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가짜 덩샤오핑'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18.06.12 03:15

鄧小平은 사상 해방과 實事求是로 개혁 성공
'김씨 왕조' 계승자인 김정은, 이념의 굴레 벗어날 수 있을까

안용현 논설위원

1977년 세 번째 복권된 덩샤오핑이 중국 개혁·개방을 위해 처음 맡은 분야는 경제가 아니었다. 과학과 교육 담당을 자원했다. 문화대혁명 10년 광풍(狂風)에서 살아남은 과학자들을 불러모으고 대학 입시를 부활시키는 일부터 했다. 과학과 교육의 뒷받침이 없으면 경제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지난 4월 노동당 회의를 열고 핵·ICBM 실험 중단을 선언하면서 3개의 '결정서'를 채택했다. ①핵·경제 병진 노선 ②경제 총력전 ③과학·교육 혁명에 관한 결정서인데 40여 년 전 중국처럼 과학과 교육을 별도로 뽑아 강조했다.

1978년 덩은 서유럽·동유럽·일본·홍콩 등 4곳에 고위급 시찰단을 보냈다. 100여 년 전 일본 메이지 정부의 이와쿠라 사절단처럼 천지개벽한 외부 세계를 보고 배우라는 것이었다. 당시 서유럽 시찰단이 제출한 보고서는 그해 말 중국이 개혁·개방 노선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정은도 지난달 시·도당 위원장(시·도지사) 전원을 중국에 파견했다. 북한 단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의 개혁·개방 경험을 배우러 왔다"고 했다. '개혁·개방'은 김정일 시대까지 금기어였다.

덩은 1978~79년 미국·일본·북한·동남아를 바쁘게 순방했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끌었고 일본과 우호 조약을 맺었다. 소련을 업고 세력을 키우던 베트남과는 전쟁을 치렀다. 중국 안보를 위협하던 국제 환경을 정리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에 나섰다. 김정은은 올 들어 두 차례 남북 및 북·중 정상회담에 이어 오늘은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 핵을 카드로 체제 안전을 보장받으려 할 것이다. 최근 김정은의 이런 움직임을 보고 일부에선 '북한판 덩샤오핑'이 되는 것 아니냐고 기대한다.

정말 김정은이 덩의 길을 가려는 것일까? 1978년 12월 덩은 개혁·개방 논쟁이 격렬할 때 '사상 해방'이 중요하다는 연설을 했다. 마오쩌둥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세력을 비판한 것이다. 특히 정치 민주에 대해 "머리채를 잡지 않고, 모자를 씌우지 않으며, 몽둥이로 때리지 않는 것"(조영남 책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인용)이라고 했다. 문혁 때처럼 견해가 다르다고 박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히려 "가장 두려운 일은 까마귀와 참새 소리마저 없는 것"이라고 했다.

덩이 낡은 사상의 굴레를 벗겨준 덕분에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이 들불처럼 번질 수 있었다. 북은 어떤가. 사상 해방은커녕 김정은 연설 도중에 졸아도 고사포로 쏴 죽인다. '김씨 왕조' 계승자인 김정은이 할아버지나 아버지 잘못을 1%라도 인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덩은 '홍(紅·이념)'보다 '전(專·전문 지식)'을 더 중시했다. 반면 북은 며칠 전까지도 '이념 무장' 타령을 했다. 미 CIA는 북이 1970년대 한국과의 경제 경쟁에서 일찌감치 밀린 이유를 기술보다 이념에 치중한 교육 시스템에서 찾았다. 지금 북한의 노동력이 아프리카 수준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수십 년 동안 '김씨 어록 외우기 식' 교육에 매달린 결과다.

1970년대 말 해마다 수천~수만 명의 중국 젊은이가 살길을 찾아 홍콩으로 탈출했다. '철조망과 초소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덩은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 젊은이들이 홍콩으로 갈 필요가 없어진다"고 했다. 김정은이 옛날처럼 철조망에 포위된 경제특구나 추진하면서 주민들 사상을 계속 옭아매려고 한다면 절대 덩샤오핑이 될 수 없다. 오늘 북핵과 함께 녹슨 이념의 철조망까지 모두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길 소망한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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