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분석] "판문점 선언, 비핵화 원론적 언급…핵심 못건드려"

양승식 기자 윤희훈 기자 변지희 기자
입력 2018.04.27 18:43 수정 2018.04.27 19:30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27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대해 “한반도 문제의 핵심인 비핵화 문제가 원론적으로 거론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다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 선언”이라는 의견과 “기본적으로 미북대화에서 이뤄져야할 비핵화를 선언문에 명시한 것은 성과”라는 얘기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2007년 10·4 선언을 이어받은 합의문”이라고 했다. 다만, 당시 선언에서 문제됐던 서해북방한계선(NLL) 문제 등을 복원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사인한 뒤 서로 포옹하고 있다./한국 공동 사진기자단
다음은 전문가들의 인터뷰.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구축 문제는 2007년 10·4 선언과 판박이이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의지가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 그동안 우리의 아젠다는 비핵화, 평화구축, 남북관계 순이었다. 그런데 이번 선언문을 보면 순서가 남북관계, 평화구축, 비핵화로 거꾸로 돼 있다. 분량도 그 순서대로 많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비핵화보다는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비중을 둔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는 사실상 미북정상회담으로 미룬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이번 선언문은 민족·자주의 원칙을 유난히 강조한다. 이를 남북관계 개선에만 조명하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핵문제까지 대입하면 앞으로 핵문제 해결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노파심이 든다.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서 새로운 내용은 개성 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것을 왜 개성에 두는지 의문이다. 보통 연락사무소는 대사관을 설치하기 위한 전 단계에서 쌍방간 수도에 설치하는 것이 통상적인 예다. 쌍방간 인질을 잡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개성 공단이 재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연락사무소에 상주하는 직원은 유사시에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에, 왜 개성이냐는 문제가 중요하다. 평화구축 관련한 부분에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전환한다는 내용은 이미 예고됐었다. 가장 우려하는 것은 평화 수역 문제다. 사실 10·4 선언에서도 국내적으로 논란이 야기됐던 게 NLL 문제다. 이 경계선과 충돌 현상을 일으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3자회담, 다자회담, 종전선언 이런 이야기들은 10·4 선언의 판박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예전과 달리 3자를 남북미, 4자를 남북미중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미국에 대한 유화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북한이 중국보다 미국을 더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미국이 미소 짓게 한 것이다.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공의 목표를 갖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 문구가 지뢰밭으로 보인다. 주어가 남과 북이다.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는 북 뿐만 아니라 한국도 포함된 것이다. 북한은 주한미군이 핵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미국이 남측에 제공하는 핵우산까지도 철폐해야 한다고 하고 있는데, 북한의 이러한 기존 입장이 강력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의 비핵화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

“기존에 합의했던 사항을 이행하는 내용과 함께 군사적 긴장 완화, 그것을 토대로 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자는 메시지가 담겼다. 인도적 문제도 들어가 있고, 2차 정상회담까지 한다는 내용이 포괄적으로 잘 들어갔다. 기존 합의에 대한 이행 의지를 표명했고, 국제 사회의 대북제재 국면 속에서도 남북 간에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명시하는 등 현실적인 면도 감안했다. 담대한 선언과 함께 현실을 반영한 합의문이다. 비핵화와 관련한 부분이 맨 앞에 나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비핵화는 북미정상회담이 남아있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에서 메인으로 다루긴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선언문에도 비핵화 의지와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다 들어갔다. 비핵화가 뒷부분에 담겼다는 이유로 평가를 인색하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27일 손을 잡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한국 공동 사진기자단
◇남성욱 고려대 교수

“원론적 수준의 핵문제 터치다. 합의문 문장이 이 정도로 그치니까 남북정상회담이 이렇게 빨리 끝난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관련한 조항을 이렇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북한이 핵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더욱 부각했어야 했는데 대화에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지난주에 나온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의 결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다. 핵보유국으로서 핵군축을 하겠다는 컨셉트와 일맥상통했다. 나머지 조항들은 2007년 10·4 선언의 확대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종전선언, 평화협정, 철도 연결 등은 모두 미북회담에서 진전이 없으면 진행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핵에 관해서는 2단 기어 수준인데, 교류협력은 4단 기어를 걸어놓은 모양새다. 엇박자가 났다. 비핵화 없는 군사적 긴장완화도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주변 문제다. 전반적인 남북 간 긴장 완화라는 취지는 좋으나 역시 비핵화라는 핵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

