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서울시, 이 물 정말 마셔도 됩니까?

안영 기자
입력 2018.08.11 03:00

야외 음수대 현장조사 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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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비둘기 한 마리가 야외 음수대 수도꼭지에 부리를 넣어 물을 마시고 있다. ②지난 8일 오후 5시쯤 뚝섬한강공원 야외 음수대에서 한 남성이 발을 올려놓고 씻고 있다. ③지난 7일 잠실한강공원 야외 음수대에 ‘세탁·샤워 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④강아지 한 마리가 음수대에 올라앉아 물을 마시고 있다. / 뉴시스·장련성 객원기자·안영 기자·인터넷 캡처
#1. 최고기온이 35도를 넘은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서울시 주최 '한강몽땅 여름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은 더위를 쫓기 위해 광장 중앙에 있는 두 대의 아리수(서울시 수돗물) 야외 음수대로 모였다. 그중 갈색 시추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강모(22)씨는 음수대 위에 강아지를 올리더니 수도꼭지에 대고 얼굴을 씻기기 시작했다. "음수대에서 강아지 샤워를 시키면 어떻게 하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질책에 "다들 이렇게 한다"며 왜 문제가 되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옆에서 다가온 동네 주민 이모(78)씨는 음수대에서 은박 돗자리에 묻어 있던 라면 국물을 씻어냈다. 다들 황당하게 바라보니 "개를 씻기는 것보단 낫지 않으냐"며 씽긋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물을 마시러 온 시민들은 "찝찝하다"며 발길을 돌렸다.

#2. 지난 7일 오후 4시 서울 송파구 잠실수상택시 승강장 앞 음수대. 자전거를 타던 황모(52)씨는 음수대로 다가와 세수하기 시작했다. 땀 젖은 머리까지 시원하게 감고 나서야 "빨래와 목욕만 안 하면 되지 않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옆 수도꼭지에서 입을 대고 물을 마시던 인부 윤모(57)씨는 "입을 대고 마셔도 되느냐"는 지적에 "수도꼭지야 물로 씻어내면 어차피 다 깨끗해진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8일 오후 5시 뚝섬유원지역 2번 출구에 있는 음수대에서 만난 장기를 두던 주민은 발을 올려놓고 씻기도 했다. 그 사이로 비둘기 두 마리가 유유히 앉아 부리로 수도꼭지를 연신 쪼아댔다.

위생 위험지대에 놓인 아리수 음수대

'음수대(飮水臺) - 손이나 발을 씻지 말아 주세요'

서울 시내 1378곳에 있는 야외 아리수 음수대에는 위와 같은 문구가 붙어 있다. '세탁·샤워 금지'라고 적힌 곳도 있다.

그러나 본지 기자가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확인한 여의도·반포·잠실·뚝섬 한강공원과 탑골·장충단·구로거리공원 일대 7개 공원 음수대에서 이 같은 주의 사항이 지켜지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물을 마시는 사람보다 ▲머리를 감고 ▲발을 씻고 ▲빨래를 하고 ▲애완견을 씻기는 모습들이 더 자주 목격됐다.

이런 행위 때문인지 음수대 청결 상태도 엉망이었다. 수도꼭지에는 라면 국물, 치킨 양념 등 음식물 찌꺼기부터 반려동물 잔털, 전단 조각 등이 붙어 있었다. 한 수도꼭지 제조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관리되지 않는 수도꼭지는 야외에 있을 경우 세균 번식도가 기준치보다 100배 이상 되기도 한다"며 "특히 레지오넬라균 등이 문제를 일으켜 폐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음수대에 조류 등의 접근이 쉽다는 것도 물의 위생 상태를 위협한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아리수 마시는 비둘기' 사진이 화제가 됐다. 비둘기가 음수대 수도꼭지에 부리를 대고 물을 마시는 모습이다. 사진에는 '아리수를 마시면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까지 붙었다. 유해 조류이자 병원성 세균 감염 경로로 알려진 비둘기들과 사람이 수도꼭지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상하수도협회 신미령 이사는 "비둘기가 수도꼭지에 부리를 댄다면 위생상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음수대에 입을 대거나 동물을 씻기는 등 세균 번식이 우려되는 경우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市 "시민의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이렇게 아리수 음수대에서 시민들이 금지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목격되지만 제재할 방법은 없다. 한강사업본부 여의도안내센터 관계자는 "쓰레기 투기나 무단 주차 등을 제재할 수는 있어도 음수대 사용을 관리할 방법은 없다"며 "시민 의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특별시 한강공원 보전 및 이용에 관한 기본조례 제17조'에 보면, 15가지 금지 행위로 무단 주차, 쓰레기 투기에 소음·악취·음주, 무단 경작·무단 상행위, 무단 야영·취사·낚시 행위, 애완동물 목줄 미착용과 배설물 방치 행위 등은 명시돼 있지만, 음수대 관련 사항은 없었다.

음수대 관리 주체도 불명확하다. 음수대 기둥에는 '수도 관리는 수도사업소', '시설 관리는 구청 공원녹지과'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구로구청 공원녹지과 담당자는 "구내 음수대 설비 관리는 공원 청소 담당자에게 일임된 부분"이라며 "수질검사를 맡고 있는 강서수도사업소에서 혹시 수도꼭지 관리도 하고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에 문의한 결과, 수질검사는 권역별 수도사업소가 맡고 있고 설비 관리는 근린공원의 경우 각 구청, 한강공원의 경우 한강사업본부 소관이라고 답했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관리가 잘 되지 않는 건 당연했다. 각 지역 수도사업소는 수질검사 결과에 대해 음수대 기둥마다 별지를 붙여 기록해 두었다. 5가지 검사 항목이 정해져 있고 항목별 기준에 따라 적합 여부를 판정한 다음 검사 날짜와 검사자 이름까지 명기해둔다. 아리수 홈페이지에 공지된 바로는 수질검사 빈도는 분기별 1회. 반포 한강공원 세빛둥둥섬 건너편 광장 앞 음수대는 지난 5월 25일 마지막으로 수질검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시설관리 항목과 청소 위생상태 결과에 대해선 음수대 어디에서도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강사업본부 녹지관리과 관계자는 "'몇 월 며칠 소독이나 청소를 했다'는 내용의 기록 대장은 갖고 있지 않다"며 "청소 시 점검 항목에 대한 매뉴얼도 현재로서는 마련돼 있지 않다"고 했다. 관리 인력과 위생 점검에 대한 물음에는 "청소 담당자가 배치된 걸로 알고 있으나, 청소 횟수나 빈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B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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