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확실한 근거 못대다… '기획탈북' 방송 직후 고발

신수지 기자
입력 2018.05.15 03:00

방송에 나온 의혹 반복… 2년前처럼 '납치' 기정사실화
탈북단체 "변호사 집단이 북한 옹호하는 세력에 동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2016년 4월 중국의 북한 식당 종업원들이 국내에 들어온 뒤부터 줄곧 '기획 탈북'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들은 중국 칭화대 초빙교수인 친북 인사 정기열씨를 통해 종업원들 가족의 위임장을 받아 같은 해 5월 국정원에 종업원들에 대한 변호인 접견을 신청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열린‘북한 식당 종업원 기획 탈북 및 유인 납치 조작 사건’관련 기자회견에서 민변 관계자 등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종업원의 집단 탈북은 국정원에 의해 기획된 유인 납치 사건”이라며 관계자들의 사법 처리를 주장했다. /연합뉴스
민변은 법원에도 종업원들이 자발적으로 입국했는지 의문을 풀어야 한다며 인신 보호 청구를 냈다. 그러나 법원은 "이들이 자유에 제한을 받고 있다고 볼 자료나 정황이 없다"며 청구를 각하했다. 민변이 별다른 근거 없이 종업원들이 강제로 수용돼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판단은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그러다 14일 기자회견까지 열어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이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 12명을 강제로 탈북시켰다"며 이병호 전 국정원장 등을 강요죄와 체포·감금죄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것이다.

민변이 고발 근거로 내세운 것은 지난 10일 한 방송 보도였다. 중국의 북한 식당 지배인 허강일씨는 방송 인터뷰를 통해 당초 본인과 아내만 귀순하기로 했으나 국정원 직원이 '종업원들을 다 데리고 들어오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종업원들을 협박해 함께 탈북했다는 것이다. 일부 여종업원도 '남한행을 몰랐다'고 했다.

민변 천낙붕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방송 보도 이후 구체적인 범죄 사실과 그에 대한 증거가 상세히 나와 범죄 입증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장경욱 변호사는 "그동안은 '의혹'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의혹을 떼고 '범죄 행위'로 대해야 한다"고 했다. 보도 내용 외에는 달리 제시할 근거가 없는데도 2년 전처럼 기획 탈북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 탈북 종업원은 방송 내용이 자신들의 발언 취지와는 다르게 편집됐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 종업원을 만난 NGO 관계자는 발언의 진의가 왜곡됐다고 했다. "탈북자들이 '고향에도 가고 싶고 부모도 보고 싶다'는 일반적 얘기를 했는데 '기획 탈북이니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보도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탈북자들 상당수는 남한행도 알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북에 있는 가족들의 안위 때문에 이런 말을 외부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법조계에선 변호사 모임인 민변이 일부 의혹만 일방적으로 부풀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사안을 수사하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도 있다. 아직 확인된 적은 없지만 여종업원 소수가 북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일각에선 정말 그렇다면 그들의 의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민변 고발로 기획 탈북을 수사하다 보면 이런 문제까지 조사할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비공개로 한다고 해도 그중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은 궁지로 몰릴 수밖에 없다. 자진해 남으로 왔다고 진술한 사실이 노출되면 북에 남은 가족은 반역자로 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로선 거짓말을 해 북의 가족을 보호하거나 진실을 말해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한 변호사는 "늘 인권을 내세우는 민변이 사실상 일부 탈북자를 반(反)인권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이렇게 대놓고 수사하면 다른 탈북자들도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민변이 북의 주장만 대변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한과 결탁한 지배인의 꾐에 종업원들이 속아 탈북했다"는 주장은 종업원 탈북 당시부터 북한 대남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가 주장해온 내용이다. 북한에 들어가 위임장을 받아 민변에 전달한 정기열씨도 김일성 일가를 선전한 공로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이날 고발인으로 참여한 장경욱 변호사는 2011년 '간첩단 왕재산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가 핵심 증인에게 묵비권 행사를 종용한 사실이 재판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탈북자동지회 서재평 사무국장은 "북한을 옹호하는 세력이 하는 짓에 변호사 집단이 동조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민변은 그동안 북의 세습 왕조나 북한 정치범 수용소 현실에 대해선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조선일보 A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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