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잔혹사

구성=뉴스큐레이션팀 권혜련
입력 2017.09.05 08:54 수정 2017.09.04 14:12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축구는 위태로운 항해를 하고 있다. 언제 배가 좌초돼 본선행이 좌절될지 모를 일이다. 지난 28년 간 의심한 적 없었던 한국 축구 월드컵 본선행은 슈틸리케호 때부터 삐걱거리더니 이제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새롭게 출발한 신태용호조차 지난 이란 전에 기대 이하의 경기를 보여주면서 많은 축구 팬들을 실망케 했다.  

지난달 31일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9차전 한국과 이란의 경기가 0대0으로 끝난 뒤 이란 선수단은 그라운드에서 서로 얼싸안았다. 6만여 홈관중 앞에서 무기력한 경기를 펼친 한국 선수단의 반응은 달랐다. 경기 종료 후 한국 선수들이 힘없이 그라운드를 걸어나오고 있다. /오종찬 기자

한국 축구는 1954년 월드컵 첫 출전 이래 60년 동안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2002년 4강 신화를 안긴 거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한 몇명을 제외하고 임기를 마치고 명예롭게 물러난 수장은 드물다. 슈틸리케 역시 쓸쓸한 퇴장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전후로 한국 축구를 스쳐 지나간 감독들의 슬픈 잔혹사를 짚었다.

월드컵 중간에 퇴진 불명예 
차범근 감독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의외의 선전을 보인 한국 축구 대표팀은 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사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미국 월드컵에서 보여준 기량 이상을 보여주면 16강 진출도 문제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44년 만의 첫본선에서 첫 승을 가져오는 것 또한 주요 관심사였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멕시코에게 역전패를 당하고 최소한 무승부를 거둬야했던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0:5로 대패한 성적을 들고왔다. 벨기에와의 경기를 하기도 전에 이미 16강행이 좌절됐다.

이에 차범근 감독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특히 수비수들의 능력이 많이 뒤졌다. 상대가 슈팅할 때 거리를 두고 말았는데 능력 탓이다. 수비수들이 애를 썼지만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패배의 원인을 선수들에게 있다는 답변을 했다. ▶기사 더보기

많은 축구인들은 0:5의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것도 모자라 대표팀 수장이 책임을 선수들에게 미뤘다는데 울분을 참지 못했다. 특히 처음 출전했던 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0:5라는 경기 결과를 보였음에도 감독이 모든 원인을 '선수들의 능력부족'으로 돌린다고 비난했다.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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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이 거세지고 축구 전문가들도 문제 삼자 축구협회는 98년 6월 21일 프랑스 파리 근교의 생컹텡 노보텔호텔의 한국선수단 숙소에서 긴급 기술위원회를 열고 차범근 감독을 퇴진시키기로 결정했다. 한국월드컵축구대표팀은 당시 차범근 감독이 끝내 중도하차하고 김평석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임명돼 벨기에 전을 치렀다. 차 감독은 한국의 각종대회 출전사상 처음으로 대회 중간에 퇴진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기사 더보기

한국 축구 위해 백의종군 하겠다
허정무 감독

98년 월드컵 기간 잠시 대표팀을 맡았던 김평석 코치 이후 대표팀 감독을 맡은 사람은 허정무 감독이다. 허정무 감독은 98년 방콕 아시안 게임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월드컵보다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국제경기였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월드컵 이상의 성적과 경기 운용 실력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번의 국제경기의 성적 역시 축구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올림픽에서는 8강 진출에 실패했고 당초 우승을 점쳤던 아시안컵에서는 3위에 머물렀다.

특히 마지막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패배 하던날 축구 팬의 실망과 분노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대한축구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의 게시판에 한 축구팬은 "한국은 축구 후진국이고, 군대축구"라고 단언했다. 허정무 감독의 교체는 물론 축구협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열성파도 많았다. ▶기사 더보기

한국축구협회는 이미 올림픽 직후 사의 의사를 밝힌 바 있는 허정무 감독의 교체가 불가피 하다고 판단했다. 축구계 안팎으로는 축구 선진국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외국인 감독을 기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허정무 감독은 감독 교체에 대해 스스로 '백의종군' 할 뜻을 밝히며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서 외국인 지도자가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돕겠다" 말했다. ▶기사 더보기

