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탈원전하는데...중국 "2027년에 원전 최고강국 되겠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입력 2018.08.10 15:47
국무원, 3단계 원전 표준 강화 가이드라인 발표...ISO⋅IEC 잇따라 중국 기술 국제표준 채택
터키 “중국, 적극적인 원전 건설국가” 평가... 3번째 원전 중국 3세대 표준 기술 채택 관측

한국이 탈(脫)원전 정책을 펴는 가운데 중국이 2027년까지 원전 국제표준 강국 선두에 서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중국이 고속철도, 5G(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드론 등 첨단산업에서도 차이나스탠다드(중국표준)의 세계화에 속도를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정부망에 따르면 국무원(중앙정부)은 ‘원전 표준화 업무 강화와 관련된 지도의견’을 9일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2019년까지 중국의 원전표준 체계를 더욱 보완해 고도화하고, 2022년까지 중국 자체 원전 사업에 중국 표준 채택비율을 크게 높여 국제영향력과 인지도를 뚜렷히 높이며, 2027년까지 원전 표준 강국의 선두에 올라 국제원전 표준화 영역에서 선도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3단계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 국가에너지국에 따르면 중국에서 운영중인 원전은 38기(3700만kW)이고 18기(2100만kW)를 건설중이다. 각각 세계 4위, 1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파키스탄 등 해외에도 8기(670만kW)를 건설중이다.

가이드라인은 “원전 표준화가 중국 원전 안전과 지속발전을 위한 중요한 보장인 동시에 원전 해외진출을 촉진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며 “원전 대국에서 원전 강국으로 가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식 원전의 세계 표준화가 해외 수출에 속도를 내기 위한 포석인 셈이다. 가이드라인은 기본원칙의 하나로 국제협력을 통한 수출 지원을 꼽았다. 이를 위해 국제표준기구를 비롯 주요 국가와 원전 표준 국제협력을 단계별로 추진키로 했다.

대중(對中) 강성 ‘매파’로 알려진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중국 원전이 미국 기술을 탈취해 고도화를 이룬 대표 사례라는 주장을 펴왔기 때문에 중국의 원전 국제표준화에 미국 당국이 어떤 식으로 대응에 나설지 주목된다. 운영중인 원전이 가장 많은 나라는 현재 미국이다.

♢ 원전 표준 세계화 가속 페달 밟는 중국

중국이 원전 표준 세계화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중국 남부 선전에 있는 원전 /블룸버그
중국 원전 표준의 세계화는 이미 시동이 걸린 상태다. 지난 2월 국제전기위원회(IEC)는 상하이핵공업원이 주도한 지진시 원전 운행 중단과 관련한 표준 63186을 참가국의 100% 지지로 승인했다. 당시 중국 언론들은 중국이 원전 국제표준 ‘참여자’에서 ‘선도자’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한국 등 8개 주요 원전국가의 전문가 13명이 표준제정에 참여했다.

중국핵공업그룹이 원전 설계, 운영, 유지보수 등 3개영역에서 주도한 표준도 국제표준화기구(ISO) 표준으로 채택됐다고 이달초 증권시보 등 중국언론들이 전했다. 중국이 주도한 첫 ISO 원전 관련 표준이다.

중국 원전표준의 세계화에는 중국의 3세대 원자로 화룽(華龍)1호가 선두에 섰다. 2016년 중국 최대 원전 개발업체 중국핵공업그룹(CNNC)과 중광핵그룹(CGN)이 합작 설립한 화룽국제핵전기술유한공사도 중국의 3세대 원자로 화룽(華龍)1호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화룽1호는 CNNC와 CGN이 각각 프랑스 기술을 기초로 독자 개발한 100만㎾급 3세대 원자로인ACP1000과 CAR1000을 2014년 국가에너지국의 요구로 합친 공통 표준이다. “다섯 손가락도 주먹을 쥐어야 힘을 쓸 수 있다. 원전이 해외에 나가려면 우선 중국 내 표준을 통일해야 한다”(리커창 중국 총리)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CNNC와 CNC가 현장에 적용하는 화룽1호 기술에 일부 차이가 있어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합작사 설립이 “화룽1호 시장 개척에 큰 힘이 될 것”(신화통신)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4월엔 국가에너지국이 국가표준화관리위원회와 함께 ‘화룽1호 국가 중대 공정 표준화 시범 실시방안’을 내놓았다. 향후 4년간 화룽1호의 국내 건설과 수출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가압수형 원자로 표준체계를 보완하고 고도화하기로 했다.

