달렸다

송원형 기자
입력 2018.09.14 03:00 수정 2018.11.13 16:59

[2020도쿄를 기다린다] 아시안게임 사이클 4관왕 나아름

"(이)민혜 언니에게 반드시 도쿄올림픽 메달 따는 모습도 보여줄 거예요."

최근 시상식 참가차 서울에 올라온 길에 만난 한국 여자 사이클 간판스타 나아름(28)은 2년 후 각오를 꺼내면서 선배 언니 이름을 먼저 꺼냈다. 이유가 있었다. 나아름은 지난달 31일 아침 아시안게임 매디슨(두 명이 교대로 50㎞를 달리는 경기) 경기를 앞두고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너 보면서 언니가 힘을 많이 얻어. 계속 좋은 경기 보여줘.'

문자의 주인공은 2006 도하,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사이클 금메달리스트 이민혜(33)였다. 나아름의 대표팀 선배였던 그는 2년 전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 나아름은 매디슨 경기에 앞서 열흘간 개인도로, 도로독주, 단체추발 등 세 종목 135㎞를 달리느라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이 악물고 달리다 보니 이가 시려 밥 먹기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나아름은 이민혜의 문자 메시지를 보고 전력을 다한 끝에 아시안게임 4관왕에 올랐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사이클 4관왕 나아름(28)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사이클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노린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나아름. 그는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이라며 “끝까지 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나아름은 '오뚝이 레이서'다. 광저우 대회 포인트레이스 때 다른 선수와 부딪혀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지만 이듬해 월드컵 대회 같은 종목에서 우승했다. 2012런던 올림픽 개인도로에서 세 번 넘어지고도 완주해 13위로 마무리했다. 올해 2월엔 왼쪽 넷째 발가락 골절상을 당해 두 달 정도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 나아름은 "아시안게임 못 나가도 2020년 도쿄 준비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 마음을 비우고 나갔는데 출전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아시안게임 개인도로 경기 하루 전엔 훈련하다 넘어져 어깨 등에 타박상을 입기도 했다.

나아름은 "사이클 시작할 때부터 올림픽 메달이 꿈이었다"며 "도쿄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즐기며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는 개인도로와 단체추발에 주력할 예정이다. 허황된 꿈은 아니다. 나아름은 이번 대회에서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투자를 아끼지 않은 일본보다 좋은 성적을 냈고, 세계선수권 상위 성적을 낸 다른 아시아 선수들도 제쳤다. 나아름은 "스피드와 지구력을 보완하고, 올가을부터 시작되는 월드컵 대회와 내년 세계선수권 준비를 잘하면 올림픽 메달도 가능할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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