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의원 外遊 '꼼수 면죄부'

박상기 정치부 기자
입력 2018.08.09 23:24
박상기 정치부 기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달 26일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후 유관 기관의 부당한 지원을 받아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의심되는 공직자가 261명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엔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 38명이 포함됐다. 권익위는 "이들이 피감(被監)기관 돈으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의혹이 있다"며 38명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은 채 문 의장에게 따로 명단을 통보했다.

국회는 처음엔 자체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38명의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을 조사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누가 위원장을 맡아 동료 의원들을 조사하려 하겠느냐" "피감기관 돈으로 출장 안 갔다 온 의원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말들이 나왔다. 조사 방침은 흐지부지됐다.

일부 의원들은 오히려 권익위를 타박했다. 출장은 피감기관의 해외 활동을 감독하는 차원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공무(公務)인데, 권익위가 생트집을 잡아 망신을 줬다는 것이다.

국회가 8일 내놓은 대책도 사실상 공식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다. 국회 대변인과 여야(與野)는 "앞으로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이 피감기관 돈으로 해외 출장을 가는 것을 금지하고, 국외활동 심사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허용 여부를 심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의혹이 불거진 38명에 대한 조사 계획은 빠졌다. 국회 관계자는 "해당 피감기관에서 (의원들의)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소지에 대해 조사 중이고, 문제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문 의장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조사 책임을 피감기관에 떠넘긴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출장은 대부분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한국국제교류재단(KF) 등에서 돈을 댔다. 문 의장도 지난해 한국국제협력단 돈으로 3박 4일 베트남 출장을 다녀왔다. 국회 설명대로라면 이 기관들 스스로 "국회의장과 의원들에게 불법 수준의 접대를 했다"고 자백해야 의원 징계가 가능하다.

두 달 뒤면 국회 국정감사를 받아야 하는 피감기관이 어떤 조사 결과를 내놓을지는 자명하다. 국회 내부에서조차 "해당 기관들이 잘못했다고 인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권익위 조사는 올 4월 김기식 당시 금융감독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 돈으로 출장을 갔던 게 논란이 되면서 시작됐다. 26만여명이 "의원들의 갑질·외유성 출장 실태를 전수조사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했다. 당시엔 여권이 김 원장 방어에 급급하더니, 이번엔 여야가 한목소리로 "큰 문제 없다"고 변명하고 있다. 반성은 없이 피감 기관을 이용한 '꼼수 면죄부'를 받아내고 큰소리치는 게, 올해 헌정(憲政) 70주년을 맞은 한국 국회의원들의 현주소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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