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계의 앤젤리나 졸리? "이번 무대, 제 진가 보여드릴 것"

김경은 기자
입력 2018.06.13 03:00

소프라노 니노 마차이제, 예술의전당서 '라 보엠' 선봬

30도를 웃도는 한낮. 여인은 가죽 재킷에 스카프로 목을 감싼 채 나타났다. 에어컨부터 껐다. "찬바람을 피해야 해서. 여기에 아주 안 좋거든요." 손가락으로 목을 톡톡 치는데, 이목구비가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를 똑 닮았다. 옛소련 조지아 출신 소프라노 니노 마차이제(35)다.

13~1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수지오페라단(단장 박수지) 오페라 '라 보엠'(연출 비비안 휴잇)에 주역 미미로 선다. 배경은 크리스마스 이브 프랑스 파리. 쪽방에 사는 청년 로돌포가 불을 빌리러 온 여인 미미와 마주친다. 청초한 미미에게 한눈에 반한 로돌포는 그녀의 차가운 손을 쥐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사랑 고백을 쏟아낸다. 이탈리아 파르마 왕립극장에서 선보였던 무대와 의상, 소품을 그대로 옮겨와 18세기 유럽의 거리를 재현한다.

마차이제는“이번엔 꼭 불고기를 먹겠다”며“쭉 뻗는 힘은 배 힘에서 온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건반을 치는 대신 노래를 불렀다. 진로를 바꿔 성악아카데미에 들어갔다. 2005년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 간 지 2년 만에 명문 라 스칼라극장에서 데뷔했다. 도니제티 오페라 '연대의 딸'의 주역 마리였다.

2008년 라 스칼라에서 명(名)지휘자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푸치니 오페라 '쟌니 스키키'에 주역 로레타로 설 때였다. 유럽의 대표 음악 축제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빨간불이 켜졌다.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할 예정이던 스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임신을 했다. 대타가 절실했다. '당대 최고의 인물만 세운다'는 취지에 따라 축제 관계자들이 이웃 이탈리아로 왔다. 그때 마차이제가 눈에 띄었다.

"잘츠부르크에 와서 줄리엣을 노래할 수 있겠느냐 묻길래 '물론'이라고 했지요." 남은 시간은 1주일. 줄리엣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말렸다. "저 혼자만 자신만만했어요. '날아드는 기회는 무조건 낚자. 뒷일은 그때 가서 생각한다' 마음먹었거든요." 벼락치기밖에 없었다. 프랑스어 가사와 음표, 박자, 셈여림을 모조리 외웠다. 운명의 날, 기름진 중저음을 바탕으로 고음을 노련하게 꺾고 젖혔다. 뜨거운 연기가 관객을 사로잡았다. '오페라계의 앤젤리나 졸리'가 탄생한 순간이다.

5년 전 아들을 낳고 목소리가 한층 두꺼워졌다. 마차이제는 그걸 '신종 무기'라 했다. "소프라노에게 서른다섯은 전성기. '라 보엠' 미미, '마농'의 마농, '파우스트'의 마르그리트처럼 무겁고 비극적인 배역으로 새 인생을 개척할 때가 됐어요. 이번 무대가 저의 향후 10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겁니다."▶

오페라 '라 보엠'=13~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42-0350·0355


조선일보 A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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