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 2부⑦] 김근식 "평화 무드에 취한 한국...트럼프 입 쳐다보고, 김정은 진정성만 기대"

윤희훈·변지희 기자
입력 2018.07.06 22:00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윤희훈 기자
“모두가 평화 분위기에 취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의)시각적 효과에 압도당하면서 이성적인 평가보다 감성적인 감동이 앞서게 됐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취한 대한민국의 오늘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면서, 김정은의 진정성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추진 과정에 대해선 “오만하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청와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일부 전문가들이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민심의 평가’와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한 것을 문제삼았다. 그는 “현 상황에 대해서 타당한 문제를 제기하고, 우려 사항을 전하는 것을 두고 ‘민심과 동떨어졌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오만한 태도”라며 “국가 지도자라면 적어도 외교안보 분야에선 민심을 앞세워서 정책을 정당화하면 안된다. 다양한 의견을 종합적으로 듣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의 쓴소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선 미국 대통령이라면 으레 가져야 할 민주주의나, 인권, 자유, 법치, 동맹에 대한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전략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그는 “연합훈련 중단을 이렇게 쉽게 선언하는 걸 보면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한미 동맹을 지킬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훈련 없는 동맹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만약 훈련에 대해서 북한이 도발이나 안보적 위협 요인으로 느낀다면 훈련 규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하면 됐다”고 말했다.

연합훈련 중단 절차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사전조율 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통상적인 훈련 자체를 중단해버렸기 때문에 나중에 쓸 수 있는 카드도 없다”고 했다. ‘참모들이 연합훈련 중단은 안된다는 조언을 하지 않았을까’란 질문엔 “지금의 백악관은 트럼프에게 조언을 하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 정책 방향을 확 바꿀 수 있는 인물”이라며 “우리 정부는 미국의 태도 전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일관된 대북 전략을 갖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며 의견 조율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를 낙관하는 진보 진영의 전문가들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일종의 슬로건에 불과하며, 이를 북한에 요구해선 안된다는 주장에 대해 “‘CVID를 요구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요구하지 않고 어떻게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나”며 했다. 그는 이러한 전문가 그룹을 향해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이 노무현 정부 말기에 멈춰있다”며 “북핵 문제는 과거 10년과 본질이 완전 달라졌다. 달라진 현실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일부 전문가 그룹은 이번 미북 정상회담을 닉슨의 방중과 비교한다. 1972년 닉슨의 방중으로 상하이 코뮈니케가 나오고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가 성사됐다는 것”이라며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미·중 수교를 맺기 전날 미국은 대만과 단교했다. 지금 상황과 비교해 볼 역사”라고 말했다.

그는 북핵 해법으로 ‘협상, 제재, 군사, 외교’를 모두 활용한 종합적 처방을 제안했다. 김 교수의 북핵 해법 핵심은 ‘레짐 체인지’로 통한다. 그는 “대북 정책이 가야할 방향은 북한의 체제 변화”라며 “북핵 문제는 북한이 민주화되면서 핵무기가 필요없는 정부가 들어서면 해결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북핵 문제를 해결해 북한 문제 전체를 풀려고 했다면, 지금은 북한 문제를 통해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근식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문재인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환송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는 평화 분위기를 환영하는 모습이다.

“모두가 평화 분위기에 취했다.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부터 ‘쇼잉’(보여주기)이 강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을 넘어오고, 문재인 대통령이 잠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같이 회담장으로 들어가고, 방명록을 쓰고, 웃고, 리설주가 와서 만찬하고, 저녁 공연도 했다. 사전에 다 조율된 행사였다.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했다. 국민 대부분이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눈과 귀를 빼앗겼다. 일반 국민들이 북한 비핵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쉽지 않다. 남북 정상회담을 보면서 ‘잘 됐나보다’, ‘역사적인 일이구나’ 이 정도로만 생각할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도 비슷했다. 합의문 내용에 비해 보여주기식 행사가 됐다. 시각적 효과에 압도당하면서 이성적인 평가보다 감성적인 감동이 앞서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6·13 지방선거 후에 ‘미북 정상회담을 낮게 평가하는 건 민심과 동떨어졌다’고 한 건 어떻게 보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도 여당이 압승했다. 청와대는 아마 자신들의 정책 방향이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이런 결과가 정책 추진에 바람직한 동력이 될 수는 있겠지만, 외교안보 분야에선 오만한 생각이 될 수도 있다. 외교안보 분야는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여야가, 진보와 보수가 함께 협의하면서 같이 가야 한다. 그런데 현 상황에 대해 타당한 문제 제기를하고, 우려 사항을 전하는 것을 두고 ‘민심과 동떨어졌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오만한 태도다. 이런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놓치고 있던 부분을 찾을 수 있다. 국가의 지도자라면 적어도 외교안보 분야에선 민심을 앞세워서 정책을 정당화하면 안된다. 다양한 의견을 종합적으로 듣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북중 제재는 사실상 해제된 것 같다. 반면 한중 관계는 여전히 냉랭하다.

