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미술도 K팝처럼 만들 것" 구씨家 돌연변이의 꿈

최보윤 기자
입력 2018.06.22 03:00

'오페라갤러리 서울' 디렉터 구나윤

구자홍 회장의 딸
'갤러리 구' 5년간 운영, 집안의 무관심… 아버지와 일 얘기는 안해

이젠 아버지가 멘토
佛본사 회장에게 하는 보고, 조직 운영과 직원 소통… 아버지와 거의 매일 상의

'재벌가 여인'과 '미술'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호응 관계 같다. 국내 유명 재벌가 '마나님'이라면 응당 밟게 되는 코스처럼 느껴진다. 너무나 뻔해 보이는 일인데 이 여인은 "집안의 냉대에 가까운 무관심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한 일"이라고 한다. 스스로 "집안의 돌연변이"라 한다.

'오페라갤러리 서울'의 구나윤(41) 디렉터다. 그의 아버지는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조카인 구자홍(72) LS니꼬동제련 회장이다. 오페라갤러리는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두고 전 세계 지점이 13곳 있는 체인형 갤러리. 올해 한국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새로 뽑은 디렉터가 그녀다. 이전엔 자신의 성(姓)을 딴 '갤러리 구'를 5년간 운영하면서 국내 젊은 작가를 발굴했다.

“어릴 적 해외에 살 때 인종 차별을 겪고는 우리 문화를 알려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오페라갤러리 서울 구나윤 디렉터는 한국의 신진 미술 작가를 발굴해 해외에 알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재벌가가 예술계에 뛰어드는 건 당연한 코스라고들 한다.

"LG가(家)는 장애인 관련이나 바둑, 스포츠 등에는 오래 투자해왔지만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갤러리 구'를 열었을 때도 친척들에게 거의 관심 받지 못했다. 아무도 하지 않으니 잘 몰랐을 것이다. '갤러리 하는데 왜 바쁜가' '미술이 어떻게 직업이 될 수 있는가. 취미 아닌가' 하는 말씀도 왕왕 하셨으니까."

―LG가 여성들은 외부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편인데.

"LG는 항상 '정도 경영' '투명 경영'을 내걸었기에 우리 아버지를 비롯해 남자는 무조건 신입 사원으로 밑바닥부터 배워나가는 게 정석이다. 가풍이 다소 보수적이라 여성의 사회활동엔 많이 열려 있지 않은 것 같다. 여자에겐 현모양처가 바른길이라고 배웠다. 어릴 땐 나도 그래야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일하는 내 모습이 정말 좋았다. 집안에서도, 나 스스로도 돌연변이같이 느껴질 수밖에."

―워커힐호텔 마케팅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졸업하고 무조건 일하고 싶었지만 LG 계열 지원은 아예 머릿속에 없었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회사에 취직하고 나니 부모님이 '정시 출퇴근하는 샐러리맨이 사회생활의 최고봉'이라면서 응원해주셨다. 재미는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미술에 대한 갈망이 깊어졌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돌아돌아 이제야 꿈에 다가서고 있다."

―부모님 반응은 어땠는가.

"홍익대 미대 석사를 밟았더니 자식한테 여전히 기대 많으신 여느 부모님처럼 처음엔 '교수 되고 싶으냐'며 반색하셨다. 하지만 미술계 현장으로 나가겠다니까 반응이 싸늘해졌다. 갤러리 구를 열었을 때는 5년간 아버지와 일 관련해 거의 한마디도 안 했다."

―구씨 집안에서 개인 갤러리를 열어 꽤 화제였다.

"나를 빨리 알리는 데는 축복일 수 있지만 선입견도 적지 않았다. 집안 돈으로 취미 생활 하는구나 하는 시선을 깨려고 무척 노력했다. '무슨 공부 하셨느냐'면서 '의외로 할 거 다 했네요' 하거나, 면접하듯 묻다가 '의외로 제대로 아네요' 같은 반응도 있었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지방 창작센터 등 미술이 있는 곳엔 어디든 달려갔다."

1994년 설립된 오페라갤러리의 창업자 질 디앙 회장은 세계 50대 화상(畵商)에 손꼽히는 큰손이다. 유럽상공회의소에서 인정한 미술 상거래 허가증을 가진 몇 안 되는 갤러리스트로 피카소, 샤갈부터 현대 작가인 페르난도 보테로, 마놀로 발데스 등 근현대 미술 작품 1만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뉴욕·마이애미·런던·제네바 등 13지점에서 직원 150여 명과 매출 2억유로를 달성했다. 구 디렉터는 서류 전형과 회장 화상 면접 등의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올랐다. 서울점 10주년을 맞아 도산공원 앞 4층짜리 건물 전체로 규모를 넓혔다.

