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국가 기억이 몰살당해" 2000만점 중 90%가 잿빛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안상현 특파원
입력 2018.09.05 03:01

국립박물관 화재에 국민들 분노

3일 오후(현지 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시내 광장과 국립박물관 앞에 수천 명의 시민이 모여들었다. 시위대는 전날 발생한 국립박물관 화재 참사에 대해 "(화재는) 예고된 비극"이라며 "정부의 부패와 무능이 박물관을 불태웠다"고 규탄했다. 일부 시위대는 현장 확인을 요구하며 박물관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에 진압되기도 했다.

브라질 정부와 박물관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루이스 두아르테 박물관 부관장은 "화재 발생 위험이 상존하는 건물이었는데도 정부는 시급한 설비 보수를 위한 비용 보조 요청조차 외면했다"고 했다. 그러나 세르지우 레이타우 브라질 문화부 장관은 "이번 화재 원인은 잘못된 관리 때문"이라고 했다.

국립박물관은 화재로 지붕이 없어지고, 잿빛만 남은 처참한 모습이 됐다. 이번 화재는 박물관 소장품 2000만 점 중 상당수를 불태웠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폐관 이후 발생한 화재라 사상자는 없었지만 소장품의 90%가 재가 됐다. 현지 신문 '폴하 데 상파울루'는 "화재가 국가 기억의 중요한 부분을 몰살시켰다"고 전했다.

1818년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개관한 이 박물관은 남미 최대의 자연사 박물관이다. 불타 없어진 200년 역사의 박물관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간 화석인 1만1500년 전 화석도 있었다. 1975년 브라질 동남부 지역에서 발굴된 25세 여성의 두개골 화석 '루지아(Luzia·사진)'다. 브라질 국민 사이에서 '최초의 브라질인'이라는 애칭과 함께 사랑을 받았다.

기원전 1세기 화산 폭발로 사라진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 것으로 여겨지는 벽화와 1850년대 브라질로 흘러들어온 그리스·로마 유물 700여 점도 모두 사라졌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발견된 4000년 된 남성의 미라와 1~3세기 이집트 '케리마 공주' 미라 등도 모두 불타버렸다. 80만년 전 서식했던 13m에 달하는 대형 초식 공룡 막사칼리사우루스 화석과 14m 거대 육식 공룡 옥살라이아 퀼롬벤시스 화석 등 여러 공룡 화석도 소실됐다.

겨우 살아남은 유물은 1784년 브라질에서 발견된 벤데고 운석 정도다. 무게 5.36t의 이 운석은 세계에서 가장 큰 운석 중 하나다.


조선일보 A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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