“북한의 입장에서 동북아 정세를 보면 작년까지와 지금은 천양지차다. 지금은 일본이 무력화됐고, 한국은 중립화됐고, 중국은 친북화됐다. 미국조차도 김정은의 협상 파트너가 됐다. 평창발(發) 평화 프로세스를 통해 모든 나라를 무력화, 중립화, 우군화 시켰다. 모두가 적대국가였는데 말이다. 김정은의 매력 외교가 엄청난 효과를 거뒀다.”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트럼프 리스크’를 지적했다. 지금 한반도 운명이 트럼프 한 사람에게 맡겨진 상황을 우려했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하는 말이지만, ‘도널드 트럼프’라는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모르는 것 같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게 있으면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해결하는 스타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반(反) 오바마 정책’, 오바마 전 대통령이 했던 정책은 모두 부정한다. 두번째는 ‘비즈니스 퍼스트’, 경제적 이익이 되면 뭐든지 한다. 미국 대통령이라면 으레 가져야 할 민주주의나, 인권, 자유, 법치, 동맹에 대한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 역사상 보기 힘든 대통령이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 자유 진영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다. 당연히 동맹과 세계 전략, 안보에 대한 큰 틀에서의 시각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물론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에 따라서 시각이 다를 순 있지만 트럼프는 오직 경제적 이익과 표만 생각한다. 논란이 많았던 부시 조차, 그러한 시각을 갖고 세계 전략을 고민했다. 트럼프가 임기 동안 내린 결정 중엔 이례적인 게 많다. 북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간선거에서 이기더라도 만약 재선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싱가포르 MCI 제공
-세계 전략과 동맹을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미국 중심의 패권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패권 안정론’이라는 국제정치 이론이 있다. 하나의 패권 국가가 있어야 국제적으로 안정된다는 이론이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 주도의 세계 평화)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주도하에 세계가 안정적으로 관리돼왔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후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트럼프에게 동맹관, 안보관이나 세계를 관리할 전략같은 게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행정부에 따라서 대외안보 축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게 한다(피봇 투 아시아)든지, 중동 우선 정책을 취한다든지, 각각의 전략을 취할 순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갈등을 일으킨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가 처음이다. 지금 유럽도 시끄럽고, 러시아, 중국, 심지어 캐나다까지 미국과 등을 돌리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고립주의’를 내세우는 것도 아니다.”

-‘동맹의 가치를 모르는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인상적인데, 현재 한미연합훈련 중단 결정도 그러한 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나?

“훈련 없는 동맹은 앙꼬없는 찐빵이다. 동맹을 견고히 유지하려면 정기적으로 훈련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미 연합훈련은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 아닌가. 만약 훈련에 대해서 북한이 도발이나 안보적 위협 요인으로 느낀다면 훈련 규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하면 됐다. ‘그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우리의 훈련 강도가 강해졌다. 북한의 위협이 줄어드는 만큼 우리도 훈련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식으로 충분히 논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연합훈련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북한에 도발적이기 때문에 중단한다는 식으로 가면 한미 동맹 중심의 대한민국 안보도 균열이 갈 수 밖에 없다.”

-이번에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면서 ‘훈련이 도발’이란 북한 논리를 인정하는 꼴이 됐다. 연합훈련이 재개되면 바로 북한이 치고 들어올 수 있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사전조율 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통상적인 훈련 자체를 중단해버렸기 때문에 나중에 쓸 수 있는 카드도 없다. 북한이 유해송환과 미사일실험장 폐쇄를 한다고 했는데, 연합훈련 중단과 등가 교환이 아니다. 북한은 미국과 유해송환을 할 때 항상 돈을 받고 했고, 미사일실험장 폐쇄는 일종의 미래핵을 포기하는 것인데 연합훈련 중단과 상응할만한 걸 받은 게 아니다. 한반도 역사를 아는 미국 대통령이었다면 교환의 등가성을 알텐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모르는 것인지 김정은에게 설득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둘 중 하나라면 차라리 무지한 게 다행이다. 설득당했다면 더 큰 문제다. 협상력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는 것을 존 볼튼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켜보고 있다./조선일보DB
-이번 미북 정상회담의 실무 협상진을 보면,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북핵 외교를 오래 담당했던 전문가들이 포진됐다. 그들이 트럼프에게 ‘이건 안된다’는 시그널을 안보냈을까?

