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달 뒤진 '삼성노조 와해' 의혹… 10번 영장, 9번 기각

윤주헌 기자
입력 2018.06.13 03:00

검찰, 다스 소송비 대납 수사 때 관련 문건 담긴 외장하드 확보… 삼성전자 본사 등 4번 압수수색

'삼성 노조 와해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11일 기각됐다. 한 번 영장이 기각돼 다시 청구했는데 또 기각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모(母)회사인 삼성전자 지시를 받아 삼성전자서비스에서 노조 와해 활동을 벌인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된 삼성의 최고위급 인사였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사실의 많은 부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사실상 검찰이 혐의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 전 대표를 구속한 뒤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의 옛 미래전략실 개입 여부를 수사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영장이 기각돼 검찰 수사는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수사 상황도 여의치 않다. 검찰은 그동안 이 사건과 관련해 박 전 대표를 포함해 총 8명에 대해 10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 와해 활동을 위해 사내에 만들었다는 '종합상황실'의 실무 책임자 윤모 상무와 본사 지시를 받고 이를 이행했다는 일선 센터 전·현직 대표 등이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중 9건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기각 사유도 대부분 "증거인멸 우려가 없고 혐의를 놓고 다툴 여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이는 삼성전자서비스 최모 전무가 유일하다.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출범하자 노조 대응 조직인 총괄TF 팀장을 맡아 '그린화'(노조 탈퇴 작업) 작업을 지휘했다는 혐의다. 하지만 아직 삼성전자나 삼성그룹이 개입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검찰이 삼성그룹으로 수사를 연결하기 위해 구속영장 청구를 남발하고 무리한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검찰 안팎에서 나온다.

이 의혹은 3년여 전 검찰이 수사해 대부분 무혐의 처리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검찰이 지난 2월 삼성이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소송비를 대신 내줬다는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다시 시작됐다. 다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했다는 의혹을 받는 회사다. 당시 검찰은 삼성전자 수원 본사를 압수 수색하는 과정에서 외장형 하드디스크를 들고 나가던 직원을 붙잡았는데 이 디스크에 '노조 와해' 문건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이후 검찰은 별건으로 재수사를 진행했다.

검찰 수사는 강도 높게 진행됐다. 지난 4월 6일 삼성전자서비스를 시작으로 지난달 24일 삼성전자 본사까지 총 네 차례 압수 수색을 했다. 세 차례에 걸쳐 삼성전자서비스 본사와 지방센터 등을 뒤진 데 이어 삼성전자까지 압수 수색한 것이다. 이 역시 과도한 수사라는 말이 나온다.

이 수사가 시작된 시점도 논란이다.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해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석방된 지 사흘 만에 소송비 대납 사건과 관련해 삼성전자 본사를 압수 수색했다. 그리고 뒤이어 노조 와해 사건 수사에도 착수한 것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삼성이 괘씸죄에 걸려 과도한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비리 처벌 목적이 아니라 기업 자체를 표적으로 삼고 수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A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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