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脫원전으로 核무장 잠재력까지 거세된다면 뭐가 남나

입력 2017.10.03 03:20
새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우리의 독자 핵무장 능력을 사실상 고사(枯死)시킬 것이라고 한다. 당장 대한민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후 핵무장의 길로 가게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국제사회의 반대도 있지만 독자 핵무장이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통일 전략에 부합하느냐는 문제가 있다. 북핵 대응책을 모색하는 안보 전문가들이 미군 전술핵 재배치와 미국과의 핵 공유를 대안으로 거론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핵무장을 하는 것과 핵무장 할 능력을 보유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국제원자력기구는 한국을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1~2년 안에 핵무장 할 수 있는 국가로 분류한다. 한국의 원자력 인프라·인력의 수준이 실제 그렇다. 이 사실 자체가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우리를 둘러싼 동북아의 지정학적 환경은 한 전문가의 표현대로 세계 최악이다.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민주주의를 존중하고 상대국의 처지를 배려하는 관용이 뿌리내린 나라가 하나도 없다. 북한 김정은 집단은 민족을 몰살시킬 수 있는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아직도 공산당 1당 독재를 하는 나라가 있고, 온 국민이 지도자를 '황제'처럼 떠받드는 나라도 있다. 그런 나라들이 인구나 기술, 핵폭탄으로 무장하고 국제관계에서 폭력적 행동을 예사로 한다.

이런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중규모 개방 국가가 자존(自尊)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 경제, 외교, 국방이 모두 견실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서 최악의 경우에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할 능력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그중의 하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핵무장 잠재력이다. 핵무장을 할 능력이 있는 나라와 아예 그 능력 자체가 없는 나라의 처지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이 본격화되면 원자력 산업과 연구의 기본 골격이 허물어지고 국내 전문 인력은 해외로 흩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경우 핵무기 개발에 걸리는 시간은 최소 4~5년으로 늘어난다는 게 원자력 전문가들 예상이다. 실제 중국의 인력 흡수 시도가 가시화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위기도 우리를 4~5년씩 기다려줄 리 없다. 핵무장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정작 탈원전을 해야 할 나라는 일본이다. 실제 쓰나미로 원전 사고가 발생한 나라다. 그런데 그 일본은 원전을 재가동하고 있다. 일관된 정책으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까지 확보했다. 일본은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시간을 3개월까지 줄였다는 보도도 있다. 역대 어떤 일본 정부도 이 잠재력을 훼손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단 한 건의 원전 사고도 없었고 세계 최고로 안전하게 원전을 운영하는 모범국인 대한민국에서 정권 한번 바뀌었다고 난데없는 탈원전 소용돌이가 일어나 50년 이상 일궈온 국가 전략산업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려 한다. 가당치 않은 일은 결국 바로잡히게 되지만 5년간의 퇴행이 원자력 산업에 가져올 피해는 오랫동안 후유증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안보까지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조선일보 A31면
네이버구독하기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