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리, 자신의 피조물을 "없애자" 외쳐

정시행 기자
입력 2018.07.12 03:01

美 월간지 인터뷰

200년 전 나온 SF 고전 '프랑켄슈타인'은 혁신에 도전한 젊은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피조물이 괴물로 진화하자 공포와 혐오를 느끼며 벌어지는 파국을 다룬다. 괴물은 당시 왜곡된 지배 구조와 문명의 위기를 상징했다. 현대 인류의 소통·인식 체계를 지배하는 인터넷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월드와이드웹(www)의 창시자인 영국 컴퓨터공학자 팀 버너스리(63·사진)가 "나는 거대 기업이 정보와 이익을 독점하고 대중을 감시하며 가짜 뉴스가 정치 선전에 이용되는 인터넷을 꿈꾼 게 아니다"고 한탄했다. 최근 발간된 미 월간지 배너티페어 8월호 인터뷰에서다.

버너스리는 지난 3월 터진 페이스북의 개인 정보 유출과 2016년 미 대선 심리 조작 스캔들을 언급했다. 그는 "눈앞에서 핵폭탄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면서 "난 웹이 민주주의와 인본주의 확산에 기여하리라고 생각했지만, 반(反)인권과 빈부 격차를 키운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페이스북은 11일(현지 시각) 처음으로 영국 정부로부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관련 최고 벌금액인 50만파운드(약 7억여원)를 부과받았다. 이 액수는 '페이스북이 5분30초마다 벌어들이는 매출'에 불과하다. 거대 IT 기업에 집중되는 부(富)와 권력에 비해 이를 규제할 법·제도는 턱없이 뒤처진다는 이야기다.

버너스리는 옥스퍼드대를 나와 유럽핵연구소에서 일하던 1989년 인터넷 공간에서 과학자들의 자료 공유를 돕는 통로로 웹 기술을 고안했다. 이 '웹의 아버지'는 세계사에 획을 그은 기술을 1991년 전면 공개하고 특허료 등 일체의 금전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 "웹의 정신은 공개와 공유이며, 국경을 초월한 아이디어의 융합과 협력을 도모하려면 각자 별도의 플랫폼을 만드는 경쟁을 해선 안 된다"(2004년 조선일보 인터뷰)는 이유였다. 그러나 www를 이용해 돈방석에 앉은 건 실리콘밸리의 거대 IT 기업들인 구글·애플·아마존·페이스북 등이었다.

버너스리는 "세계 인구의 절반인 40억명이 자신의 이력서부터 정치적 견해와 유전자 정보까지 온라인에 공유하고 있다"면서 "이런 자발적 정보의 대량 유입과 집중은 매우 강력하고 또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인터넷 정보와 소셜미디어 서비스를 자유롭게 무료로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 없이 찍어 올린 사진을 정교하게 분석해 사람들을 구분해내는 안면 인식 기술, 집 앞 전경이 훤히 노출되는 스트리트뷰 등으로 개인 정보를 광범위하게 감시당한다. 나아가 자신조차 미처 몰랐던 내밀한 성향, 인간관계와 과거 사생활까지 분석해 맞춤형 상업·정치 광고에 노출돼 특정 상품과 정치인을 지지하게 되면서 세계관을 조종당한다는 것이다.

버너스리는 IT 기업들의 정보 독점에 문제를 느끼고 '인터넷 분권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금은 아예 "오염된 www를 버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없애자는 격이다. 대안으로 블록체인 등을 이용한 평등한 정보 공유 플랫폼을 마련해 이용자에게 광고 노출 대신 정당한 사용료를 걷고 가짜 뉴스와 선정적 콘텐츠를 걸러내 처벌하자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뭘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인터넷에 어디까지 의존할지) 적당한 선을 결정할 각오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펜이나 빗자루를 들고 거리로 나가보라"고 말했다. '가상현실의 사슬'을 끊고 '현실'에 충실하란 얘기다.


조선일보 A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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