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사물극장] [54] 이사도라 덩컨의 '빨간 스카프'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입력 2018.07.12 03:10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이사도라 덩컨(1877~1927)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집세를 제때 못 낼 정도로 가난한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1세 때 가족과 함께 가축 운송선을 타고 유럽으로 건너갔다. 이사도라의 길들여지지 않는 영혼이 자유롭고 파격적인 춤사위로 터져 나왔다. 러시아와 유럽을 거쳐, 미국의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을 한 이사도라는 '춤추는 여신'이라는 칭송과 '자유를 춤춘 것이 아니라 자유 그 자체였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사도라는 니체 철학과 휘트먼의 시(詩), 러시아의 혁명 시인 예세닌을 사랑했다. 1922년 5월, 이사도라는 18세 연하인 예세닌과 베를린에서 러시아식 결혼식을 하고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예세닌은 술집에서 살았고, 주사도 갈수록 심해졌다. 이사도라는 무용가로서 누릴 수 있는 영예를 다 누렸지만 예세닌의 주벽과 폭력으로 물든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궁핍에 빠진 자신을 위로하는 친구에게 이사도라는 말했다. "걱정 마, 방법이 있겠지. 네가 백합과 과일을 가져왔잖아. 난 백합 앞에서 춤추고, 과일을 바라본 후 먹을 테야." 이사도라는 친구가 선물로 준 길이 2m의 크레이프 천으로 된 스카프를 좋아했다. "이 스카프가 마술을 부리는 것 같아, 메리. 스카프에서 전파가 흘러나오는 걸 느끼거든. 이 강렬한 붉은색을 봐.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 같아." 이사도라는 외출할 때 이 긴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니스의 호텔에 머물던 어느 초가을 저녁, 이사도라는 한 청년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에 나섰다. "난 길 구석구석을 달려갈 테야. 이게 내 마지막 드라이브가 될지라도." 긴 스카프 자락이 땅에 끌리며 자동차 바퀴에 걸렸다. 자동차는 가속도를 내며 출발했다. 그 바람에 이사도라의 목이 급하게 꺾였다. 1927년 9월 14일 오후 9시 30분, 천재 무용가는 목이 부러져 즉사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였다.



조선일보 A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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