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칼럼] 문제는 現 정부의 '무능한 국가주의'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입력 2018.08.10 03:17

反動的 국가주의 없애도 경제·안보 제 역할 하는 합리적 국가주의는 필요
민생 경제 허물어뜨린 정책 실패와 권력 집중이 문재인 정부의 '급소'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국가주의' 논쟁이 뜨겁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원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주의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비판이다. 최저임금 인상 같은 정부의 무리한 시장 개입이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간섭으로 시장과 공동체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성장 동력이 약화된다는 고발이다. 문 대통령 임기가 4분의 1이 지났음에도 악화 일로인 우리네 살림살이를 빗댄 통렬한 질타가 아닐 수 없다.

탈(脫)국가주의 담론은 사회적 의제를 선점했다. 국가가 경제와 사회를 통제하고 시민들을 억누르는 것을 뜻하는 국가주의(Statism)의 틀에 문재인 정부를 끌어들인 건 효과적이었다. 파시즘이 우익 국가주의이고 스탈린주의가 좌익 국가주의인 상황에서, 국가주의로 명명된 쪽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붕괴 직전이던 한국당이 몸을 추스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국가주의 논쟁엔 순기능이 있다. 막말과 색깔론이 가치 논쟁으로 바뀌면 정치의 품격이 높아진다. 하지만 담론 투쟁이 진정한 정책 경쟁으로 승화되려면 개념을 정확히 사용해야 한다.

탈국가주의론은 너무 방만하고 모호하다. 역대 보수 정부와 진보 정부를 싸잡아 국가주의라고 비난하는 과잉 논리는 국가주의를 공허한 개념으로 만들어 현실을 오도한다. 경제와 사회 분야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국가주의라면 필수적 분배 조치와 복지 확대조차 국가주의의 혐의를 받을 수 있다. 시민 안전과 국가 안보를 위한 정부 행보도 국가주의로 비판받게 된다. 터무니없는 논리다. 게다가 한국당 자체가 강력한 국가주의의 전통을 계승한 정당이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한국적 국가주의의 원형이며 한국당은 그 아들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박정희식(式) 국가 주도 성장을 공격한 것은 자기부정에 해당된다. 국가주의 청산은 한국당의 뿌리를 지우라는 말과 같다.

정치인의 언어는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민심을 읽고 시대 흐름을 짚는 정치 담론만이 힘을 갖는다. 탈국가주의론이 일정한 호소력을 갖게 된 배경이다.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소득 주도 성장이 허구적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백히 폭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암울한 경제 현실은 문재인 정부의 무능한 국가주의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청와대 정부'로까지 불리는 문재인 정부의 권력 집중과 정책 실패가 국가주의 비판의 소구력을 높였다.

국가가 시민 위에 군림하는 반동적 국가주의는 폐기되어야 한다. 국가가 경제와 사회를 지도하는 국가중심주의도 극복되어야 한다. 한국 역사에는 권위주의적 거대 국가의 관행이 깊게 뿌리내렸다. 그 결과 국가가 악(惡)으로 정죄되기 일쑤였다. 국가 때리기를 정의의 잣대로 여기는 잘못된 행태조차 생겼다. 그러나 모든 국가주의가 나쁜 건 아니다. 시장과 시민사회와 동행하면서 제 일을 하는 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합리적 국가주의는 정당하다. 국가주의 비판 자체가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는 근본 이치를 되새겨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는 촛불의 최대 화두였다. 하지만 촛불의 이상주의는 정의(正義)와 힘의 복합체인 국가의 진실을 경시했다. 힘과 도덕을 통합한 21세기 민주공화국을 지향하는 이성적 국가주의는 강력히 옹호되어야 마땅하다.

보수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앞세우고 진보는 '큰 정부, 작은 시장'을 역설한다. 그러나 이는 사이비 대립 구도에 불과하다. 한 국가가 선택할 정부와 시장의 크기에 시공을 초월한 모범 답안이 있을 리 없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 한국적 '제3의 길' 정립이 시급한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급소는 결코 국가주의 자체에 있지 않다. 정의와 유능함을 함께 갖추어야 국가다운 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의 근본은 경제와 안보에 있다. 민생 경제를 허물어뜨린 진보 정권의 무능과 국가의 무능력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주홍글씨다.

세계 곳곳의 실패 국가들은 국가가 사라진 무정부 상태가 지상의 지옥임을 증언한다. 제주도 난민 사태를 야기한 예멘 내전과 유럽의 난민 홍수를 초래한 시리아 내전이 절규하는 그대로다. 경제와 안보가 결여된 정의는 공허하며, 정의가 부재한 경제와 안보는 맹목적이다. 결국 나라다운 나라는 정치적 동물인 인간의 근본 터전이다. 한국 사회에 유행하는 국가 경시 풍조는 성숙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협한다. 국가주의를 공격하면서 부국강병의 민주공화국을 흔드는 지금의 세태보다 아둔한 것도 드물다. 이성적 국가 없이 합리적 시장과 시민사회는 불가능하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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