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현수막 전쟁… 덕수궁 돌담 뒤덮다

정우영 기자 김슬기 인턴기자(서울대 국사학 졸업)
입력 2018.07.14 03:02

정문부터 시청역 2번 출구까지 50m 거리에 현수막만 17개

13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부터 지하철 시청역 2번 출구 앞까지 50m에 걸쳐 현수막 17개가 걸렸다. 가로수에 걸린 현수막이 덕수궁 담장을 가릴 정도다.

지난 3일 보수 단체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국본)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분향소 명목으로 불법 천막 4채를 설치한 후 이런 일이 빚어졌다. 서울 도심의 덕수궁 앞에서 '천막 전쟁'에 이어 '현수막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돌담이 안 보입니다 - 12일 서울 중구 덕수궁 담장이 현수막으로 뒤덮여 있다. 지난 3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와 보수 단체 태극기혁명운동본부는 분향소 명목의 천막 4채를 설치하고 그 주위에 서로의 주장이 담긴 현수막을 내걸었다. /남강호 기자
현수막 17개 가운데 12개는 민노총 측이 걸었다. 현수막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쌍용차 해직 근로자 분향소를 방문했던 사진과 함께 '문 대통령은 해고자 전원 복직, 손해배상 철회 약속을 지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쌍용차 불법 파업 당시 경찰 진압을 '국가 폭력' '살인 진압'이라며 정부 사과와 책임자 처벌, 해고자 전원 복직도 요구했다. 일부 현수막은 가로 6m 세로 2.5m로 어른 키보다 큰 것도 있었다.

국본 측도 현수막 5개를 내걸었다. '평화협정 서명은 독소다. 미군 철수 적화 통일 바라는 김정은의 미소다'라는 현수막이 이어 '문재인은 적화통일 정책으로 남한 경제를 고의적으로 죽이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도 있다.

양쪽 모두 영어 현수막도 설치했다. 민노총 측은 'Government apology'(정부 사과), 국본 측은 'North Korean murderer and dictator Kim'(북한 살인자·독재자 김정은) 같은 문구를 걸었다. 덕수궁을 찾는 외국인들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덕수궁에는 한 해 160만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다.

주무 관청인 서울 중구청은 "현수막이 설치된 사실은 알고 있지만 두 단체가 신고한 집회 물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철거 등 조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에는 집회 관련 현수막은 신고·허가 없이도 설치일부터 30일간 걸 수 있다. 중구청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의 민원 답변 사례를 보면 과거에도 30일이 넘어도 집회가 이뤄지는 경우에는 관련 현수막은 신고·허가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자진 철거를 유도할 수 있지만 강제로 철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쌍용차지부는 다음 달 1일, 국본은 다음 달 11일까지 천막 주변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한 상태다.

앞서 두 단체는 지난 3일 덕수궁 담장 앞에 천막 4채를 세웠다. '민노총이 대한문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한 국본 회원 10여명은 3일 새벽 1시쯤부터 '연평해전, 천안함 전사자 분향소' 명목의 천막 3채를 쳤다. 민노총 쌍용차지부는 지난달 27일 숨진 채 발견된 김주중(49)씨를 추모한다며 천막 분향소를 세웠다.

덕수궁 일대에 천막이 설치된 것은 5년 만이다. 2012년 4월 쌍용차지부는 같은 자리에 '분향소'를 세웠다. 다른 좌파 단체들이 합류해 농성하던 천막촌은 1년 만인 2013년 4월 중구청에 의해 철거됐었다.


조선일보 A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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