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진의 뉴스 저격] '2005년 盧정부의 판단'까지 뒤집은 2012 대법원 판결이 발단

한경진 사회부 기자·법조팀
입력 2018.09.14 03:13

'강제징용 배상' 최종 재판 지연… 외교부와 거래 때문인가, 大法판결 자체의 문제인가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논란이 있다. 대법원을 둘러싼 소위 '재판 거래' 의혹 중 일제의 강제징용 배상 재판에 관한 것이다.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미뤄주는 대가로 정부에 해외 파견 법관의 증원을 요구했다고 보고 있다.

판결이 늦어진 것은 사실이다. 2012년 대법원은 1·2심을 깨고 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했다. 이듬해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일본 기업에 피해자 1인당 8000만~1억원씩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일본 기업은 불복해 상고했다. 재상고심에서 대법원이 같은 판단을 했다면 징용 피해자들은 이미 배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껏 최종 판단을 미뤘다. 논란의 핵심은 그 이유가 '밀실 거래 때문인가, 법적 판단 때문인가'의 여부다.

검찰은 2013년 9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을 압수했다. 이 문건에는 판사의 해외 파견을 담당하는 외교부에 강제징용 소송 과정에서 '절차적 만족감'(재판 지연)을 주자는 내용이 담겼다. 파문을 낳기 충분하다.

하지만 실제로 이 때문에 재판이 지연됐는가는 다른 문제다.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대한 논란이 대법원 내에서도 있었다. "판결이 지연된 본질적 이유는 이전 판결 자체에 국제법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진열 부산대 로스쿨 교수(2014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근무)의 주장도 있다. 그렇다고 대법원이 판결을 다시 뒤집는 것은 보통 망신이 아니다. 국제법과 국내 현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장기 미제'로 남겼다는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1970년대 피해 보상 - 일본 내륙 지역 탄광으로 끌려간 김모씨가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기증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단체 사진이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1975년 한국 정부가 경북 문경에 사는 강제 동원 피해자의 아들 서모씨에게 발급한 미수금 110엔(실제 보상액 3300원) 지급 결정 통지서. 당시 정부는 1945년 이후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 보상금을 1엔당 30원씩 환산했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제공
2012년 대법원 판결의 논리는 명쾌하다. '일제의 한국 지배는 불법이다. 따라서 강제징용은 불법이다. 그러니 배상하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1910년 '한일합병조약'을 비롯해 그 이전 모든 한일 조약이 강제로 이뤄졌기 때문에 무효라는 입장이다. 이 점에서 2012년 대법원 배상 판결의 근거는 정부 입장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1965년 일본과 국교를 재개하면서 서명한 청구권 협정 1조에 따라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 장기저리 2억달러 상당의 물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여부이다. 이것이 배상이라면 그때 끝난 것이다. 배상이 아니라면 배상해야 한다. 2012년 대법원은 배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협정엔 '배상'이란 말이 없다. 자금 지급을 약속한 1조와 '청구권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을 명기한 2조 사이에 연관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에 대가 없이 돈을 주고(1조) 한국은 대가 없이 일본에 대한 청구권을 없앤(2조) 것이다. 2012년 대법원은 이 문구를 액면 그대로 해석해 '일본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협정의 모호함과 대법원의 일차원적 해석이 파문의 출발점이었다.

이 판결엔 여러 문제가 따른다. 일본 자금은 제철소, 고속도로, 댐 등에 투입돼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됐다. 대법원 판결대로 이 자금이 식민지 배상과 연관성이 없다면 오늘 한국의 발전은 일본의 원조 덕분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선대가 겪은 고난의 정당한 대가로 일어섰다는' 국민 상식과 다르다.

다음은 국가 신뢰성의 문제다. 당시 장기영 경제기획원장관은 국회에서 이 자금에 대해 "배상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했다. 2005년 노무현 정부도 일본 자금 중 무상 3억달러는 징용 피해 보상이 감안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판단을 내린 민관합동위원회 공동의장이 이해찬 총리와 이용훈 변호사(14대 대법원장)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도 위원이었다. 2012년 대법원은 역사적 맥락과 실체적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 정부의 공식 판단까지 뒤집었다. '사법권 남용'이란 비판은 이래서 나온다.

1965년 청구권 협정은 구속력이 있는 국제조약이다. 국가가 대립하는 외교 사안을 국내법으로만 결정하는 경우는 없다. 미국 정부도 국제법과 관련된 판결에 대해선 정부의견서(amicus brief)를 내 사법 오류를 막는다. 강제징용 재판에 대한 이전 정부의 '신중 판단' 요청은 같은 절차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법원이 조직 이익을 결부시킨 것은 부당하다. 하지만 이 문제로 인해 2012년 판결이 '정의(正義)'이고 이를 지연시킨 것은 '불의(不義)'라고 단정하는 시각은 위험하다.

원론으로 돌아가 1965년 협정에 '배상' 문구를 담는 데 실패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은 한국을 지배한 과거 자체는 합법이라고 주장한다. 배상을 인정한다면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승전국 미국과 영국은 일본처럼 식민지를 지배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식민지 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셋째 한국이 연합국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미국이 찬성했고 일본도 수용했지만 영국이 반대했다. 연합국 일원으로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전쟁 시기만이라도 배상권을 인정받을 기회를 놓쳤다.

중요한 이유는 경제 발전에 대한 한국의 갈증이었다. 일본은 재산청구권 명목으로도 7000만달러 이상 줄 수 없다고 했다. 경제원조 명목이라면 금액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이게 싫으면 협정을 맺지 말고 식민지 배상을 힘으로 관철할 때까지 국력을 키우면 됐다. 하지만 국력을 키우기 위해선 일본 자금이 필요했다. 이 딜레마에서 한국 정부는 명분을 포기하고 실리를 택했다.

한국만이 아니라 연합국에 속해 배상권이 인정된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도 배상 대신 경제협력을 택해 금액을 올렸다. 각자 사정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어떤 나라 법원도 배상 명목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다시 배상하라고 판결하지 않는다.

정부, 강제징용 피해자 7만여명에 6200억 위로금 지급
1977년까지 1차로 준 건 92억뿐

피해 당사자는 개인이다. 그런데 국가가 협정을 통해 이들의 배상청구권을 없앨 수 있을까. 2012년 대법원은 "없앨 수 없다"고 했다. 2013년 일본 정부도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청구권) 협정에 의해 구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 법원이 징용 소송을 받아들이면서도 패소 판결을 내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당초 한국 정부는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국가 협정으로 일괄 처리됐다고 했다. '무상 3억달러'에 피해 보상의 성격이 있는 만큼 이 자금 중 상당액을 피해자 구제에 사용해야 할 책임이 한국 정부에 있다고 했다.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에 "보상금을 국가 자격으로 청구하니 개인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처리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피해자를 대신해 자금을 받은 한국 정부가 징용자의 피해 보상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자금을 거의 국가 경제에 투입했다. 1977년까지 피해자에게 돌아간 금액은 92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부의 전략적 선택이 엄청난 결실을 거두면서 징용자의 희생은 가려졌다. 문제가 드러난 것은 2005년 노무현 정부의 한일회담 문서 공개 이후였다. 정부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다시 위로금을 지급했다. 사망자 1인당 2000만원, 부상자 최대 2000만원, 생존자 의료 지원금 연 80만원 등을 지원했다. 이때 피해자 7만2631명에게 지급된 위로금은 6200억원에 달한다.


조선일보 A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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