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후회로 고통스러운가?… 그것이 당신을 성장시킨다

김현진 작가
입력 2018.07.07 03:00

[김현진의 순간 속으로]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고통 그리고 후회다. 과거에 발목 잡혀 회한(悔恨)의 삶을 살기보다 속죄를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일일 것이다.이미지 크게보기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고통 그리고 후회다. 과거에 발목 잡혀 회한(悔恨)의 삶을 살기보다 속죄를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일일 것이다./픽사베이
몇 년간 다닌 회사는 모두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곳이었다. 하필 왜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곳에서 일했느냐 하면, 나에게는 그곳들이 어떤 꿈을 만드는 곳으로 여겨졌다. 알고 보니 노동법은 툭하면 어기고 심지어 회장님이 직원을 빠따 때리기까지 하는 곳인 것은 몰랐지만, 그래도 나는 게임에서 꿈을 보고 싶었다. 그건 내가 어떤 게임에서 꿈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게임들이 있었다. 게임을 시작한 건 '디아블로2'도 아니고 '디아블로1'이었는데, '디아블로2'부터 배틀넷 시스템을 채택해 서버에 캐릭터 정보를 저장하게 되었고 '디아블로1'은 개인의 하드에 캐릭터 정보를 저장했다. 그러므로 컴퓨터가 오류가 나면, 그 캐릭터는 완전히 사라지는 거였다. 나는 레벨 48의 있을 수 없는 수준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윈도를 다시 깔게 되면서 영영 그 캐릭터와 이별하게됐다. 그때 창피하지만 정말,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에 가면서 다른 친구들은 모두 스타크래프트를 옛날 사람들 당구장 가듯 즐겼지만, 당시 PC게임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던 나는 온라인이 아닌 패키지 게임을 즐겼다. 그중에서 나를 게임회사로 인도한 게임은 바로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라는 게임이었다. 앞서 말한, 내가 꿈을 본 게임이라는 게 바로 이 게임이다. 80만 줄의, 전부 합쳐 소설책 10권 분량의 어마어마한 대사 양에도 압도되었지만, 주인공의 설정이 너무나 독특했다. 주인공은 시체 안치소에서 깨어나는데, 이미 죽은 사람이라 죽여도 죽지 않는다. 게임을 하다 죽으면 또 그 시체 안치소에서 깨어난다. 한마디로 죽음이나 구원 등이 허락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도대체 왜 내가 이런 신세가 되었나 생각해내려 해도 모든 기억이 지워졌다. 단 하나의 단서는 온몸에 새겨져 있는 문신들뿐이다. 이전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온몸에 거칠게 새겨놓은 문신. 이 문신을 따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찾아나가는데, 게임 전체를 관통해 주인공은 어떤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질문은 바로 다음과 같다.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what can change the nature of human)?'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게임회사에 시나리오 작가로 입사하고 나서 나는 꿈이라는 것을 잡으려고 거의 혈안이 되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그렇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게임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다. 왜 그렇게 꿈을 꾸고 꿈을 이루는 데 혈안이 되었느냐 하면, 친족 경영으로 경영되고 있던 회사의 시스템이 지긋지긋했다. 사장님 위에 한 분 있던 회장님은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직원들 '빠따'를 쳤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정말이다.

회장님의 내 또래 아들은 가수가 되고 싶어 했다. 음반이 출시되기 전에 미리 들어 보라고 해서 들어 봤지만, 일반인이 노래방에서 조금 잘 부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회장님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회장님은 오직 그만을 위한 기획사를 만들었다. 우리들은 그가 드라마 삽입곡을 부르면 모든 일을 제치고 그 드라마 사이트에 들어가서 '○○오빠 노래 너무 좋아요' 하며 글을 써야 했다. 음반을 내고 나서는 아침에 출근해서 모든 일을 작파하고 온갖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그의 노래를 클릭해야 했고, 1인당 강제로 그의 음반을 3개씩 사야 했다. 그 돈은 보전해 준다더니 식권으로 돌아왔다. 노동절에도 근무를 해야 했고, 퇴직금을 가지고도 장난을 치는 회사였다. 나도 나태한 근무 태도로 복수를 했지만, 당시 기획팀 소속으로 회장님 아들에 대한 찬사의 글을 도맡았던 나는 사실은 회장님 아들이 몹시 부러웠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주인공인 '이름 없는 자(nameless one)', 모든 과거를 잊어서 이름까지도 잊어버린 주인공의 과거를 알게 된다. 그의 정체는 플레인스케이프 세계에서 진행되는 피의 전쟁에서 싸우던 용병이었다. 그런데 불멸자가 되기 이전 아직 필멸자였던 최초의 존재는 일생을 통해 전쟁과 살인 등 씻을 수 없는 수많은 죄악을 저질렀고, 한 번 인생을 살아서는 지울 수 없는 업보를 짊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름 없는 자는 래벌이라는 최고의 마녀를 찾아가 불사자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래벌은 의식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려고 주인공을 '최초의 죽음'으로 인도하는데 그 순간 불사자가 된 이름 없는 자와 분리된 죽음이 초월자로서 태어나고 주인공은 기억을 잃어버린다.

초월자는 곧바로 우주의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그림자들은 이름 없는 자를 쫓아다닌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 주인공의 부활 능력은 그가 부활할 때마다 연결된 다른 차원의 누군가가 대신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후회의 요새에 가득찬 그림자는 그때 대신 죽은 자의 한이 서린 망령인 것. 게다가, 부활할 때마다 기억을 잃는 것은 그만큼의 힘의 덩어리가 나눠져 버리는 것이기에 이미 수백 명의 화신이 존재한다. 게임 종반에 가면 주인공의 세 화신들이 등장한다. 선한 화신, 악한 화신, 정신분열적 화신. 이 세 가지 인간의 성격과 잘 동화되느냐가 앞으로의 게임 진행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게임 밖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도 자신의 어떤 면들을 끌어안느냐 내치느냐가 영향을 미치듯이, 이름 없는 자는 초월자와 융합해 완전한 존재로서 각성한다. 그러자 삶과 죽음에 통달하게 되어 죽어있던 모든 동료를 부활시킨 뒤 작별의 인사를 건네고 이별한 다음 정신을 잃었다가 블러드 워의 전장에서 깨어난다. 그는 근처에 있던 낡은 도끼를 뽑아들고서 죗값을 치르러 전장으로 들어간다.

이 게임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두 가지가 아닐까 한다. 첫 번째는 게임의 제목과도 같은 고통(torment), 그리고 후회. 후회했기 때문에 주인공은 이 후회에 대답하려 '이름 없는 자'가 되고 만 것이다. 당신의 고통은 무엇인가? 당신의 후회는 무엇인가? 그것들은 당신의 삶을 바꾸었는가? 그것들 때문에 삶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는가? 당신의 고통은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변화시켰는가? 후회와 고통 때문에 일그러진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속죄하기 위해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것이 이 게임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조선일보 I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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