“지금의 백악관은 이런 부분을 문제 제기할 분위기가 아닌거다.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경질되고,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도 하루 아침에 해임됐다. 그런걸 봐서 현재 백악관에선 트럼프에게 조언을 하는 분위기가 아닌 걸로 보인다. 아마 연합훈련 중단도 김정은을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한 것 아닌가 싶다. 북한이 만약 실무회담에서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다면 성 김 대사는 절대 수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만약 사전에 미북 간에 이런 의제를 다뤘다면 우리 정부에게도 전달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게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주한미군은 받는 것 없이 비용만 들어가는 존재’라는 식으로 낮게 평가했다. 그런 상황에 김정은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니, 이때다 하고 덥석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로선 ‘울고 싶은 데, 뺨 맞은 격’이 됐겠다.

“뭐 그런 셈이다. 준비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회담을 해서 탑-다운 방식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건 큰 문제다. 연합훈련 중단을 이렇게 쉽게 선언하는 걸 보면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한미 동맹을 지킬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상당히 불안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사이에도 껄끄러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미국에서 이뤄진 한미정상회담을 봐라. 문 대통령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질문을 계속 받더니,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선 ‘통역하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했다. 한미 정상간 이런 불협화음이 있는 상황에 트럼프와 김정은이 잘 통한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우리 정부는 미북 정상회담에서 어떤 스탠스였을까?

“우리 정부는 ‘비핵화와 동시에 관계개선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북한편을 들었던 것 같다.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전날까지도 CVID를 주장했다’고 했다. 김정은을 만나기 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입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달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북 정상회담은 다가오는데 실무진에선 협상이 잘 안되니,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김정은을 만나고 보니 맘에 든 것이다.”

-그런데 미북정상회담 이후론 우리가 오히려 패싱 당하는 듯 하다.

“문재인과 트럼프 사이의 신뢰도가 우려된다. 일부 전문가 그룹은 이번 미북 정상회담을 닉슨의 방중과 비교한다. 1972년 닉슨의 방중으로 상하이 코뮈니케가 나오고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가 성사됐다는 것이다.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미·중 수교를 맺기 전날 미국은 대만과 단교했다. 지금 상황과 비교해 볼 역사다.”

-대한민국 안보에 큰 공백이 우려된다. 역시 문제는 ‘트럼프 리스크’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 정책 방향을 확 바꿀 수 있는 인물이다. 지금 북핵 전략도 급작스럽게 바뀌지 않았나.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이때 중요한 건 우리 정부의 대응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태도 전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일관된 대북 전략을 갖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며 한미 간 의견 조율을 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즈니스 전략과 관련해 한 일본 교수가 쓴 칼럼이 있다. 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업가로서 협상에 나설 때 가장 먼저 보이는 행동을 ‘오버 컨피던스(over confidence)’라고 했다. 자신감을 넘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 할 수 있어. 나 밖에 못하는 일이야’라고 하는 건데,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 그러다 협상이 잘못되면 ‘오버 리액션(over reaction)’을 취한다. ‘너희 혼나볼래’라는 식으로 윽박지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 탓(blaming)’을 한다. ‘너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거래가 깨졌다’며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아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협상이 잘 안되면, 김정은이나 문 대통령, 시진핑, 혹은 언론에 책임을 돌릴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윤희훈 기자
-김정은이 정말 핵을 포기하고 경제를 위해 개혁개방에 나설까?

“김정은 스스로 국제사회를 향해 ‘개혁개방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나? 이런 메시지는 다 우리 정부를 통해 나갔다. 북한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아니다. 노동당 중앙위 전체회의 결과를 보면 핵 병진 노선이 성공적으로 결속됐다, 즉 완료됐다고 했다. 핵무기를 완성했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는 것이다. 핵무기 병기화도 성공했다고 하는데 이는 실전배치가 끝났다는 거다. 병진노선을 바꾼 것도, 개혁개방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미국이 비핵화와 관련한 용어를 자꾸 바꾼다.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대신하는 용어로 PVID(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고 했다가 최근엔 ‘FFVD(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한 비핵화)’라고 표현했다.

“북한이 비핵화 내용과 로드맵, 그리고 시간표를 주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비핵화 로드맵이 필요한데, 이걸 안주니 용어를 바꿔가면서 조금씩이라도 비핵화를 하자고 하는 것이다. 서 그런 것 같다. 우리는 비핵화 원칙을 말하는게 아니라 로드맵을 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걸 안주니 용어를 바꿔가면서 조금씩이라도 비핵화를 하자고 하는거다. 일종의 트럼프식 살라미 전략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중간선거용으로 필요한 게 있어야 한다. 길게는 재선까지 내다봐야 하는 상황이다. 용어를 바꿔가며 뭔가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정치적 효과를 얻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부 전문가 중에선 ‘CVID는 일종의 슬로건’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다.

