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 스토리] ‘탐험가 의사’ 해리스, 태국 동굴 구조 영웅으로

이선목 기자
입력 2018.07.11 15:52 수정 2018.07.11 15:57
태국 치앙라이주(州) 동굴에 갇혔던 유소년 축구팀 단원 13명이 지난 10일 전원 구조됐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태국으로 몰려든 다국적 구조대원 중에는 호주 출신의 ‘탐험가 의사’ 리처드 해리스(53)도 있었다.

마취과 전문의 겸 잠수 전문가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그는 이번 구조를 위한 섭외 1순위였다. 침수된 동굴을 통과할 수 있으면서 생존자들의 상태를 의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적임자였던 해리스는 태국 동굴 생존자 구조 작전의 시작과 끝을 책임졌고, 영웅이 됐다.

태국 동굴 구조 작전에 참여한 호주 출신 마취 전문의 리처드 해리스. /리처드 해리스 페이스북
◇ ‘탐험가 의사’ 해리스…동굴서 숨진 친구 시신 수습 참여

해리스가 동굴 구조 작전에 투입된 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1년 자신의 친구이자 동굴 탐험가인 애그니스 밀로카의 시신을 찾는 작전에 참여했다. 밀로카는 호주 남부 감비아 인근 동굴에서 산소 부족으로 숨졌다. 해리스는 당시 수위가 높아진 8㎞ 길이의 복잡한 동굴을 통과해 밀로카의 시신을 찾았다.

그는 이외에도 많은 동굴 구조 작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매체 나인뉴스는 “친구 밀로카의 죽음을 경험한 해리스는 위험한 동굴 탐험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2011년 호주 남부 감비아 인근 동굴에서 산소 부족으로 숨진 동굴 탐험가 애그니스 밀로카. 해리슨은 밀로카 시신 수습 작전에 참여했다. /애그니스 밀로카 페이스북
해리스는 호주 플린더스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뒤 제임스 쿡대학원에서 항공 의학을 공부한 마취과 의사다. 항공 의학은 비행 중 고공 환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의학이다. 그는 2016년부터 남호주 비영리 의료 기관인 ‘메드스타(MedSTAR)’에서 항공 의학 재활 서비스 부문의 책임자를 맡아 척박한 환경에 고립됐던 환자들을 회복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해리스는 30년 경력의 잠수 베테랑이자 탐험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수십년 간 세계 곳곳의 복잡한 동굴을 탐험했다. 해리스는 2011~2012년 동굴 탐험팀을 이끌고 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피어스강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수심 221m에 있는 동굴을 탐사하기도 했다.

태국 동굴 구조 작전에 참여한 호주 출신 마취 전문의 리처드 해리스가 수중 동굴 탐험을 하고 있다. /리처드 해리스 페이스북
호주의 고난도 잠수 전문가 단체인 오즈텍(OzTek)에 따르면, 뉴욕 탐험가 모임의 회원인 해리스는 호주, 뉴질랜드, 중국 등에서 동굴 잠수 탐험을 경험했고, 내셔널지오그래픽 수중 촬영이나 잠수부가 필요한 영화 작업 등에도 참여했다. 오즈텍은 2015년 해리스에게 ‘동굴탐사 특별공로상(Outstanding Contributions to Cave Exploration)’을 수여하기도 했다.

해리스는 한 동료는 “해리스는 매우 사려깊고 조용한 사람이며, 사심이 없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사람”이라며 “그러나 그와 함께한 모든 여행들은 모험이었다”고 했다.

◇ 휴가 제치고 태국 향해, 구조 작전서 활약…아버지 사망 소식에 ‘비통’

치앙라이의 유소년 축구단 ‘무 빠(야생 멧돼지)’ 소속 선수 12명과 코치 1명은 지난달 23일 동굴에 들어갔다가 폭우로 고립됐고, 이후 열흘 만인 지난 2일 생존이 확인됐다. 이들의 생존 사실이 확인된 후 세계 각국의 동굴 구조 관련 전문가들이 태국으로 향했다. 태국 당국에 따르면 총 90명의 잠수부가 구조 작전에 동원됐는데 이중 절반 이상인 50명이 다른 국가 출신의 잠수부였다.

2018년 7월 3일 태국 치앙라이주 탐루앙 동굴에서 발견된 유소년 축구팀 12명과 코치가 구조대로부터 담요와 식량을 전달 받고 있다. /태국 네이비실 페이스북
해리스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이달 6일부터 호주 눌라보 평원에서 휴가를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휴가를 하루 앞둔 지난 5일, 영국 구조 전문가들은 전문 의학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동굴 잠수도 가능한 해리스에게 구조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다. 해리스는 곧바로 휴가 계획을 취소하고 다국적 구조팀에 합류해 호주 구조팀을 총괄했다.

그는 본격적인 구조 작전이 시작되기 전 먼저 동굴에 들어가 생존자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구조 순서를 정했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구조 당국은 당초 가장 강한 소년들을 먼저 구조하려고 했다. 강한 소년들이 구조되는 동안 다른 소년들은 구조대의 보호 아래 건강을 회복할 수 있고, 구조대도 더 안전한 구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해리스는 가장 약한 소년들이 동굴에서 더 오래 버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 8일 해리스의 계획대로 첫 구조 작전이 시작됐다. 구조 첫날인 8일 가장 상태가 약한 소년 4명이 동굴을 빠져나왔고, 9일 4명에 이어 10일 코치를 포함한 나머지 5명이 구조됐다. 고립 18일 만에 13명 전원이 무사 귀환한 것이다. 해리스는 구조 마지막 날 소년들과 코치가 모두 구조된 후 맨 마지막으로 동굴을 빠져나왔다.

치앙마이주 동굴에 고립됐다 18일 만에 구조된 태국 유소년 축구팀 ‘무 빠(야생 멧돼지)’ 팀원 13명을 상징하는 13마리의 멧돼지가 동굴 속을 헤엄치고 있다. 아이들을 둘러싼 물범은 태국 네이비실, 개구리는 전 세계 잠수 전문가들이다. 동굴 곳곳엔 각국 구조대를 상징하는 사자(영국), 캥거루(호주), 판다(중국), 두루미(일본)가 멧돼지들을 지켜보고 있다. 동굴 오른쪽 위 편에는 기술자를 보내 도움을 준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를 상징하는 ‘아이언맨’도 있다. 태국 한 만화가가 이번 사건을 인류애를 구현한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로 표현한 걸 2018년 7월 10일 태국 네이비실이 페이스북에 올렸다. /태국 네이비실
태국 동굴 구조가 성공을 거뒀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환호했다. 해리스의 활약도 주목을 받았다. 호주 시드니모닝헤럴드는 “해리스를 포함해 이번 (태국 동굴) 구조 작전에 참여한 모든 구조 대원들은 ‘진정한 영웅’”이라고 전했다. 구조단을 이끌었던 나롱삭 오소따나꼰 전 치앙라이 주지사는 “(동굴 구조에 참여한) 호주인들, 특히 그 의사(해리스)가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최고였다”며 해리스를 극찬했다고 나인뉴스는 전했다.

그러나 해리스에겐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0일 해리스가 마지막 구조 작전에 참여한 동안 그의 아버지가 숨을 거둔 것이다. 나인뉴스는 “해리스는 태국 동굴 구조 작전이 끝난 직후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듣고 큰 슬픔에 빠졌다”며 “해리스는 호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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