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집에서 쉬게 두고 아이 둘 데리고 여행… 애들이 매미처럼 달라붙는 그 맛을 느껴보세요"

최원우 기자
입력 2018.07.12 03:28

[아이가 행복입니다] '육아빠'로 통하는 의사 정우열씨

"아빠들도 한번 '육아의 맛'을 보면 달라져요. 사랑하니까 돌보는 게 아니라 돌보면서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정신과 의사 정우열(39)씨는 아이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 일명 '육아빠'로 통한다. 아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진 아빠라는 뜻이다. 남들도 자기처럼 이 재미를 한번 맛봐야 한다고 수시로 강연을 다닌다.

◇엄마·아빠 균형 육아

첫 딸이 태어난 2012년 아내는 직장 생활로 정신없이 바쁜데 남편 정씨는 병원을 옮기면서 중간에 시간이 생겼다. 이직을 조금 늦추고 1년간 집에서 육아의 90%를 도맡았다. 이때 아이에게 정이 푹 들어 다시 병원에 나간 뒤에도 두 아이에게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아빠'가 됐다.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나쁠 땐 울고 보채는 아이가 야속했다. 급기야 여자만 걸리는 줄 알았던 주부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자신의 삶과 육아 사이에 균형을 찾아가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재미를 알아갔다. 이런 경험담을 육아일기로 인터넷 블로그에 올렸는데 엄마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그 후 정씨는 '아빠가 나서면 아이가 다르다'라는 육아 책을 썼다. 지금도 수시로 주 3일만 출근하고 나머지 시간은 애들이랑 보낸다.

정우열(39)씨가 작년 11월 딸 은재(6)양, 아들 포동(5)군과 함께 떠난 일본 규슈 여행에서 자녀들과 함께 아소산 들판을 달리고 있다. 정씨는 “딸이 ‘아빠랑 여행 와서 행복해’라고 말해줬는데, 모든 피로가 녹아내리는 짜릿한 행복감을 느꼈다”며 “그런 게 바로 ‘육아의 맛’”이라고 말했다. /정우열씨 제공

그는 '균형 육아'를 강조했다. 아이 키울 때 부모가 아이 행복에 신경 쓰는 만큼 자신의 행복도 챙겨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는 "그래야 오래간다"며 "부모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제대로 키울 수 없다"고 했다. 부모가 행복하려면 엄마의 몫과 아빠의 몫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엄마 혼자 너무 많이 부담을 지다 보면 몸과 마음이 다 같이 지친다. 그는 "일부 엄마들이 아이가 4~5세 때부터 사교육에 끌리게 되는 것도 '책임감'이 마음을 짓누르고, 그게 다시 불안을 부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직장 생활 등을 이유로 아이 돌보는 고통에선 풀려나 개인 시간을 누리지만, 집에 가도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족한 친밀감을 외부에서 찾다 보면 술이나 취미에 의존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외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아빠한테 시간을 주세요"

정씨는 "이상한 얘기지만 쭉 지켜보니 아빠들이 애 키우는데 못 끼어들게 막는 게 바로 엄마들이더라"고 했다. 믿고 아이를 맡기기엔 대부분의 아빠가 너무 어설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가 육아 부담을 혼자 짊어지면 장기적으론 엄마 자신이 계속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아빠가 육아의 맛을 알고 엄마처럼 '프로'가 될 때까지 조금 배려해줘야 장기적으로 '균형 육아'가 가능해진다.

정씨는 "아빠들이 많이 하는 흔한 실수가 처음부터 너무 힘주는 것"이라고 했다. 많은 아빠가 아이가 어렸을 땐 엄마에게 맡겼다가 아이가 초·중학교 들어갈 때부터 육아에 끼려 한다. 아빠는 그동안 못 쌓은 친밀감을 벌충하려고 시간과 노력을 대폭 투자하는데, 아이는 그런 아빠가 영 어색하기만 하다. 그 모습에 아빠들이 실망해 아이와 가까워지는 것 자체를 포기해버리고 만다.

정씨는 "서두르지 말라"며 "아이와 가까워지는 좋은 방법이 엄마 없이 아빠와 애들만 여행 가는 것"이라고 했다. 아빠가 아이들을 온종일 책임지면서 자연스레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다. 여행이 겁나면 아이와 함께 목욕하기, 아이와 함께 잠자기부터 시도하는 게 좋다. 함께 살 대고 스킨십 하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나와서 아이와 교감이 커진다. 처음엔 아이가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아이가 적응할 때 마법 같은 순간이 온다. 정씨는 "육아의 맛이란 결국 아이와 진한 친밀감을 경험하는 것"이라며 "그 맛을 한번 알면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가 좋아서 아이들을 먼저 찾게 된다"고 했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데, 아이가 안기는 자세가 달라져요. 이거 중독성 있어요. 아이가 매미처럼 착 달라붙는 그 느낌을 맛보면 육아의 맛에서 못 빠져나가게 되죠."


조선일보 A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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