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채 발견된 옥희네 사랑방 손님… 범인은 어머니?

정상혁 기자
입력 2018.07.11 03:01

대산문화재단 '소설 이어쓰기'

"아저씨는 무슨 반찬이 제일 맛나우?"

사랑방 손님에게 옥희가 던진 이 유도 질문은 께름칙한 데가 있다. 아저씨는 "나두 삶은 달걀"이라 대답하고, 이는 주요섭의 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1935)를 범죄소설로 변모시키는 도구로 작용한다. 시인 정한아(43)씨는 이 소설의 끝에서 발견한 싸늘함에 바탕해 초단편 '기차간 변사사건 관련 진술서'를 썼다. 옥희네에서 묵던 사랑방 손님은 집을 떠나자마자 기차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옥희의 작은외삼촌은 경찰 조사에서 원작의 청상과부 누이를 요부(妖婦)로, 손님을 위선자로 진술하기 시작한다. "누이는 무서운 여자예요… 매형도 삶은 달걀을 먹다 죽었다고 내가 말했었나요?" 원작에서 누이는 집을 떠나는 손님에게 삶은 달걀 여섯 알을 싸준 바 있다.

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서 옥희가 달걀을 들고 사랑손님과 대화하는 장면. 정한아가 이어 쓴 소설에서는 사랑손님이 기차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달걀이 죽음의 이유로 암시된다. /KBS
대산문화재단이 지난해 시작한 프로젝트 '소설 이어쓰기'가 최근 책 '인생손님'으로 묶여 나왔다. 박성원·조해진 등 7명의 작가가 유명 원작을 재해석해 뒷부분을 상상해 쓴 작품집이다. 주고받은 편지와 손수건 등 원작에선 그저 암시로만 그려지던 인물의 사연과 감정을 노골화한다. 소설가 조해진(42)은 임종을 앞둔 어머니가 뜨겁게 품었던 당시 연정을 연애편지 형식으로 고백하고, 박성원(49)은 사랑손님과 옥희 아버지의 요절에 연관성을 부여한다. "넌 매형이 왜 죽었는지 아니?… 그 억울함은 누군가가 모함을 했기 때문이지."

소설적 상상력은 두 번째 프로젝트, 이상의 '날개'(1936)에서도 퍼덕인다. 원작 속 무기력한 주인공은 아내의 매춘 장면을 목격하고, 아내가 자신에게 아달린(수면제)을 한 달간 먹여왔음을 알게 되면서 어지러워하다 어느덧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소설가 임현(35)은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에서 투신자살의 암시를 읽어낸다. 이후 유족을 조사하던 경찰은 주인공의 아내를 만나 "아무래도 내가… 그 사람을 죽인 것 같다"는 자백을 듣는다. 화대로 받은 돈을 남편에게 주곤 했으나 언젠가부터 남편이 그 돈을 되돌려주기 시작하자 수치심을 참지 못한 아내가 남편에게 아달린을 먹여왔고, 이것이 투신자살로 이어졌다는 진술. "밤낮없이 다시 잠들기만 해준다면, 모든 게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도 했다. 다시 손님을 받고 부끄러움을 나누고, 생계를 유지하는 평범한 삶을 바랐다고."

강영숙·박솔뫼 등 6인의 작가들이 풀어내는 상상력은 근대에 머물지 않는다. 최제훈(45)은 시공간을 21세기로 옮겨 '날개'가 지문으로 나온 수능 언어영역 문제를 풀고 있는 재수생의 독백으로 소설을 전개한다. "풀자. 풀자. 풀자. 한 문제라도 더 풀자꾸나."

'소설 이어쓰기' 다음 대상으로는 '메밀꽃 필 무렵' '운수 좋은 날' 등이 거론되고 있다.


조선일보 A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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