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與黨선 인사 개입도 덕담?

최연진 정치부 기자
입력 2018.07.12 03:12
최연진 정치부 기자

"결국 안 되지 않았습니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인선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아무 데나 직권남용, 비밀 누설을 갖다 붙이면 안 된다"고 했다. "얼마든지 '업무 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장 실장이) 추천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는 "민정 라인에서 검증 절차가 돌아갔고, 최종 탈락 결정을 했기 때문에 직권남용의 여지는 전혀 없다"고 했다. 장 실장이 곽태선 전(前)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에게 단순히 "지원하라"고 권유했을 뿐이라는 청와대의 해명을 되풀이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안종범 경제수석 등이 각종 인사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터졌을 때는 "직권남용"이라고 맹공격을 했던 것과 180도 달라진 태도다.

곽 전 대표는 지난 5일 "당시 장 실장에게서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이 곽 대표를 좋게 보더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본부장 자리를 두고 청와대와 국민연금이 사전 교감을 나눴다는 얘기다. 그런데 청와대 관계자는 이를 두고 "덕담을 한 것"이라고 했다. 또 "전화로 지원을 권유한 것은 맞지만 심사와는 무관했다"고도 했다.

과거 기금운영본부장에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고교 동문인 홍완선 전 본부장이나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대학 후배인 강면욱 전 본부장이 뽑혔을 때 민주당은 '코드 인사'라고 맹비난했다. 그런데 장 실장 발언은 '덕담'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권은 "(장 실장이 추천했는데도) 검증에서 탈락했다면 내부 인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의미"라고도 했다. '실패한 인사 개입'은 인사 개입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또한 박근혜 정부를 공격했던 논리와는 완전히 거꾸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안종범 전 수석을 통해 공기업인 KT에 인사 청탁을 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로 문체부 공무원에게 사직을 요구한 것도 마찬가지다. 장 실장의 이번 인사 개입 의혹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특히 국민연금 CIO는 국민 노후 자금 635조원의 운용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액은 약 131조원에 이른다. 의결권을 행사하는 국내 기업도 770곳이 넘는다. 그런 중책을 기용하는 데 투명성과 공정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나서 "우린 전(前) 정권과 다르다"고 군색한 변명만 하는 모습이다.

자유한국당은 과거 자신들의 잘못된 행태를 후회하며 "그래서 망했다"고 했다.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눈 감았다가 스스로 무너졌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직권남용 논란이 이 정권은 피해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誤算)이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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