“2000년 6·15와 2007년 10·4 선언을 섞어놓은 수준이다. 핵심인 ‘비핵화’는 합의문 가장 마지막에 써놨고 용어도 ‘한반도 비핵화’다. 북한 핵폐기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이야기한 것이다. 핵폐기의 타임테이블과 로드맵 이야기는 전혀 없다. 국제 사회가 관심 있게 보는 건 핵폐기의 로드맵과 타임테이블이었는데 원론적인 비핵화 선언이었다. 전혀 새롭지 않고 수없이 이야기해왔던 내용이다.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는 세부적으로 비핵화와 관련한 행동이 적시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표현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형식은 요란한데 핵문제와 관련된 내용은 빈약하다. 합의문 가장 처음에 강조한 민족 공조의 중요성과 당위성 문제는 이미 많이 이야기해왔던 것이다. 연락사무소를 개성에 둔다는 것은 개성공단을 다시 열기 위한 하나의 명분을 만든 것이다. 일종의 평창식 예외조치라고 할 수 있다. 종전 선언 문제는 미북정상회담의 결과를 봐야 알 수 있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핵문제를 지극히 원론적인 립서비스로 언급하고 끝냈다.”

◇송종환 경남대 석좌교수

“껍데기는 좋아 보이지만 알맹이는 과거 합의보다 못하다. 11년만에 대화 재개가 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선언 내용은 국제사회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우선 북한 핵폐기를 위한 신고, 사찰, 검증 등 구체적인 이행 내용이 없다. 애매하게 비핵화만 하겠다고 써놨다. 또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보다 구체적이지도 않다. 민족·자주의 원칙에 대한 해석도 남북 양측이 다르게 할 여지가 있다. 우리는 ‘민족·자주’라는 말을 당사자끼리 해결하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북한은 외세 반대, 주한미군 철수라고 생각한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때도 이 부분과 관련해 남북이 다르게 해석해 조항이 이행되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 조항이 문제가 될 수 있다. 10·4 선언을 이행한다는 부분도 비현실적이다. 철도 연결 등의 내용을 실현하려면 재정적 부담이 막중한데다, 북핵 폐기와 군사적 긴장완화 체제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다. 서해에 공동어로구역을 만든다는 내용 역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할 소지가 있다.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에 들어가려면 문서로 합의하기 전에 남북 기본합의서에 규정된 상세한 남북한간 군사적 긴장완화 등이 이행된 이후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서훈 국정원장, 문 대통령,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김정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한국 공동 사진기자단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오늘 두 정상이 발표한 판문점 선언문에는 우리 국민의 목소리와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모두 담겼다. 제목 그대로 ‘한반도 평화 번영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다. ‘남북관계 발전’ ‘군사적 긴장 완화’ ‘평화구축’까지 모든 분야를 총망라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도 들어갔다. 비핵화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미북정상회담의 몫으로 남겨놨다. 상당 부분 우리 국민의 바람대로, 정상회담답게 담았다고 평가한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

“대부분 10·4 선언에서 확인한 것들을 다시 끄집어 낸 합의로 보인다. 다만 비핵화가 문안에 담겼다는 점에서 진일보하긴 했다. 비핵화에 대한 합의는 아직 추상성이 높아 보인다. 구체성을 띈 입장이라고 보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 서해 평화 수역 조성, 즉 NLL 문제는 남북이 논의는 할 수 있겠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구체적으로 추진되기 전에 먼저 논의하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다. 국내 정가에서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또 NLL과 같이 논쟁이 붙을 수 있는 사안에 집중하다 보면, 비핵화를 많은 남북 간 문제 중 하나 정도라고 작게 간주하게끔 할 여지가 있다. 나머지는 합의는 우리가 독단적으로 할 수 없다. 대북 제재가 해제돼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개성에 연락사무소를 둔다는 자체가 경제협력 확대 의도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복선이 있는 듯하다. 경제 교류 협력을 성급하게 밀어붙여서 경협을 기정사실화하려고 하는 듯하다. 유엔 대북 제재가 풀리고 난 뒤 논의해도 될 일이다. 이는 ‘남북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야 하는데, 외부 세력 덕분에 잘 안 된다’와 같은 이런 선전 차원의 빌미를 또 하나 제공해주는 셈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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