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國防長官'은 무엇을 해야 하는 자리인가

입력 2018.07.13 03:17

송 장관도 많은 압박을 받아왔을 게 틀림없다, 軍 체질은 청와대 핵심들과
코드가 맞을 수 없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

최보식 선임기자

송영무 국방장관은 자신의 자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자리인지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식사 전 얘기와 미니스커트는 짧을수록 좋다" "여성들이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같은 말실수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다. 이는 개인으로서 품격(品格)과 관련된 것이고,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그는 해군참모총장까지 했으니 여러 능력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전역 후 문재인 후보 캠프에 들어간 것도 따질 사안은 아니다. 1년 전 인사청문회에서 방산업체와 관련된 고액 자문료, 음주 운전 무마 의혹 등이 제기됐지만, 한 여당 의원은 "국가 장래를 위해 '송 충무공'이라는 별명을 가진 한 영웅을 폄하하지 말라"고 옹호했다.

좀 더 고결하게 살아왔으면 좋겠지만, 일반 국민은 장관에게서 그런 인격을 찾기보다 자신의 직무에 책임감을 갖고 최고로 일해주기를 원한다. 국방장관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 군(軍)의 지휘 감독자다. 그가 어떤 판단과 결정, 처신을 할 때 이게 첫째 기준이 돼야 한다. 이를 벗어나 다른 걸 아무리 열심히 한들 "국방장관답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국방장관 자리가 흔들린다는 느낌을 처음 받은 것은 지난 3월이다. 그가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을 만나 "4월 말에 남북 정상회담이 있을 예정이라 핵잠수함 같은 미국의 전략 자산을 사령관 계실 때까지는 한반도에 전개 안 하셔도 된다"고 말했다. 직후 국방부로 문의가 빗발치자 '농담'이라고 해명했다.

한 달 뒤 판문점 회담 만찬에서 김정은이 술을 따르자 그는 두 손으로 술잔을 받았다. 언론에는 한껏 기분이 고조된 그의 모습과 발언이 보도됐다. 북한 인민무력상이 만찬에 참석하지 않은 것과는 대비됐다. 물론 그날 '봄이 왔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으니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서는 자신이 무슨 장관인지를 그는 잊어버린 듯했다. 당시 일본 방위상이 "북한은 과거 역사를 보면 긍정적 태도를 보이다가 갑자기 무력 조치를 취했다"고 하자, 그는 "계속 속았다고 해서 미래도 계속 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북한과 협상하고 평화를 만들겠느냐"고 반박했다. 외교장관이나 통일부장관도 공식 석상에서 그렇게 발언한 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북한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꺼이 모든 핵을 내놓을 거라는 기대는 옳았는가.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가. 협상은 그런 희망을 갖고 해야겠지만, 국방장관은 가장 낙관적인 상황에서도 국가 안보를 대비해야 하는 자리다. 정부 안에서 김정은에 대한 의심을 가장 늦게 내려놓는 장관이 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군(軍)을 보면 이미 '종전 선언'이 울려 퍼진 것 같다. 설령 종전 선언이 돼도 선언만으로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그도 알 텐데, 한·미 군사훈련은 잇따라 연기·중단되고 있다. 최전방 지역의 군부대 시설 공사 일정은 보류됐고, 북한 장사정포에 대비한 K-9 자주포 진지 공사는 중단됐다. 향후 최전방 부대를 후방으로 옮기는 것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한다.

올해부터 양산하기로 한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천궁' 사업은 중단 위기에 놓였다. 다연장 로켓포인 '천무' 사업도 중지 검토에 들어갔다. 주력 전차 '흑표' 또한 그렇게 될 것 같다. 작년에 창설된 '참수 부대'를 위한 특수전 헬기 사업은 중단됐다. 국산 무기 개발 및 생산 사업은 한번 중단되면 재개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국방부가 1조9000억원에 달하는 해상 초계기 6대를 미국에서 사들인다고 얼마 전 발표했다. 일선 군인들은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하는가.

송 장관도 많은 압박을 받아왔을 게 틀림없다. 군(軍) 체질은 지금 청와대 핵심들과 코드가 맞을 수 없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주문에 너무 맞추려고 하니 그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는 원래 했던 말을 거두고, 사과하고, 완전히 반대 입장의 말을 하게 됐다. '구설 잦은' 장관으로 보도된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 파동도 그런 경우다. 그는 넉 달 전에 보고받았다. 헌재(憲裁)의 탄핵 심판 이후에 국가 행정 기능 마비를 불러올 과격 폭력 시위를 염두에 두고 작성된 문건이었다. 소위 책상머리 작업에 불과했다. 필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그도 별문제가 없는 걸로 판단했다.

재작년 촛불 집회 상황을 떠올려보라. 박근혜 정권은 거의 넘어간 상태였다. 군에서 그런 문건을 갖고 있다 해도 요즘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지시할 군인도, 수행할 군인도 없었다. 현 정권에서 이를 '쿠데타' '내란 음모 미수죄'라며 부풀려 군(軍)을 정치적 제단에 올려놓으려 할 때, 이번만은 그가 자신의 자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자리인지 돌아보길 바란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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