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원 내면… '삼촌'이 학폭 가해학생 혼내드립니다

박상현 기자 이영빈 기자
입력 2018.09.12 03:01

학폭위 제역할 못하자… 심부름센터 대행 서비스 성업

학부모 김모(47)씨는 이달 초 서울의 한 '학교 폭력 전문 심부름센터'를 찾았다. 지난 8월 고등학교 2학년인 김씨의 딸(17)이 동급생 8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자 상담을 받기 위해서다. 가해 학생들은 오후 3시부터 다음 날 오전 3시까지 12시간 동안 김씨의 딸을 놀이터와 노래방으로 끌고 다니며 구타했다. 김씨의 딸이 가해 학생의 전 남자친구와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였다.

김씨도 처음에는 학교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학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사건 발생 보름 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렸다. 가해 학생 중 2명은 퇴학, 1명은 전학 조치됐다. 나머지 5명은 사회봉사 처분이 내려져 시간을 채우면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고 한다.

김씨는 "딸을 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고 했다. "가해자가 버젓이 다니는 학교에 아이를 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재심을 청구해 학폭위 결정을 번복하기도 쉽지 않았다. 고민하며 학교 폭력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를 검색하다 심부름센터의 존재를 알게 됐다. 김씨는 "심부름센터에서 가해 학생들을 찾아가서 타일러줄 수 있다고 해서 견적을 요청한 상태"라고 했다.

학교 폭력 피해자를 고객으로 하는 전문 심부름업체가 성업하고 있다. "학폭위의 솜방망이 처벌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피해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재판에 유리한 증거를 모으기 위해 폭행 현장 사진을 찍거나 가해 학생 부모의 직장에 찾아가 난동을 부리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학폭위처럼 학교 차원의 자율 조치를 하거나 경찰 고소 등 법적 제재를 하는 대신 부모가 사적(私的) 제재를 하는 셈이다.

이런 심부름센터에는 여러 보복법을 골라 담은 '패키지 상품'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 한 심부름업체는 '삼촌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다. 큰 덩치에 문신한 30~40대 남성들이 학교 폭력 가해자의 집과 학교에 찾아가 위협을 하는 것이다. 업체는 "신분을 '피해 학생의 삼촌'이라고 하고, 학교에 물건을 전달해주면서 가해자에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했다. 2주 일정의 경우 하루 50만원을 받는다.

교육청 민원이나 재판을 염두에 두고 증거물을 확보해주기도 한다. 서울 구로구 한 업체는 학교 폭력이 주로 이루어지는 장소를 미리 들은 뒤 인근 고층 건물에 올라가 고화소 카메라로 폭행 현장을 찍어주고 40만원을 받는다. 이 증거물을 학교에 직접 들고 가 "제대로 조치하지 않으면 교육청에 민원을 넣겠다. 원만한 해결을 당부한다"며 학교 측을 회유한다고 한다.

경기도 안성시의 한 업체는 가해 학생의 부모를 위협한다. 퇴근 시간에 맞춰 이들을 붙들고 피해자의 상처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직장에 당신 자녀가 다른 학생을 괴롭힌다는 소문이 나도 괜찮겠냐"고 협박하는 식이다. 1인 시위처럼 피켓을 들고 회사 앞에 서 있거나, 회사 로비에 "학교 폭력 가해자 부모가 이 회사에 다닌다"고 소리치며 드러눕기도 한다. 업체 측은 "피해 학생 부모들이 직접 나서면 어른 싸움으로 번질까 봐 업체를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폭력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학교 측의 관행이 이런 사적 제재를 키웠다고 주장한다. 학폭위는 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열려야 하지만, 교사·학부모회장·법률가·외부 전문가 등 참석자가 시간 조율을 해야 하기 때문에 회의 소집에만 통상 보름이 걸린다.

하지만 불법적인 보복에 대한 우려도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적 제재는 또 다른 폭력일 뿐, 공식 절차인 학폭위를 개선·보완해가는 방향으로 학교 폭력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A12면
조선일보 구독이벤트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