오페라갤러리 서울에서 전시되는 작품 앞에 선 구나윤 디렉터.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금은 집안 분위기에 좀 변화가 있는가.

"오페라갤러리 디렉터가 되고, 매일 보고해야 하는 프랑스 본사 회장님과 지점 디렉터와의 협업, 서울관 직원과의 소통, 조직 운영 등의 업무가 생겼다. 그제야 아버지와 회사 관련해 처음으로 말을 하게 됐다. 3월에 이 자리에 오른 뒤 아버지와 거의 매일 상의한다."

―어떤 도움을 받았는가.

"회장님께 보고드릴 때 세세한 거까지 일일이 보고드려야 하는 고민이 많았다. 일러바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전전긍긍했다. 아버지께서 본사에서 즉시 해결해주지 못해도 우리에게 이런 이슈가 있고 이렇게 풀어가고 있고, 이런 과정을 모두 설명하는 게 맞는다고 하셨다. 가족으로서 아버지만 보였다면 이젠 멘토로서 아버지이자 경영인의 노하우를 조금 알게 됐다."

―갤러리 구에선 100% 국내 작가 전시회만 운영해왔는데.

"오페라갤러리도 유봉상·이길래 작가 등 한국 전속 작가 10여 분이 있다. 뉴욕, 파리 해외 분관에서 단독·순회 전시회도 여러 차례 열었다. 국내는 재테크 차원에서 그림 사는 사람이 많은데 해외에서는 취향 투자도 많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작품이 주는 압도감에 환호한다."

―국내 작가를 해외에 알리는 게 인생 목표가 된 계기가 있는가.

"어린 시절 10년간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보내면서 인종차별당했던 기억이 있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각 나라 대통령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애들이 '너희 나라 대통령은 왜 저렇게 생겼느냐'며 비웃었다. 김밥이라도 싸 가면 그렇게 괴상하게 생긴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고 놀려댔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기도 전이라 무지했겠지만, '언젠간 성공해서 한국을 크게 알리겠다'는 각오가 커져만 갔다."

―소득이 있었는가.

"갤러리 구 초기 정윤경, 김화현 작가와 런던 사치갤러리 페어에 나갔을 때 반응이 대단했다. 홍콩 아트 센트럴에서 정윤경 작가가 단독 부스로 나갔을 때도 완판됐다. K팝처럼 신진 K미술도 급부상할 잠재력이 있다. 아쉬운 건 해외 아트 페어에 나가면 한국인들이 오히려 한국 부스를 외면하는 것 같다."

―컬렉터에서 아트 딜러이자 전시 기획과 운영까지 하는 갤러리스트로 변신한 게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작가들한테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신뢰를 주는 게 쉽지 않았다. 신진 작가의 작품 두 점 얻으려고 다섯 번 넘게 퇴짜 맞고도 다시 읍소하기도 했고, '3년 뒤에는 꼭 같이 일하자'는 말에 '무슨 자신감으로 그 짧은 시간에 마음을 돌리겠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작가들이 인정한다'는 게 우리 업계에선 큰 칭찬일 텐데 요즘 들어 꽤 듣는 것 같다."

―어떤 갤러리스트가 되고 싶은가.

"데이비드 즈위너나 가고시안처럼 가문 이름을 내세우면서도 취향과 사명감이 철저한 갤러리스트. 집안 이름은 화제성에선 도움이 될진 몰라도 프로 세계에선 의미가 없다. 실력 없으면 바로 뒤처진다. 트렌드를 읽어내는 힘과 정보력이 필요하다. 많이 만나고 더 깊게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구나윤 프로필

1977 서울 출생
1999 서울대학교 소비자아동학과 졸업
2000 에스모드 서울 패션스쿨 수료
2003~ 2004 쉐라톤워커힐 호텔 VIP마케팅팀 매니저
2005~ 2007 아현 명상센터 대표
2011 홍익대 예술학과 석사 수료
2009~ 2013 채원 아트컨설팅 대표
2014~ 2018 갤러리 구 대표
2014~ 미술 전문 출판사 그레파이트온핑크 대표
2018~ 오페라갤러리 서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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