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청와대의 '윽박지르는' 방식이 문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입력 2018.09.14 03:17

'국가가 시장을 이긴다'는 정부 핵심부 생각은 과도한 국가 개입과 규제 확대 낳아
의도한 國政 효과 내려면 민간의 창의·자율성 존중하며 국민 설득하고 同意 구해야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주택은 시장이 (국가를) 이길 수 없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며칠 전 한 말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해 정부가 강력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말로 보인다. 국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국가의 절대적 힘과 능력에 대한 믿음에 기초해 있다. 국가의 힘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과거 '전지전능'해 보이던 국가의 모습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한때 국가는 정말 못 할 것이 없었고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에 착공해 1970년 7월에 완공했다. 불과 2년 5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지금이라면 2년 5개월 동안 공사 구간 토지 수용도 마무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당시 국가가 민간 분야보다 훨씬 강력했고 국가의 강압적 권력이 시민사회를 억누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국가의 힘으로 민간 영역을 억누르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정책 담당자의 인식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이게 나라냐."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국가의 무기력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가졌던 생각이다. 당시 국가는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했고 효과적으로 대처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오늘날 우리 국가의 민낯 그대로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민간 분야의 창의성과 효율성이 국가를 앞지르고 정보화로 의사 소통과 정보 교환이 일반화한 오늘날 안보·외교·치안 등 일부를 제외하면 국가가 '시장을 이기고' 자기 의도대로 끌고 나갈 수 있는 정책 영역은 매우 제한적이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이념 차원에서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보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서구 정치에서 나타난 대로 우파는 시장의 자율과 효율을 강조하며, 좌파는 국가의 개입과 형평을 중시한다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국가의 역할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이라면 '국가의 개입에 대한 비판은 신자유주의로 돌아가라는 것이냐'는 반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국가 개입 문제는 서구의 경험과 같은 관점에서 평가하기 어려운 역사적 특수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국가가 지나치게 강했다. 해방 후 우리는 일제 치하에서 식민지 지배를 위해 만든 강압적 국가기관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그 유산 위에서 권위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정보·치안 기구의 확대가 이뤄졌다. 또 6·25전쟁과 냉전을 거치면서 군(軍) 기구의 확대, 반공 체제 유지를 위한 공안 기구가 강화됐다. 국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발전 국가 시대에는 관료제가 확대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국가 기구는 계속 과도할 정도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이런 특성은 민주화 이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마다 행정 개혁을 시도했지만 관료는 늘었고, 과대 성장한 국가는 세계화·민주화와 민간 영역의 눈부신 발전에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 깊숙이 개입하고 통제하고 있다. 규제 개혁이 힘든 것도 과대 성장한 국가의 존재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국가 개입 문제는 교조적 좌우 이념 문제가 아니라 권위주의 시대, 일국 자본주의 시대의 유산과 관련이 있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은 민주화·세계화 차원에서 해소돼야 하며, 개입이 아니라 '플랫폼'으로서 국가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가 갖고 있는 국가의 능력에 대한 믿음, 국가 개입의 정당성에 대한 신념은 구체적 정책 추진 과정에서는 '윽박지르는 방식의' 과도한 국가 개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또다시 불가피하게 관료제의 강화, 규제 확대로 이어지게 된다. 과거에 국가가 머리카락 길이와 스커트 길이, 유행가 가사 하나까지 개입했다면 오늘날에는 전기료에, 통신료에, 원가 공개에, 직원 채용에, 입시까지 각종 영역에서 과거와 비슷한 '윽박지르는'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다.

그동안 각종 정책에서 정부가 의도한 효과를 낼 수 없었던 것은 국가의 힘,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주화·세계화 시대에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려 하기보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려고 하거나 민간 사회를 윽박지르려는 태도로는 의도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변화한 시대에 맞게 민간 영역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존중할 줄 알아야 나라를 올바르게 운영할 수 있다.



조선일보 A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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