“북한의 논리와 똑같다. CVID는 패전국에게 받는 항복 문서라고 하는데, 리비아의 카다피도 패전국은 아니지만 CVID를 받게 하지 않았나. ‘CVID를 요구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요구하지 않고 어떻게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나. 이러한 주장을 하는 전문가들은 대개 ‘병행 프로세스’
나 ‘단계적 동시조치’를 주장한다. 이 이야기는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부터 계속돼왔다. 25년간 해온 이야기인데, 이 시간 동안 비핵화는 결국 안되고 북한 핵능력만 강해졌다. 사실상 핵무기를 완성했다. 나도 25년 전엔 ‘단계적 동시조치’를 지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나.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이 노무현 정부 말기에 멈춰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그 이전으로 가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북핵 문제는 과거 10년과 본질이 완전 달라졌다. 달라진 현실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새로운 접근법이란 무엇인가?

“내가 말하는 북핵 접근은 종합적 처방이다. 협상, 필요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나 문정인 교수처럼 협상 만능론으로 가면 안된다. 제재도 필요하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때 처럼 제재 만능론으로 가도 안된다. 여기에 군사적 대비와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제재를 꾸준히 하면서 북한을 압박해 북한이 협상장에 나오게 하고, 그들이 선의적 행동을 할 때, 우리가 줄 수 있는 카드를 제시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건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음에도, 핵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핵은 갖고 있다고 해서 쉽게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핵심은 그 쪽이 핵을 쓰려고 한다면 우리는 바로 응징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먼저는 응징 의지. 그리고 단호한 억지력이다. 결국 이렇게 대비하면서 가야할 방향은 북한의 체제 변화다. 제재가 계속되는 한 시간은 우리편이다. 지금의 북한 정권은 오래 가지 못한다. 민주화되면서 핵무기가 필요없는 정부가 들어서면 된다. 바로 남아공식 모델이다.”

조선일보 DB
-문제는 현 정부의 안보 의식이다. 지금 군사 관련 업무가 사실상 모두 스톱된 상황이다.

“현재 국방부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감축’이다. 군사적 대비나 억지력 강화 조치는 모두 스톱됐다. 연합훈련 중단은 제쳐놓고, 자체 훈련도 스톱된 상황이다. 첨단 무기 개발 멈췄고, 전방 진지 공사까지 스톱됐다.”

-폼페이오 장관이 곧 방북한다. 이번 방북에서 비핵화 로드맵이나 시간표를 가져올 수 있을까.

“안될 것 같다. 성 김 대사와 최선희가 실무협상을 여러번 했는데도 안됐다. 아마 유해송환을 가시적인 성과로 안고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도 아직 확인이 안됐는데, 이와 관련해서 진전된 소식을 들고 오는 정도를 기대해볼 만 하다. 난 참 웃긴게,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직통 전화번호를 줬다고 하는데, 정상 간 핫라인이 명함이나 전화번호를 준다고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트럼프 대통령이 CNN이나 뉴욕타임스를 향해 ‘가짜 뉴스를 만든다’고 비난하는데 스스로도 많이 만든다. 게다가 그런 가짜 뉴스를 만드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도 없다. 이러한 트럼프에게 비핵화 문제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회담이 진행되는 상황인데 우리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은 없을까.

“이젠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면서, 김정은의 진정성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남북 관계를 가속화하는 일만 남았는데 이것도 불안하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남아있는 상황에 서둘러서 속도를 낼 수도 없고, 그러자고 속도를 안 내기도 찝찝하다. 물론 전반적으로 개선되겠지만, 이것 때문에 대북 제재가 약해진다면 북한에만 좋은 카드가 돼버린다. 이건 경계를 해야 한다.”

-최근 진행된 남북 통일농구경기와 같은 교류 협력은 어떻게 보나?

“레짐 체인지를 위해선 교류는 필요하다. 궁극적인 북핵문제 해법은 북한 체제 변화다. 북한이 민주화돼 핵무기가 필요없는 정권이 되면 된다. 제재가 15년 이상 계속되면 북한 정권은 무너질 것이다. 과거에는 북핵 문제를 해결해 북한 문제 전체를 풀려고 했다면, 지금은 북한 문제를 통해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고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수행원으로 참석했다. 이후 서울특별시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자문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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