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이 '이럴슈가'… 그건 20년 전 개그잖아요

이해인 기자
입력 2018.06.26 03:01 수정 2018.06.26 13:58

KBS '개그콘서트'의 몰락… 시청률 27.9%→5.5% 역대 최저치

고인 물은 썩는다. 지상파 유일 공개 코미디 KBS '개그콘서트(개콘)' 얘기다. KBS 공채 출신인 한 개그맨은 "요즘 개그맨들 모이면 '개콘' 걱정만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1999년 9월 시작한 개콘은 사바나의 아침, 갈갈이 삼형제, 마빡이부터 생활의 발견, 달인에 이르기까지 숱한 히트 코너와 유행어를 내놓았지만 최근 들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2011년 27.9%까지 올라갔던 시청률은 지난 17일 방송에서 사상 최저치인 5.5%로 떨어졌다. 침몰의 원인은 뭘까. KBS 개그맨, PD, 지망생들은 '소통'의 문제를 제기했다. "소셜미디어, 시청자, 관객과 소통하지 않고 그들만의 섬에 갇힌 것"이 시청률 하락의 이유라고 진단했다.

◇웃음의 새로운 코드 외면

"콩트식 코미디가 수명을 다한 거라고요? 그냥 '개콘'이 재미없어진 겁니다." 극단에서 개그 공연을 하는 김선호(가명·28)씨는 개콘을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구식 개그"라 잘라 말했다. 김씨는 "10년 전 TV 앞에서 코미디 콘텐츠를 소비하던 손님들이 지금은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로 이동했는데도 개콘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장사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7일 개그콘서트‘뷰티잉사이드’에서 남자 친구가 박휘순(오른쪽) 얼굴로 변하자 강유미(왼쪽)가 화를 내고 있다. 이 코너에선 얼굴이 바뀔 때마다 외모 비하 발언이 이어진다. /KBS
유튜브 등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는 영상들은 일명 '똘감' 충만한 4차원 개그.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맥락과 상관없는 기괴한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식이다. 김씨는 "tvN 코미디빅리그(코빅)에서는 개그맨 양세찬, 황제성 등이 '똘감'으로 활약하며 소셜미디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옥께이, 모르게쒀요'라는 유행어로 인기를 끈 개그맨 고장환을 코빅으로 영입한 것도 소셜미디어와 소통한 사례. 코빅의 시청률은 2.3%로 개콘보다 낮지만 페이스북 팔로어 수는 165만으로 개콘(40만)에 비해 4배 이상 많다.

◇몸 개그, 외모 비하에 급급

개콘은 시청자들이 떠난 자리를 몸 개그, 외모 비하, 저질 개그 등으로 채웠다. '뷰티잉사이드' 코너는 남자친구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바뀔 때마다 여자가 "니 죽고 싶나" 소리치는 등 외모 비하로 가득하다. 지난 24일 '봉숭아학당' 코너에선 '설탕이 깜짝 놀랐다를 4글자로 줄이면?… 이럴슈가'라는 아재개그까지 등장해 실소를 자아냈다. 개콘 시청자 게시판에는 '보면서 아무 표정도 지을 수가 없다' '한숨만 나온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지난달 '내시천하'에서 개그맨 김준호가 티팬티를 보여주는 장면. /KBS
개그콘서트 출신의 한 개그맨은 "궁지에 몰린 개그맨들이 가장 쉽고 빠르게 선택하는 방법이 외모 지적, 약자 비하, 몸 개그"라며 "요즘 이런 개그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개콘이 쉬운 길만 선택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지난달 방송된 '내시천하'란 코너에서는 개그맨 김준호가 "이렇게 해야 남자들이 환장한다"며 티팬티 입은 모습을 보여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행정지도를 받았다.

'왕비호'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개그맨 윤형빈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개콘이 부진한 건 엄격한 검증 시스템이 없어진 탓"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대학로 공연장에서 수백 번 검증한 뒤 관객 호응이 가장 큰 코너를 방송에 올렸지만 지금은 PD, 작가 몇 명이 판단해 웃길 확률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2009년 개콘의 시스템을 주제로 논문을 썼던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20년 가까이 같은 틀을 유지해온 개콘에 대한 시청자 피로도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며 "개콘에 당장 필요한 건 기존 틀을 깨는 혁신적인 아이디어! 그 힘은 소셜미디어, 시청자, 관객 등 외부와의 소통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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