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한의 궁궐' 덕수궁, 100년 만에 치유의 첫 삽 뜨다

유석재 기자
입력 2018.06.20 03:00

문화재청 '덕수궁 제 모습 찾기'… 광명문·돈덕전·선원전 복원키로

을사늑약 체결, 헤이그 특사 파견과 고종 강제 퇴위, 독살 의혹을 남긴 고종의 승하, 그리고 뜯겨 나간 전각들…. 한때 황궁(皇宮)이었으나 한국 근대사의 온갖 한(恨)이 응축된 '수난의 궁궐' 덕수궁(德壽宮·사적 124호)이 복원의 첫 삽을 떴다. 문화재청은 19일 오후 광명문 이전 공사 기공식을 시작으로 '덕수궁 제 모습 찾기' 사업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한(恨)과 수난의 황궁

덕수궁(경운궁)은 당초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사저였고, 임진왜란으로 머물 곳 없어진 선조의 임시 거처였으며 광해군 때 인목대비가 유폐된 장소이기도 했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뒤 중화전·함녕전을 비롯한 많은 전각이 세워졌고, 13년 동안 대한제국의 정궁 역할을 했다. 고종은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돈덕전을 이곳에 지어 자주와 근대화 의지를 천명했고, 1907년 중명전에서 헤이그 특사를 파견했다.

19일‘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기공식에서 이전을 위해 떼어낸 광명문 현판을 수문장 역할을 맡은 한국문화재재단 직원들이 들어 보이고 있다. /박상훈 기자
그러나 일제 침략의 마수는 궁궐 곳곳에 상처를 입혔다. 1905년 중명전에서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이 체결됐고, 1907년 돈덕전에선 고종의 강제 퇴위를 공식화한 순종 즉위식이 열렸으며, 1919년에는 함녕전에서 고종이 승하했다.

이후 1920년대부터 덕수궁의 수난이 본격화됐다. 원래 덕수궁은 옛 경기여고 자리와 중명전까지 포함하는 넓은 영역이었으나, 일제는 갖가지 이유로 궁역(宮域)을 잘라내고 전각을 헐어냈다. 현 미국대사관저 앞 담장 길을 만들어 궁을 둘로 쪼갰다. 선원전을 헐어낸 뒤 그 자리는 조선저축은행 등에 매각했다. 돈덕전 역시 철거한 뒤 유원지를 만들었고, 침전인 함녕전의 정문 광명문을 궁궐 서남쪽 자리로 옮겨 버렸다.

◇제 모습 찾는 광명문·돈덕전·선원전

덕수궁 복원은 크게 ①광명문 원위치 이전 ②돈덕전 복원 ③선원전 3단계 복원으로 이뤄진다. 광명문은 2016년 함녕전 앞 원래 자리를 발굴한 결과를 토대로 실시 설계도를 만들었으며, 올해 말까지 이전을 끝낼 계획이다. 광명문 안에 보관돼 있던 창경궁 자격루(국보 229호) 등 유물은 보존 처리를 거쳐 국립고궁박물관 등으로 옮기게 된다.

1902년 서양식 연회장으로 지어져 외국 사신의 대기 장소와 숙소로 쓰였던 돈덕전은 지난해 복원을 위한 발굴 조사를 마쳤다. 올해 안에 공사를 시작해 2021년 완공할 계획이며, 이후 대한제국 자료관 등으로 활용된다.

선원전은 역대 임금의 어진(초상화)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던 전각이다. 일제에 의해 철거된 뒤 경기여고 부지로 쓰이다 주한 미국대사관 소유가 됐고, 2011년 다시 한국에 소유권이 넘어왔다. 문화재청은 2038년까지 3단계에 걸쳐 선원전과 빈전(왕·왕후가 승하한 뒤 시신을 모셨던 곳)인 흥덕전, 혼전(발인 후 신주를 모셨던 곳)인 흥복전 등 주요 전각과 부속 건물 54동 등을 복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선원전은 이미 창덕궁으로 이전해 순종 황제가 다시 지은 것인데, 덕수궁에 굳이 또 신축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일보 A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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