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낡음, 너의 이름은 '재생 건축'

구성 및 제작 = 뉴스큐레이션팀 정진이
입력 2017.07.11 08:52

재생의 사전적 의미는 '죽게 되었다가 다시 살아남'이다. 요즘은 사람만 죽을 고비에서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니다. 부서지고 없어질 위기에 놓인 건물도 다시 살아난다. 요즘 세계 곳곳에서 '재생 건축'이 인기다.

재생 건축이란 과거 건축물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원형, 또는 그 일부를 디자인 요소로 살려 새로운 기능과 용도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걸 말한다. 낡은 건물에 숨결을 불어넣고 그 건물이 품었던 유·무형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후대에 이어주는 것이다.

이 재생 건축은 산업의 발생지였던 유럽에서 시작됐다. 유럽사람들은 1차에서 2차, 2차에서 3차로 산업혁명이 이루어지며 쓸모 없어진 건물을 부수는 대신, 그 정체성을 간직한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 시켰다. 재생건축하면 딱 떠오르는 건물들이 유럽에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재생 건축물들을 살펴봤다.

지난 2000년 영국 런던에 테이트 모던 현대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템즈 강변의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만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세계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뱅크사이드 발전소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런던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지어진 화력발전소인데 1981년 공해 문제로 가동이 중단됐었다.

영국 정부는 흉물이 돼 20년 동안 버려진 화력발전소를 부수는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했다. 그 결과 이 화력발전소는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해 4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고, 런던은 현대 미술의 중심지로 급부상 했다.

(왼) 과거 화력발전소의 모습인 테이트 모던. (오)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갤러리 모습. /tate홈페이지·블룸버그

도시 특성 살려 최고 미술관으로 거듭나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프랑스 파리 한 가운데 세워졌던 오르세 기차 역은 호텔, 레스토랑 등의 부대 시설을 포함한 초호화 기차역이었다. 이후 철도가 빠르게 발전하고, 새로 개발된 열차와 플랫폼의 규격이 맞지 않게 되면서 1939년부터는 장거리 열차의 운행이 중지됐다. 점차 쇠퇴하던 오르세역은 1973년 호텔마저 영업을 종료하면서 결국 문을 닫았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오르세역은 루브르 박물관 책임자들 사이에서 미술관으로 개축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재생의 기회를 얻었다. 1978년 오르세 미술관 건립 준비위원회가 결성됐고, 1979년 건축안 공모전을 거쳐 1986년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약 30년이 흐른 현재는 파리에서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 됐다.

(왼) 오르세 기차역일 때의 내부 모습. (오)현재의 오르세 미술관 내부 모습. /오르세 미술관 홈페이지·조선DB

기차 다니던 '오르세 역', '오르세 미술관'으로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에센, 이 도시에서도 외곽 지역에 있는 졸페라인 탄광은 독일 산업혁명 시기에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는데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석탄산업이 사양산업이 되면서 1986년에 문을 닫았다.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된 채 방치된지 약 10년. 한 예술가가 이 탄광 한 켠에서 전시회를 했던 게 계기가 돼 보존 운동이 시작됐다.

주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시켰다. 굴뚝이 있는 보일러하우스는 디자인 박물관으로, 코크스를 제련할 때 필요한 냉각수를 보관하던 곳은 스쿠버다이빙장으로, 냉각수를 식히던 곳은 아이스링크장으로 바뀌었다. 주 정부와 에센 시의 적극적 노력으로 졸페라인 대부분의 탄광시설은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2010년에는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됐다.

(왼) 과거 졸페라인(Zollverein)의 모습. (오) 현재 졸페라인(Zollverein)의 모습. /졸페라인 홈페이지

해외의 성공한 도시재생 사례는?

1837년에 건립된 핀란드 헬싱키의 '카타야노카 감옥'은 강도, 살인자 등 범죄자 뿐 아니라 사상범, 정치인들도 수감됐던 핀란드 역사의 유물이었다. 지난 2002년 감옥이 다른 곳으로 이전되며 175년만에 문을 닫았다. 이후 감옥을 헐자는 의견이 팽배해지는 가운데 미국 호텔 체인인 '베스트 웨스턴'이 이곳을 호텔로 바꾸겠다고 제안했다.

기존의 감옥 분위기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외관은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내부만 보수와 인테리어에 중점을 둬 개조가 이뤄졌다. 지난 2007년, 도심 내 감옥은 106개의 객실을 가진 호텔로 변신했다.

