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모란은 꽃 중의 왕… 당나라 시절 한 포기 값이 비단 25필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18.05.05 03:02

[김두규의 國運風水]

사람의 심장과 비장에 스며드는 모란의 향은 國色天香, 부귀·건강·장수 상징

지난달 김두규 교수의 시골집에 핀 모란. /김두규 제공
꽃도 한철이다. 한 뼘도 안 되는 시골집 마당 한구석에 수선화가 이른 봄을 알리고, 튤립이 뒤를 잇는다. 튤립 지면 모란이 4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때까지가 가장 좋다. 모란의 낙화(落花)는 "찬란한 슬픔의 봄"(김영랑)의 절정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모란은 향기가 없다'고 오해를 한다. 선덕여왕 때문이다. "이 꽃이 몹시 아름답지만, 그림 속에 나비와 벌이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는 꽃일 것이다." 이후 선덕여왕의 지혜로움을 말할 때 모란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다.

풍수에서 "모란은 하늘과 땅의 정기로서 뭇 꽃의 으뜸이며, 그야말로 부귀의 꽃이다(牡丹乃天地之精, 爲群花之首, 也是富貴之花)" 하여 최고로 여긴다. 건강과 장수도 가져다준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한 그루 모란을 심을 수 없으면 한 폭의 모란화를 걸어두었다. 산수화의 거장 허련(1809~1892)의 별명이 '허모란'이었던 것도 모란을 잘 그려서이기도 하지만 모란 그림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서였다. 김지하 시인도 즐겨 모란을 그리는데, 그 작품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왜 모란이 부귀를 가져다준다고 할까? 두 가지 차원에서이다. 첫째는 모란이 당나라 궁궐에서만 소중히 재배되었다가 이후 귀족·사찰·도관을 거쳐 부잣집으로 분양된다. 가격이 천문학적 숫자였다. 당시 모란 한 포기가 비단 25필 값이었는데, 10가구 중인(中人) 1년 세금과 맞먹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모란 그 자체가 드러내는 품격 때문이다.

모란이 꽃 중의 왕[花中之王]이 된 것은 모란의 향과 색 덕분으로 국색천향(國色天香)이라 하였다. 분홍색·자주색·엷은 붉은색·흰색·황색 등 색상도 다양하다(우리나라 모란은 대개 자주색이 많다). 색도 그렇지만 향에 대해 형용하기는 더 어렵다. 모란이 꽃을 피우면 그 향이 마당을 묵직하게 맴도는데, 무어라 표현하기가 힘들다.

당나라 유명 시인들도 모란 향을 형용하려 애쓴 흔적들이 보인다. '하늘이 낸 향[天香]' '진기한 향[異香]' '기이한 향[奇香]' '사향노루향[麝香]' '꽃다운 향[馨香]' 등으로 표현하였지만 언뜻 와닿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무명씨가 모란의 향을 "사람의 심장과 비장에 스며들게 하는 것(沁人心脾)"으로 표현하였다. 이 글귀에 형광펜을 몇 번씩 그었다.

풍수의 핵심 이론이 동기(同氣)감응론이다. 같은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길흉화복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동기감응은 감각을 매개로 한다. 이때 결정적인 것은 시각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워하고 그 속에 살려는 것도 그 아름다운 자연을 유비적(類比的)으로 체화하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에서이다.

시각적인 것 말고도 청각적인 것도 동기감응의 수단이 된다. 아름다운 음악이 대표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모란은 색과 더불어 향, 즉 후각적인 것이 사람의 심장과 비장에 스며들어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러한 까닭에 모란이 부귀·건강·장수를 가져다주는 꽃이 되었다.

모란이 꽃망울을 터뜨려 그 화려함을 자랑하다가 질 때까지 대략 스무 날쯤 걸린다. 남쪽에서부터 북상하면서 모란이 피기에 한 달도 넘게 그 꽃의 향과 색을 즐길 수 있다. 굳이 집마당에 모란을 심지 않아도 경복궁·운현궁·남산한옥마을·동관왕묘 그리고 명문 고택을 찾으면 쉽게 접할 수 있다. 모란의 명소들을 대충 알겠다고 자부했으나 백운동정원(전남 강진 성전면)의 모란 화계(花階)는 모르고 있었다. 다산 선생이 이에 대해 시를 지었다는 것도 몰랐다. 올 초 조선일보 출신 한 중견 언론인이 이곳을 알려주어 처음으로 그곳 모란을 보았다.

조선일보 B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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