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을 망친 환각제' 카트, 한국도 청정지대 아니다

한경진 기자
입력 2018.07.12 14:15 수정 2018.07.13 12:14
클럽서 추행, 마약류 섭취한 예멘 난민 신청자
법원 “예멘에서는 합법” 감형
예멘 남성 90%가 즐긴다는 ‘카트’

알파이라(가명·31)씨는 지난 2014년 1월 한국에 입국 직후 서울출입국관리소에 난민 신청서를 냈지만, 그 해 7월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았다. ‘(예멘에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알파이라씨는 다른 난민 신청자들처럼 법원에 행정 소송을 냈다. 그는 “예멘에서 군인으로 활동하며 알카에다 조직과 싸우는 임무를 맡게 돼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 친형이 알카에다 조직원 2명을 총으로 살해한 사건 이후 보복을 피해 한국으로 피신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도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심 재판부는 “군인으로서 알카에다에 맞서 싸웠다는 증거가 없고, 친형의 살해사건은 농지 소유권 등 사적 분쟁으로 인한 것”이라며 “인종·종교·국적·정치적 의견 등이 아닌 사적 다툼으로 인한 위협을 이유로 난민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은 2016년 5월 확정됐다. 알파이라씨는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출국유예기간 중에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

◇여성 추행 혐의로 기소 상태에서 ‘카트’ 복용
2017년 1월 어느 새벽, 그는 경기도 의정부 유흥가에 있는 한 클럽을 찾았다. 그곳에서 새벽 1시30분부터 30분 동안 20대 여성 4명의 가슴‧엉덩이‧다리를 만지거나 볼에 입을 맞추고 “원나잇 하자”고 속삭였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그해 3월 그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출국유예기간이 끝나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된 알파이라씨는 여전히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말, 대전에서 만난 ‘불상자’에게 마약성 식물 ‘카트(Khat)’ 500g을 10만원에 구입했다. 그는 대전의 빌라에서 카트를 씹어 먹고, 남은 식물을 소지하고 있다가 지난해 7월 검거됐다.

알파이라씨는 결국 강제추행, 마약류관리법,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 3개 혐의로 형사 재판을 받게 됐다.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고, 올해 2월 2심에선 징역 1년으로 감형됐다.

2심 법원은 형을 깎아주면서 “예멘에선 카트 섭취가 합법이므로, 피고인이 마약 범행에 대한 위법성 인식이 비교적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피고인이 대한민국에 불법체류하게 된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법원이 ‘범행에 대한 위법성 인식이 희박하다’고 판단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예멘 남성 90%가 섭취하는 ‘미약한 마약’

향정신성 식물 ‘카트’를 씹고 있는 중동인. 카트는 에티오피아, 예멘 등에서 불법이 아닌 허가된 오락이다. /위키피디아
예멘에서는 매일 오후 독특한 장면을 볼 수 있다. 길거리의 남성들이 벽에 기대어 앉아 한쪽 볼에 식물 잎사귀를 가득 물고, 잘근 잘근 씹는 모습이다. 에멘 여행담이나 기사에도 “잎사귀를 입에 가득 물고 씹으며 나른하게 누워있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카트는 향정신성의약품인 메스케치논 유사체의 원료인 ‘카티논’ 성분이 함유된 식물이다. 씹으면 씹을수록 환각 물질이 체내에 스며들면서 흥분감, 행복감, 쾌락감을 유발한다고 한다. 배고픔을 잊게 하고,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주장도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의 이와 잇몸이 파랗게 물든 것은 카트를 오래 섭취해왔다는 증거다.

예멘에선 카트를 씹는 일이 오랜 관습이며, 합법이다. 가정집마다 카트 씹는 방을 따로 만들어놓는다. 햇볕이 잘 드는 쪽에 카트 전용방을 내는데, 카트는 따뜻한 곳에서 씹을 때 효과가 더 커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제보건기구는 예멘 성인 남성의 90%와 성인 여성 25%가 카트를 즐긴다고 했다.

그런 카트는 예멘 경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카트 경작·판매 수익이 예멘 국민총생산(GDP)의 25~30%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농민들이 단가가 낮은 곡물 대신 카트 재배를 선호해 식량 자급율이 낮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 식물을 재배하는데 막대한 양의 물이 들어가 물 부족 국가인 예멘의 기근을 부채질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래서 일각에선 카트를 ‘예멘을 망친 식물’이라고도 부른다. 예멘에서는 ‘카트는 일주일에 3회만 하라’는 식의 ‘카트 끊기 캠페인’도 종종 벌어지지만, 근절 효과는 미미하다.

카트는 ‘중독성이 없고, 담배보다 유해성이 적다’고도 하는데, 이를 반박하는 연구도 최근 들어 공개되고 있다. 카트의 주요 생산국가인 에티오피아, 예멘 등 아프리카, 중동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대다수 국가에서는 마약류로 지정돼 단속된다.


◇영국서 단속하며 전세계로 확산
영국은 과거 카트를 허용해오다 2014년부터 마약류로 지정하고 단속에 들어갔다. 이 때부터 카트의 수출길이 흩어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위험도가 낮은 단계의 마약으로 분류되는 카트는 식욕감퇴, 쾌락성 증진 등의 효능으로 중동 일부 지역에서 근절되지 않고 있다. 사진은 예멘 서부지역의 카트 재배지. /위키피디아
주요 생산국인 케냐·에티오피아 등은 중국·베트남·한국 등 우회 경로를 통해 영국과 미국 등지에 밀수출을 시도하고 있다. 인천지검 강력부는 지난 2015년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카트 700여kg을 보내려던 에티오피아인을 구속했다. 당시 검찰은 국내 한 물류 창고에 보관된 2000여kg의 카트를 발견하기도 했다. 한국도 더 이상 카트 청정국이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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