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반칙의 경제大國'과 이웃으로 사는 법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입력 2018.06.13 03:16

中, 정부 보조금·기술 베끼기 등 온갖 '편법'으로 우리 기업 괴롭혀
한국 방송 표절한 뒤 수출 노려… WTO 제소 등 불공정 개선 나서야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중국 스마트폰 부품 회사에서 간부로 일하는 한국인 K씨로부터 삼성 스마트폰이 중국에서 추락한 '진짜 원인'을 들을 수 있었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의 점유율은 한때 20%를 넘었으나, 작년 4분기 0.8%로 떨어졌다.

K씨는 "삼성폰과 중국 현지산의 기술 격차는 거의 사라졌고 가격은 2~3배나 차이 나기 때문에 사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갤럭시 S9이 6500~7000위안(약 117만원)인 반면, 성능이 비슷한 중국산은 2000~ 3000위안(약 50만원)이라는 것이다. 소위 가성비(價性比)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이런 차이가 나는 원인은 뭘까? 정부 보조금이라고 했다. K씨는 "중국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 매출을 올리는 자국 스마트폰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로컬 업체들은 싼 가격으로 물량을 풀어 매출을 올리고 정부 보조금으로 적자를 메꾼다"고 했다.

즉 삼성이 아무리 원가 절감으로 가격을 낮춰도 중국 업체는 그보다 더 낮은 가격에 팔기 때문에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 보조금은 증거를 찾기 어렵고, 증거를 잡아도 제소하기 어려우며, 제소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신기술 개발도 현지 업체가 금방 베끼거나 따라오기 때문에 약효가 길지 않다. 한국 스마트폰 업체는 그동안 중국 기업과 경쟁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정부-기업 연합군'과 경쟁해온 것이고, 이제 중국의 '반칙' 앞에 무릎 꿇기 직전이라고 K씨는 말했다.

자국 산업과 기업을 키우고, 외국 경쟁사의 기술을 흡수한 뒤 도태시키려는 중국의 반칙과 차별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은 수천억원씩 들여 중국에 공장을 짓고도 중국 정부의 보조금 차별에 몇 년째 눈물만 삼키고 있다. 외국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 그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나라는 세계에 중국뿐이다.

반도체 세계 1~3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달 말부터 중국 시장감독총국의 '반독점 위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번 조사가 반도체 가격 인하를 노리는 외국 기업 '손목 비틀기'인 동시에,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를 위한 '의도적 괴롭히기'란 의심을 떨칠 수 없다.

국제 교역 질서를 짓밟는 중국의 횡포는 한류(韓流)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중국 후난TV는 한국 tvN의 인기 프로그램 '윤식당'을 표절한 '중식당(中餐廳)'을 방송했다가 한국은 물론 중국 네티즌들로부터도 "너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올 4월 프랑스 칸 '국제 방송 영상물 견본시(MIPTV2018)'에 참석한 한국 방송 관계자들은 중국 측의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 상하이동방위성TV와 장쑤위성TV는 한국 SBS의 '보컬전쟁: 신의 목소리'와 KBS2의 '노래싸움-승부' 포맷을 무단으로 베낀 프로그램을 자국에서 제작-방송한 것도 모자라 해외에 판매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달 초 중국 방문 후 "중국의 한국 반도체 업계에 대한 견제가 상당히 계속될 것"이라며 "우리 기업의 애로 해소를 중국에 일관되게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 정도 요구에 중국이 눈 하나 깜빡할지 의문이다. 사드 갈등에서 보았듯이, 중국에 자비(慈悲)를 구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중국의 불공정, 반칙, 차별 사례를 수집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를 준비하는 한편, 주요 교역국과 연대해 중국에 공정한 무역 질서와 투자 환경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 기업도 업종에 따라 대중(對中) 투자 전략을 전면 조정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지금 같은 불공정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대중 교역과 투자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인건비가 중국의 4분의 1인 베트남은 이미 한국 기업의 제2 투자 성지(聖地)가 됐다. 북한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제멋대로 이웃'의 반칙이 계속 이기게 놔둘 수는 없다.


조선일보 A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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