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억 속 '국민 엄마'

구성 및 제작 = 뉴스큐레이션팀 정진이
입력 2017.04.18 08:14 수정 2017.04.18 08:25

"나는 19세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내가 연기를 안 했으면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한테는 대본에 몰입하는 일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단순한 직업 이상이다"

고인이 된 배우 김영애가 생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연기자로 불꽃처럼 살았고, '국민 엄마'로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한 배우의 죽음이 우리의 마음에 이토록 와 닿는 건, 그 연기에서 우리가 위로를 받았기 때문은 아닐까. 김영애를 추모하며 그동안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브라운관 속 엄마들을 함께 추억해봤다.

(왼쪽부터) SBB드라마 '닥터스' 속 故 김영애,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속 故 김자옥, 영화 '해운대' 속 故 김지영, MBC드라마 '대장금'에 '정상궁'역을 맡았던 故 여운계 /SBS드라마 캡처, MBC 캡처, 영화 스틸컷, 조선DB

故 김영애 (1951.4.21~ 2017.4.9)

(왼쪽부터)故 김영애, MBC드라마 '로열패밀리'의 故 김영애, 영화 '애자'의 故 김영애, SBS드라마 '닥터스'의 故 김영애, 유작이 된 KBS드라마 '월계수 양복점'의 故 김영애 모습 /인터넷 캡처, 조선DB, 조선닷컴

1971년 MBC 공채 탤런트 3기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1973년 MBC 단막극 <민비>에서 민비 역을 맡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왕성하게 활동하며 46년 연기 인생에 1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고인은 2012년 MBC <해를 품은 달> 출연 당시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그는 제작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병을 숨긴 채 두 달 동안 병원을 오가며 촬영에 임했다. 2014년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몸이 아파 소리 지르는 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허리에 끈을 칭칭 조여 매고 촬영했다. '해품달' 종영 후 9시간의 대수술을 받았고, 죽다 살아났다. 수술 한 뒤 몸무게가 40kg으로 줄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수술 후 암과 싸우며 드라마 <내 사랑 나비부인> <메디컬 탑팀> <미녀의 탄생> <킬미 힐미> <마녀 보검> <닥터스>와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변호인> <우리는 형제입니다> <현기증> <카트> <허삼관>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인천상륙작전> <판도라> 등 다수의 작품을 찍었다.

故 김영애는 지난 2월 종영한 KBS2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유작으로 남겼다. 수척해진 모습에서는 병세가 완연했지만, 양복점 안주인으로서의 강단과 어머니로서의 애틋한 모성애를 잘 연기하며 우리 가슴 속 영원한 엄마로 남았다.


故 김영애 애도, 차인표가 공개한 김영애의 마지막 모습
"내게 연기는 산소"… 癌 입원 중에도 촬영장 나왔던 그녀

故 김자옥 (1951.10.11~2014.11.16)

(왼쪽부터)1996년 최고의 유행어가 된 '공주병' 신드롬의 정점에서 인기를 누린 탤런트 故김자옥의 모습, SBS연기대상의 故김자옥, 악극 '봄날은 간다' 포스터 속 故김자옥, MBC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故김자옥, tvN '꽃보다 누나'의 故김자옥(가운데) /조선닷컴, SBS연기대상 캡처, 인터넷 캡처, 연합뉴스, 조선DB

1970년 MBC 공채 2기 탤런트 출신이다. 1970~1980년대 대표작으로는 드라마 <심청전> <수선화> <은빛 여울> 등과 영화 <보통여자> <목마 위의 여자> 등이 있다. 그는 1975년 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수선화>에서 사연 많은 간호사 지선을 연기하며 청순가련한 이미지와 함께 '눈물의 여왕' 타이틀을 달았다.

1990년대에 40대가 되면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MBC 코미디 <세상의 모든 딸들>에서 코믹 연기에 도전해 유쾌한 이미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2000년대에는 <내 이름은 김삼순> <커피프린스 1호점><지붕 뚫고 하이킥> <오작교 형제들> 등에서 할머니, 엄마 역할을 연기했다.

故 김자옥은 2008년 대장암 수술을 받았지만, 폐로 전이되며 지난 2014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애잔하고 절절함을 연기하는 엄마보다는 약간은 푼수 아줌마 같으면서도 소녀적이고 친근한 엄마였다. 다른 중년 배우들과의 차이를 두며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엄마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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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지영 (1938.9.25~2017.2.19)

(왼쪽부터)배우 故김지영, KBS 드라마 '화려한 시절'의 故김지영, KBS특집극 '고맙다, 아들아'의 故김지영, 영화 '해운대'의 故김지영 /조선닷컴, 조선DB, 영화 '해운대'스틸컷

1960년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상속자>로 데뷔했다. <야인시대> <산너머 남촌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식샤를 합시다 2> <판타스틱> 등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감칠맛 나는 연기를 선보였다. 또 <파이란> <그녀를 믿지 마세요> <나의 결혼 원정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도가니> 등 100편이 넘는 영화에서 주·조연으로 맹활약했다. 

故 김지영은 우리에겐 '사투리 잘하는 배우'로 인상 깊다. 서울 출신임에도 여러 지방의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그는 "사투리 연기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시골 오일장을 돌아다니면서 사투리 연습을 아주 많이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지난 2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57년 동안 배우로 살았다. 79세에 세상에 안녕을 고하며 친근한 엄마로, 사투리 쓰던 할머니로, 정 많은 이모·고모로 영원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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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여운계 (1940.2.25~2009.5.22)

(왼쪽부터)SBS TV 'LA아리랑'의 故여운계(왼쪽), 故여운계, 영화 '마파도' 촬영 당시 故여운계의 모습, MBC드라마 '대장금'의 故여운계 /조선닷컴, 조선DB

배우 여운계는 1958년 고려대 국어국문과 진학 후 대학극회 단원으로 활동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1950~1960년대엔 박근형 씨와 함께 '대학극의 2인'으로 불렸다. 졸업 후 1962년 KBS 공채 탤런트로 뽑혔다가, 1964년 TBS 공채 탤런트에 다시 합격해 한국 최초의 일일 연속극 <눈이 나리는데>의 시골 다방 마담 역으로 TV드라마에 데뷔했다.

20대때부터 노역 연기를 했던 그는 <아씨> <토지> <몽실언니> <사랑이 뭐길래> <LA아리랑> <청춘의 덫> <대장금> <내이름은 김삼순> <며느리 전성시대> 등의 수많은 작품에서 할머니, 어머니 등의 역할로 48년 간 활동했다. 그는 병중에 더욱 연기 혼을 불살랐다. 2007년 신장암으로 수술을 받고 2009년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약 10여편의 작품에서 감초 역할을 했다.

故 여운계는 후배 연기자들에게 존경받는 선배였다. 후배들은 탁월한 연기력과 인품을 겸비한 그를 실제 어머니처럼 모셨다. 8년 전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시청자의 엄마로 또 배우들의 엄마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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