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중국 LCD는 어떻게 한국을 넘어섰나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입력 2018.08.03 03:15

日 꺾은 '韓 전략' 차용, 14년 만에 세계 1위 돼
이공계 석·박사 배출 우리 8배… 반도체마저 이렇게 역전되나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지난해 삼성·LG디스플레이를 따돌리고 세계 1위 LCD 기업이 된 징둥팡(京東方·BOE)은 원래 중국 정부 산하 군수기업이었다. 1950년대부터 '774공장'이라는 코드명으로 진공관 등을 만들어 중국 군에 납품했다. 1985년에는 베이징시 소속 국유기업으로 재편돼 일본과 합작으로 브라운관 부품 등을 생산했다.

징둥팡은 한국 기업 인수를 계기로 LCD 사업에 진출한다. 2003년 유동성(현금 흐름) 위기에 직면한 하이닉스반도체가 LCD 사업부문인 하이디스를 매물로 내놓자, 왕둥성 징둥팡 회장이 중국 정부를 설득해 3억8000만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2005년에는 베이징에 5세대 LCD 생산 라인도 구축했다. 합작으로 기술을 찔끔찔끔 배우느니 통째로 원천 기술을 확보하자는 전략이었다.

징둥팡의 LCD 사업 도전은 무모한 측면이 적잖았다. 하이디스의 한국인 기술자 1명에 징둥팡 직원 15명을 묶어 LCD 기본부터 가르쳤을 정도로 기술 인력이 절대 부족했다. 생산이 제대로 됐을 리가 없다. 투입량 대비 정상 제품 생산 비율을 의미하는 수율(收率)이 60% 정도에 불과했다. 수율이 90% 이상으로 올라가야 수익이 생기는데, 기준치에 턱없이 못 미쳤다. 생산 라인을 묵히면서 해마다 수천억원씩 적자가 쌓여 정부 지원으로 근근이 버텼다. 중국 언론으로부터 '돈 태우는 기계'라는 조롱도 들었다.

징둥팡은 이런 상황에서도 지방을 중심으로 생산 라인을 계속 확장했다. 이번엔 첨단 산업 유치를 원하는 지방정부를 끌어들였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21조원이 넘는 돈을 빌려 쓰촨성 청두와 안후이성 허페이 등지에 6개 생산 라인을 건설했다.

징둥팡이 제품 양산에 성공한 것은 2010년 하반기였다. 하이디스를 인수한 지 7년, 첫 생산 라인을 깐 지 5년 만으로 크게 늦었다. 그러나 막상 양산이 본격화되자 '규모'의 힘이 작동했다. 삼성·LG디스플레이보다 훨씬 싼 단가로 중국 내수시장을 장악했다. 2012년에는 첫 흑자를 냈고, 2014년에는 세계 5위 디스플레이 업체로 올라섰다.

LCD는 기술보다 돈이 더 어려운 업종이다. 생산 라인 투자와 기술 확보에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데 반해, 투자 자금 회수에 10년 가까운 긴 시간이 소요되는 탓이다.

징둥팡이 한국을 넘어선 가장 큰 원동력은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이었다. 징둥팡은 총 11개의 생산 라인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들어간 돈이 총 3000억 위안(약 50조원)에 이른다. 한국이 일본 LCD 산업을 추월할 때 쓴 불황기 투자 전략도 그대로 갖다 썼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으로 삼성·LG디스플레이가 투자를 주저할 때 과감하게 차세대 생산 라인에 투자해 두 업체를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다른 근본적인 요인도 있다. 한 국내 LCD 업체 고위 인사에게 우리 LCD 산업이 다시 중국을 앞설 수 있을지 물었더니 "불가능하다"고 했다. 든든한 정부 지원과 자금력, 거대 내수시장 등도 큰 장벽이지만, 무엇보다 인재 확보에서 중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징둥팡은 한 해 6000~7000명의 신입사원을 뽑는데, 그중 60%가 석·박사 인력이다. 베이징대, 칭화대 등 명문대 출신도 대거 포함돼 있다. 중국이 한 해 배출하는 이공계 석·박사 인력은 30만명가량으로, 작년 우리나라 이공계 석·박사 졸업자(3만7700명)의 8배 수준이다. LCD에서 시작된 한·중 산업 역전 현상이 반도체 등 다른 업종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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