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 마약제조? 사제폭탄? 응암동 가정집 폭발사건 미스터리

한동희 기자
입력 2018.06.13 10:30 수정 2018.06.13 13:22
지난 5일 폭발 사고가 난 서울 은평구 응암동 주택 5층. 왼쪽 창문이 깨져있는 곳이 폭발이 일어난 지점이다. /연합뉴스TV 캡처
지난 5일 오후 10시34분 서울 은평구 응암동 다세대주택 5층에서 “펑!”하는 폭발음이 났다. 깨진 유리창 파편은 아래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 지붕 위로 쏟아졌다. 유리 파편이 10m 떨어진 도로에까지 날아갈 정도의 폭발이었다. 한밤에 놀란 주민들이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소방당국이 신고를 접수한 것은 이날 오후 10시 38분이었다. 폭발현장에 도착한 조영만 은평소방서 지휘팀장이 처음 본 것은 왼손이 절단되어 몸부림치는 양모(53)씨였다. “제 손을 찾아주세요.” 양씨가 호소했다. 양씨는 배, 허벅지에도 폭발로 인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폭발은 이 집 서재에서 발생한 것으로 당시 다른 방에 있던 양씨 아내와 자녀는 다치지 않았다. 서재 안은 락스통 형태의 페트병에 담긴 화공(化工)약품이 잔뜩 쌓여 있었다. 페트병에는 아세톤, 황산 같은 라벨도 부착되어 있었다. 조 팀장은 “발화성 물질이 보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경찰 폭발물 처리반(EOD)을 불렀다”고 전했다.

화공약품은 서재 뿐만 아니라 거실, 옥상에서도 다량 발견됐다. 당시 수거한 약품은 9인승 승합차 여러 대에 나눠 실어야 할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서재에서는 화학 관련 서적들도 발견됐다.

양씨는 구급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송 과정에서 양씨는 “아세톤 뚜껑을 열어둔 채로 담배 피우다 폭발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소방당국은 아세톤에 의한 폭발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조 팀장은 아세톤 증기 폭발은 대개 화재로 이어지는데, 이번 경우에는 불이 나지 않았다”면서 “폭발의 직접적인 원인을 아세톤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찰도 양씨 진술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한 수사 관계자는 “화학 전문지식이 있는 양씨가 아세톤 뚜껑을 열어두고 실내에서 흡연했다는 것을 선뜻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취미생활’로 인한 단순 폭발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양씨는 20년간 기업·병원 등에서 ‘소방 안전 관리자’로 근무해 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도 한 대기업의 소방 안전 관리자로 재직 중이다. 그는 화공 기사·위험물 산업 기사 등 관련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양씨 가족들은 경찰조사에서 “(양씨가)평소 화학에 취미가 있는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나 많이 집안에 쌓아두고 실험하는지는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양씨 집에서 발견된 아세톤, 황산에 주목하고 있다. 이 약품들은 마약인 필로폰(속칭 히로뽕)의 재료다. 이로 인해 아세톤·황산은 마약류 원료물질 관리대상으로 지정되어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손톱 지우는 용도로 약국·화장품 가게에서 파는 소량의 아세톤은 규제대상이 아니지만, 보통 1리터 이상은 취급허가를 받은 업체들만 거래한다”고 말했다.

마약류 원료물질 관리대상으로 지정된 아세톤./인터넷 캡처
현재 경찰은 양씨의 화공약품 구매처를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양씨가 마약 전과는 없지만, 마약 제조 공정에서 폭발이 발생한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며 “약품 판매처에 양씨의 구매기록 등을 요청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사제폭탄 제조과정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장에서 사제폭탄 재료가 봉투에 담긴 채 발견된 까닭이다. 경찰은 이 봉투를 국과수에 넘겨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사제폭탄 제조법은 온라인 공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경찰은 현재 디지털 포렌식(훼손된 데이터 복원기법)으로 양씨의 인터넷 검색기록을 복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동시에 수거한 물질 가운데 화약류를 분류하고, 이들 화약의 종류와 폭발 원인 등을 규명하고 있다.

‘응암동 폭발사고’의 열쇠를 쥔 양씨에 대한 조사는 아직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중상을 입은 양씨가 지난 9일 왼손 봉합수술을 받고 현재 병원에서 회복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양씨가 회복되는 대로 폭발사고 경위 등을 추궁할 계획이다. 현재 양씨는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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