(왼)카타야노카 감옥(Katajanokka Prison)외부 모습. (오)호텔로 바뀐 카타야노카 감옥(Katajanokka Prison)의 내부 모습. /expedia 캡처

1934년 뉴욕시에 고가 철도가 생겼다. 높이 9m, 길이 20km의 이 고가 철도는 도심 한가운데를 관통하면서도 공중에 위치해 도로 정체에 영향을 주지 않고 화물을 운송했다. 1940년대 이후 고속도로망이 건설되고, 자동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트럭이 화물 운송의 주요 수단으로 대체됐다. 철도가 쇠퇴기에 접어들며  뉴욕의 이 고가 철도도 1980년 마지막 운송을 끝으로 20여년 간 방치됐다.

1999년 이 고가 철도의 철거가 결정났다. 철거를 원치 않았던 시민들은 프렌즈 오브 더 하이라인(Friends of the High Line)이라는 시민단체를 설립해 철도를 보존하고 재활용하자고 홍보했다. 새 뉴욕 시장으로 마이클 블룸버그가 당선된 후 이 시민단체는 블룸버그 시장을 설득했다. 2004년 뉴욕시는 공원 조성을 위해 5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고, 2006년 착공식을 거행해 2009년 첫 번째 구간이 문을 열었다. 하이라인 파크는 뉴욕의 명물로 자리잡았고, 뉴욕 시민이 사랑하는 공간으로 부활했다.

(왼) 과거 고가 철도가 운행되었던 high line park의 모습. (오)공원으로 바뀐 뉴욕의 high line park모습. /Friends of the high line 홈페이지, 조선DB

호텔 훔쳐보기 장소 된 美 공원은 고가 철도 개조한 '뉴욕의 청계천'

중국 상하이에 있는 라오창팡(坊)은 1933년 영국인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아시아 최대의 도축장이었다. 날마다 소 300마리가 도축됐다고 한다. 1950년대까지 도축장으로 쓰이다가 1970년대엔 제약공장으로 활용됐다. 2002년 사용중지 명령이 내려지며 그 용도를 잃었다.

4년 뒤인 2006년 반전이 시작됐다. 수천, 수만 마리의 동물이 죽어나간 이 건물은 카페와 음식점, 웨딩홀, 갤러리, 공연장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지난 2012년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우 8을 전세계 최초로 공개한 장소도 이곳이다.

(왼) 과거의 1933라오창팡(老場坊)모습. (오)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뀐 현재의 1933라오창팡(老場坊)모습. /라오창팡 홈페이지
 
트렌디 & 스파이시 시티 & 상하이

기존의 건축물을 부수지 않고 유지하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재생건축 바람이 우리나라에도 불고 있다. 쓸모 없어진 건물은 무조건 부수고 번듯하게 새로 지어야 좋다던 우리 인식도 바뀌고 있는 중이다.

문화역 서울 284는 1925년 '경성역'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던 구 서울역사가 새롭게 태어난 복합문화공간이다. 지난 2004년 KTX신역사가 완성되며 구 서울역사는 철도역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가 2011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새 옷을 입었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는 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한 안경 브랜드의 쇼룸이 있다.1969년 대중탕으로 문을 열었던 공간을 개조했다. 실제 쇼룸은 목욕탕, 사우나실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목욕탕 특유의 청색타일과 콘크리트 벽면도 그대로다.


제주에 가면 1951년에 세워진 고구마 전분 공장의 변신을 볼 수 있다. 1991년 수입 농산물에 밀려 문을 닫게 된 후 20년 이상 방치됐던 건물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다시 살아났다. 고구마를 세척하던 공간은 책 가판대가 됐다. 증기터빈 원동기, 철제 도르래 등 공장에서 사용되던 기계들을 그대로 멋진 장식이 됐다. 때때로 뮤지션의 공연도 이뤄지고, 전시회도 열린다.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 2개는 2012년 윤동주 문학관으로 탈바꿈했다. 제1전시실이 된 가압장에는 윤동주 시인의 육필원고 등이 전시돼 있고, 물탱크 2개도 전시실로 새옷을 입었다. 제2전시실은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공간을 창조했다. 제3전시실은 시인의 영상물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쓸모가 없어진 건물, 폐허가 된 건축물의 역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새 가치를 입혀주는 것. 그리고 그 안에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는 것이 재생건축이다. 앞으로 더 많은 건축물이 새 옷을 입고 멋지게 변신하길 기대해본다.
 
랜드마크가 된 흉물, 흉물이 된 랜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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