화룽1호는 이미 2015년 푸칭(福淸)원전 5,6호기와 팡청강(防城港)원전 3호기 건설에 처음 적용되기 시작했다. CNNC가 2015년 착공한 파키스탄 카라치 신규 원전에도 화룽1호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터키가 3번째로 짓는 원전에도 화룽 1호가 채택될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의 파티스 돈메즈 에너지 자연자원부 장관은 “중국과 함께 터키의 3번째 원전을 개발할 계획”이라며 “중국은 믿을만한 원전 기술이 있고, 원전을 적극적으로 건설하는 국가중 하나이며, 기술 이전 방면에서 더욱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고 러시아 스푸트니크뉴스가 8일 보도했다. 터키는 이명박 정부 당시 원전 수주를 추진했던 주요 원전시장중 하나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带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사업을 통해 원전 해외수주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핵공업그룹은 일대일로 국가들과의 원전 협력이 3조위안에 이르는 시장을 직접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중국 에너지연구회의 우신슝(吳新雄) 이사장은 에너지 13차 5개년 규획(2016~2020년)을 인용, 2020년까지 중국 발전에서 원전 비중이 현재의 2%에서 4%로 높아지고, 2030년에는 원전 발전량이 1.5억kW로 늘어날 것이라며 30여년의 발전을 통해 중국 원전이 ‘추격’에서 ‘함께 뛰는 단계’를 지나 ‘세계를 선도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9월 중국의 기술로 영국에 원전이 지어진다는 소식에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 원전 기술이 선진국 시장에 진입한다고 평가했다. /인민일보 캡처
♢ 나바로의 중국 원전산업 공격, 편견인가 통찰인가

나바로 국장은 저서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에서 “중국으로 간 기업들이 자국(미국)을 벼랑 끝으로 내몰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사망 보증서에 서명했다”며 웨스팅하우스를 순진무구한 사례로 지목했다. 그는 “웨스팅하우스가 기술이전 계약으로 중국 고객에게 7만 5000건이 넘는 문서를 넘겨줬다”며 “이를 통해 급성장하는 중국 원전시장에서 입지를 굳힐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중국에서 건설되는 원전의 50% 이상이 웨스팅하우스에서 훔친 기술을 기반으로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홍콩 명보에 따르면, 지난달 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빈 방중에 맞춰 열린 중·러 원전협력 서명식에서 중국 국가에너지국과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 로사톰은 200억위안(약 3조4000억원) 규모 원전 협력안에 서명했다. 이번 협력안은 중국 랴오닝성 쉬다바오 원전 3, 4호기와 장쑤성 롄윈강 톈완 원전 7, 8호기에 러시아제 신형 원자로 VVER-1200을 채택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최종 사업 규모가 1000억위안 규모로 양국 원자력 분야 사상 최대 규모 사업이다.

쉬다바오 원전은 1, 2호기에 이미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원자로를 채용하기로 했고 나머지 4기도 같은 원자로 채택이 유력했다. 한 원전에는 동일한 기술의 원자로를 채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명보는 "중국이 이 같은 관례를 뒤집는 바람에 미국은 러시아에 원전 수주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부터 상하이-베이징노선을 달리고 있는 새 고속철 부흥호. 평균 시속 350㎞다. /중국철로총공사 사이트
나바로 국장은 웨스팅하우스가 실제론 일본 도시바 계열로 일본 기업의 상당수가 중국의 강제 기술 이전 조항 탓에 피해를 본 경험이 있다며 고속철도를 사례로 들었다. 중국은 올해로 고속철도 개통 10주년이 됐지만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을 제치고 세계 최대 고속철 국가로 부상했다. 나바로 국장은 “고속철도를 개발한 일본과 유럽기업은 빠르게 발전하는 신흥시장 진입을 기대했지만 그 기술을 도입한 중국이 몇년안에 자신들을 배신하고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해 두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고속철도는 중국이 전자상거래, 모바일결제, 공유자전거와 함께 중국의 신(新) 4대 발명으로 자평할만큼 급성장했다. 중국 철로총공사는 시속 350㎞로 달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2세대 고속철도 푸싱(復興·부흥)호를 1318㎞ 길이의 베이징-상하이 노선에서 2017년 9월 21일부터 운행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을 일주일 앞둔 2008년 8월 1일 베이징-톈진(天津) 노선으로 출발선을 끊은 중국의 고속철도는 10년새 운행 노선 거리가 총 2만5000㎞로 늘어 전 세계 고속철 노선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지금까지 고속철로 실어나른 연인원만 70억명이 넘는다. 중국은 2020년까지 이를 3만㎞로 연장할 계획이다. 중국은 4종 4횡 고속철도망을 완성한데 이어 전국의 현 지역까지 이르는 8종8횡 고속철도망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8종 8횡이 완성되는 2030년이면 고속철 노선이 4만5000㎞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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