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회담장서 北에 바람 맞은 美, 핵협상도 이런가

입력 2018.07.13 03:19
미국과 북한은 12일 판문점에서 미군 유해 송환 협의를 갖기로 했으나 북한 측이 나타나지 않았다. 미측이 북측에 전화를 걸자 느닷없이 "격을 높여서 장성급 회담을 갖자"고 했다. 이런 외교 회담도 있는가 싶다. 유해 송환은 미·북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했고 김정은이 즉석에서 동의해 합의문에 담겼다. 트럼프는 이를 핵심 성과로 꼽았고 미국은 유해를 넘겨받기 위한 나무 상자 100여개를 판문점에 마련해 놓고 기다려 왔다.

한 달 전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이 70년 만에 손을 맞잡았을 때만 해도 북핵 폐기, 미·북 관계 정상화 같은 각종 현안이 속도감 있게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합의문은 황당하다고 할 정도로 내용이 없었고 엉뚱하게 미국 대통령 입에서 '한·미 훈련은 도발적' '주한미군 데려오고 싶다'는 폭탄 발언이 나왔다. 북핵 폐기와 상관도 없는 유해 송환도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상한 일은 계속 이어졌다. 정상회담 바로 다음 주로 예고됐던 후속 회담은 3주나 늦춰져 지난 6~7일 열렸다. 하지만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김정은을 만나지도 못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런 일을 당하고도 '회담이 잘됐다'는 식으로 분칠했다. 그때 김정은은 감자 농장을 시찰했다고 한다. 미국 언론은 '김정은이 폼페이오 대신 감자를 만났다'고 한다. 북측은 폼페이오가 떠난 뒤 "미국이 강도 같은 요구를 했다"는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그래도 트럼프는 일이 잘되고 있는 것처럼 포장한다.

그러다 유해 송환 협상에서 북한에 바람을 맞는 희한한 광경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유해 송환 문제만 이렇겠느냐는 것이다. 11월 중간선거에 목을 맨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해 진전이 없어도 있는 듯이 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중국 보험을 들은 김정은은 배짱이다. 정부는 '종전 선언' 추진에 앞서 공·수가 전도된 이 이상한 상황의 실체가 무엇인지부터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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