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칼럼] 산업화와 민주화 너머, 공화혁명으로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입력 2018.07.06 03:17

正義에 기초한 公共性이 공화혁명의 '영혼'… 군주 같은 청와대의 군림,
대통령에 대한 비판 봉쇄, 중앙·지방권력 獨食은 모두 공화정 위협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6·13 선거에서 보수정당들은 궤멸하였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의미는 보수 참패·진보 약진 그 너머를 가리킨다. 보수·진보가 부침(浮沈)을 거듭하는 선거 결과의 표층(表層) 밑에 거대한 심층적 흐름이 약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암이 지각 판을 깨트리는 것처럼 새로운 시대정신이 낡은 잔재를 휩쓸어간다. 공룡으로 퇴화한 보수정당들은 소멸의 징후 앞에 넋이 나간 상태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수구를 심판한 선거 충격도 외면한 채 퇴행적 행보로 일관하고 있다.

진보의 미래를 장밋빛 꽃길로 보는 것도 큰 착각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 민주당은 이제야 역사의 시험대 앞에 섰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로 수구 세력이 퇴출됨과 동시에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정치적 기저 효과도 끝났다. 이제 모든 국정 책임은 오롯이 문재인 정부의 몫이다. 민생과 나라가 어려워질수록 화살은 문 정부로 쏟아질 수밖에 없다. 민생 경제가 나빠져 가는 상황에서 '진보집권 20년론'은 안일한 소망 사고에 불과하다.

작금의 보수 몰락·진보 득세는 심층적 구조 변화의 산물이다. 1960~80년대 한국 사회의 30년을 이끈 시대정신이 산업화라면, 1990~2010년대 30년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다. 물론 1960년대 이래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정신은 끊임없이 상호 경합해 왔다. 경제발전에 총력을 쏟을 때조차 민심은 민주주의를 중시했고 발전된 민주주의도 경제성장을 필수로 여겼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는 참으로 경이로워서 한국적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한국적 산업혁명의 성과는 박정희 시대를 찬란한 신화로 기억하게 하였다. 한국적 민주혁명의 강력함은 박근혜의 퇴행을 심판한 2016~17년 촛불이 증명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현대사의 씨줄과 날줄로서 한국인의 삶을 교직(交織)한 시대정신이었다. 그러나 이젠 산업화와 민주화의 적대적 대립을 넘어 새로운 시대정신을 발굴해야 한다.

불세출의 보수 경세가였던 고(故) 박세일 교수의 선진화 담론은 선구적이었지만 정교하지는 않았다.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의 성과를 승화시킬 미래의 대안은 단연 공화혁명에 있다. 202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공화혁명의 시대정신이 압도할 것이다.

공화주의의 핵심은 공공성이다. 공화국(republic)이란 말 자체가 공적 가치(res publica)에서 나왔다. 자유시민의 나라인 공화정의 최고 덕목은 정의(正義)일 수밖에 없다. 정의에 기초한 공공성이야말로 공화 패러다임의 영혼에 해당한다. 정의와 국리민복을 배반한 보수정당들을 성난 민심이 초토화한 게 이번 선거 결과다. 이들이 공공을 위해 봉사하기는커녕 시대착오적인 천민자본주의와 냉전반공주의로 기득권을 지키는 데 바빴기 때문이다. 비민주적인 데다 반(反)공화적인 이들의 작태는 공동체를 위한 솔선수범이라는 보수의 양식(良識)과도 정면충돌했다.

법치주의는 공화혁명의 기둥이며 권력분립과 세력균형은 공화정의 시금석이다. '살아 있는 권력'이 법 위에 서는 현실은 공화정에 치명적이다. 이는 공화국을 '왕이 없는 나라'에 비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왕적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 '진보 대통령 문재인'의 청와대가 내각과 민주당 위에 군주처럼 군림하는 현실은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부분적 공론화를 거쳤다고는 해도 탈원전같이 논란 많은 국가 에너지 정책을 대통령 결단만으로 강행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과연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 개인에 대한 높은 지지도를 명분으로 대통령에 대한 비판 자체를 금기시하는 지지층의 행태는 일체의 정치적 성역(聖域)을 부인하는 공화정을 위협한다.

공화정은 다양한 세력들이 공공선을 두고 경쟁할 때 살아 움직인다. 정의와 공공성이 함께하는 공화의 삶이야말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제3의 지평을 지향한다. 한 세력이 민주주의의 논리로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나라의 장래에 해롭다. 문재인 정부가 중앙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독식한 현실은 우리 공화정에 좋은 소식이 못 된다.

중우정치로 폭주해 자멸해버린 고대 아테네 민주정의 증언처럼, 민주주의가 항상 정당한 건 결코 아니다. 민중의 독주를 견제할 공화정이 민주주의를 견인해야 마땅하다. 산업화와 민주화 너머, 백척간두 진일보해야 할 때다. 절박한 역사의 시간이다. 창대한 공화혁명의 시대가 대한민국을 기다리고 있다.



조선일보 A30면
헬스조선 상례서비스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