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OECD 한국 보고서, 모두 내 손 거쳐 나와"

파리=손진석 특파원
입력 2018.07.12 03:20

오는 9월 수교훈장 숭례장 받는 랜들 존스 한국경제담당관
대학 시절 서울 등서 2년간 선교… 동네 목욕탕 다니며 한국말 익혀

지난 5일 프랑스 파리 시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본부의 랜들 존스(63) 한국경제담당관을 찾아갔더니 영락없는 한국인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책상에는 '趙恩秀(조은수)'라는 그의 한국식 이름을 한자로 새긴 명패가 놓여 있었다. 책상 뒤로는 한반도 지도와 함께 '가정이 지상의 천국'이라고 한글로 적은 글귀가 걸려 있었다.

미국인인 존스 담당관은 1993년 OECD에서 한국 경제 분석을 맡아 25년간 같은 업무를 해오고 있다. 그는 "조은수라는 이름은 '존스'와 발음이 비슷하다고 한국인 친구들이 권유해서 만들었다"며 "은혜롭고 빼어나다는 의미가 참 좋지 않으냐"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존스 담당관은 승진이 빠른 관리직으로 옮기거나 다른 나라 분석을 맡는 직책으로 이동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게 너무 흥미로워서 한국과의 인연을 끊을 수 없었다"고 했다. "1994년 OECD가 첫 번째 한국 경제 보고서를 만들었어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OECD 가입을 추진한 것이 계기가 됐죠. 올해 펴낸 보고서는 16번째가 됩니다. 그걸 모두 제 손으로 만들었어요.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죠."

프랑스 파리 OECD 본부의 랜들 존스 한국경제담당관 사무실에는 그의 한국식 이름 ‘조은수’를 한자로 새긴 명패와 한반도 지도, ‘가정이 지상의 천국’이란 한글 글귀가 있다. /손진석 특파원

우리 정부는 존스 담당관의 공로를 인정해 오는 9월 '수교훈장 숭례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우방과의 친선에 공헌이 큰 사람에게 주는 훈장이다. 그는 "저와 가족에게 큰 영광"이라고 했다.

존스 담당관이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74년이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해외 선교를 나갔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생소한 나라였죠. 부산을 시작으로 대구, 서울, 광주를 돌면서 2년간 하숙집 생활을 하며 선교 활동을 했죠. 아침마다 동네 목욕탕에 가서 한국말을 익혔습니다." 그는 "광주에서는 '안녕히 가시랑께요'라고 하고, 부산에서는 '어서 오이소'라고 정겨운 사투리를 썼다"며 "요즘 한국인들은 당시에 비하면 사투리를 덜 쓰는 것 같다"고 했다.

미국에 돌아간 존스 담당관은 동북아시아 경제를 전공해 미시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미 국무부에서 잠깐 관료 생활을 한 뒤 1989년부터 OECD에서 일하고 있다. 윤종원 경제수석,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 조동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양수길 전 OECD 대사 등 한국인 학자·관료들과 두루 친하다. 그는 "과장, 국장 때 본 사람이 차관, 장관까지 승진하는 걸 보면 왠지 뿌듯하다"고 했다. 존스 담당관은 죽을 때까지 한국 경제를 손에서 놓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평양을 방문해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마지막 숙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존스 담당관은 OECD에서 일하는 동안에만 우리나라를 40번쯤 방문했다. 숙박 시설이 여의치 않은 정부세종청사를 찾아갈 때는 대전에 있는 모텔에서 숙박하기도 한다. 그는 "40여 년 전 한국의 하숙집과 목욕탕에서 단련됐기 때문에 그 정도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며 웃었다. 그는 평소 아내 조디(61)씨와 함께 파리 시내 한국 식당도 자주 찾는다. 잡채, 삼계탕, 갈비탕이 부부가 좋아하는 메뉴다.

존스 담당관은 가족을 중시하고 조상을 모시는 한국 문화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2020년 OECD에서 정년퇴직한 다음에는 고국에 돌아가 워싱턴 DC에 살고 있는 올해 84세의 노부모를 부양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한국말로 "저도 장남이니까요"라고 했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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