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121] 유신 시절 정부, '표준 婚需' 제정… "신혼 때 '부부생활' 표준도 정하라" 비꼬기도

김명환 前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장
입력 2018.06.13 03:12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마지막 해이던 1979년 5월 19일, 보건사회부가 '표준 혼수 모형'이란 걸 제정해 각 시·도에 시달했다. "결혼 때의 혼수는 이 정도로만 하면 좋겠다"며 국가가 강력 권장하는 혼수품 목록이었다. 가정의례준칙을 시행한 지 10년이 됐어도 호화 결혼 논란이 끊이지 않자 꺼낸 카드였다. 목록은 단출하기 짝이 없었다. 이불(3장), 요·담요, 베게·방석, 옷장, 화장대, 시계나 반지, 신랑용 양복과 구두, 신부용 한복·양장과 구두, 속옷 약간, 전기다리미, 식기·취사도구 약간이 전부였다. 당시 화폐로 70만원어치쯤 됐다.

호화 혼수를 추방하자며 보사부가 1980년 10월 발표한‘표준혼수품목’을 설명한 그림. 1979년에 제정한‘표준혼수모형’을 일부 보완했지만, 15가지 물품뿐인 표준혼수는 빈약하지 않으냐는 비판을 받았다(경향신문 1980년 10월 17일 자).
음식점의 반찬 낭비를 막겠다며 '표준식단'을 정했던 발상으로 만든 표준혼수엔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대도시 중산층 자녀들의 평균 혼수 비용이 378만원이었는데, 70만원 혼수는 빈약하지 않으냐는 의견이 많았다. 목록에 TV, 세탁기, 냉장고도 빼놓고는 굳이 '전기다리미 1개'를 챙겨 넣은 것도 뒷말을 낳았다. "전기다리미 업자와 짠 거 아니냐?"고 시민들이 보사부에 따지는 일까지 일어났다.

"신랑 신부용 이불 숫자까지 정부가 정하는 게 맞느냐"는 근본적 문제 제기도 있었다. 유신 정부 말기의 무리수에 대해 한 교수는 신문 기고를 통해 작심한 듯 이죽거렸다. 그는 "혼수만 표준을 정할 게 아니라 신혼여행지는 결혼식장에서 반경 50㎞ 이내, 호텔은 무궁화 둘 이하, 첫날밤 소등 시간은 밤 9시로 하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특히 신랑·신부의 체력 관리를 위해 '표준 부부생활 모형'까지 제정하는 것은 어떨는지"라고도 했다(경향신문 1979년 5월 21일자).

박정희 대통령 시대가 끝난 뒤에도 표준혼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1980년 10월 7일 전두환 대통령이 호화 결혼 추방을 지시하자 검찰의 호화혼수 특별 단속이 시작됐다. 수백 명이 입건됐고 아파트를 사준 사람은 '증여세 폭탄'을 맞았다.

그 시절 일부 졸부 집안의 호화 결혼은 서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1캐럿 다이아 등 트럭 4대분의 혼수를 해준 집도 있었다(조선일보 1980년 12월 10일자). 이런 풍조에 대해 전 대통령은 "대정부 불신의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민심을 수습해야 했던 신군부 정권으로선 계층 간 위화감을 방치했다가는 위험할 수 있다고 봤음을 보여준다.

보사부는 낮잠 자던 표준혼수모형을 꺼내 들고는 '전기밥솥'과 '밥상 2개'를 추가해 다시 발표했다. 정부는 표준혼수를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에 넣으려 했지만 "계층 간 취향과 경제력 차이를 무시한 난센스"라는 비판이 거세자 1980년 12월 백지화했다.

6월을 맞아 요즘 곳곳에서 혼수 박람회가 열려 예비부부들 발길이 몰리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커플들 관심은 혼수품의 총액이 아니라 '취향에 딱 맞는 아이템을 얼마나 장만하느냐'에 있다고 한다. 그간 혼수품에 끼지 못했던 공기청정기, 무선청소기, 의류관리기 등의 판매량이 결혼 시즌에 390%까지 뛰고 있다. 이른바 '가심비(가격 대 마음의 만족비)'를 추구하는 트렌드가 빚어낸 결과라 한다. 정부도 국민도 오로지 혼수를 얼마치 장만해 가느냐에만 신경 썼던 40년 전엔 꿈도 못 꿨던 혼수품 개성시대다.


조선일보 A25면
네이버구독하기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