월드컵 4강 신화 이뤄내기까지
거스 히딩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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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등장한 사람이 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우리에게 0:5라는 치욕적인 성적을 안겼던 전 네덜란드 감독 거스 히딩크(Guus Hiddink)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개최라는 특수한 상황을 대비해 불러 온 외국인 감독이었다.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역대 가장 뛰어난 성적을 남겨 많은 사람들 마음 속에 국민적 영웅으로 남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우리에게 환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외국인 감독이었던 그도 월드컵 직전까지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자질과 실력을 끊임없이 의심받았다. 2002년 월드컵을 4개월 정도 앞두고 펼쳐진 미국 골드컵이 끝나자 히딩크 감독에 대한 거센 경질론이 나왔다. 골드컵에서 한국팀은 1승1무3패, 3득점 7실점의 초라한 기록으로 4위에 머물렀다. 멕시코전 PK승을 제외하곤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한 것이다. 히딩크라는 스타 감독을 앞세워 16강은 문제없다며 들떴던 한국 축구는 다시 가라앉으며 히딩크 감독의 자질을 의심했다. ▶기사 더보기

또한 히딩크 식 전술로 주목받았던 멀티플레이어 전술은 월드컵 직전까지 1년이 지나도록 선수 보직 실험만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각자 포지션을 빨리 결정해 그에 맞는 훈련에 임해야 할 선수들이 월드컵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이리저리 역할을 바꿔 훈련한다는 소식은 축구 팬들과 축구 전문가들을 불안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한국 축구의 영웅으로 기억되지만 그조차도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할 뻔한 위기가 있었다.   

포스트 히딩크를 꿈 꿨던 그들


히딩크 감독으로 꿈 같은 4강을 이뤘던 한국 축구는 여러번 외국인 감독에게 '포스트 히딩크'가 되어줄 것을 주문했다. 2002년 이후 총 4명의 외국인 감독이 "히딩크를 뛰어넘겠다"는 다짐과 함께 계약서에 사인을 했지만 그를 뛰어넘고 한국을 떠난 감독은 없었다. 그 중 몇은 한국 축구의 쓴 맛만 본 채 돌아갔다.

2003년 코엘류 감독

히딩크 감독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Humberto Coelho)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되자 외신들은 일제히 이를 보도하며 큰 관심을 표했다. AFP는 코엘류가 풍부한 국제경험과 유럽에서 쌓은 기반 덕분에 한국 감독으로 선임됐다며 그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거스 히딩크의 발자취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기사 더보기

그러나 화려했던 시작과 달리 한국과 그의 마지막 인연은 씁쓸했다. 코엘류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003년 아시안컵 예선 2차전에 FIFA 랭킹이 한참 처지는 '약체' 베트남에 이어 오만에도 패배, 충격의 2연패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아시안컵 본선에는 진출했지만 평소 우리보다 실력이 뒤진다고 평가받던 상대에게 두번 연속으로 진 충격은 선수단과 국민 모두에게 컸다.

코엘류 감독을 교체해야한다는 목소리는 2003년 불가리아와의 A매치 친선경기에서 0:1로 패배하고, 동아시아컵 일본과의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더욱 커졌다. 동아시아컵에서는 승점에서 우세해 우승컵을 차지하긴 했지만 전승을 기대했던 대회에서 특히 일본을 상대로 무승부를 경기를 끝낸 것이 깊은 실망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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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최약체 몰디브와 펼친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고 교체론이 힘에 실리면서 코엘류 감독은 사퇴를 결정했다. 그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히딩크 감독만큼 지원받지 못했다"며 "나는 자진 사퇴하는 것이 아니라 양측의 합의하에 계약을 종결하는 것"이라고 말해 자의보다는 '외부 압력'때문에 중도하차하게 됐음을 내비쳤다. ▶기사 더보기

2004년 조 본프레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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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류 후임으로 대표팀 감독이 된 조 본프레레(Jo Bonfrere) 감독은 초반부터 잡음이 많은 인물이었다. 많은 외신들이 1996 올림픽 우승과 이후 맡은 팀과의 불화와 파면 등 본프레레 축구인생의 부침을 소상하게 전했다. 본프레레 감독에 대한 외신들의 평가는 대한축구협회나 국내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부정적이었다. ▶기사 더보기

외신의 소개대로 그는 역대 감독 중에서 가장 많이 자질론에 시달린 감독이었다. 자신이 수장으로서 처음 맡은 동아시아 축구대회 중국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시작부터 축구팬들을 실망시켰다. 그는 감독으로 있는 내내 이렇다할 만한 경기 운용 실력과 선수 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월드컵을 대비해 영입한 감독에게서 축구를 지도하는 스타일, 리더십, 신인 선수 발굴 등 모든 면에서 뚜렷한 성과를 발견하기가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본프레레 감독에 대한 여론은 사우디 전에서 패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사우디아라비아전이 열린 경기장에는 경기 시작 전부터 감독을 향한 한국 축구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그리고 경기까지 0:1이라는 성적으로 패하자 축구팬들의 분노와 실망은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를 마비시킬 정도로 거셌다. 

결국 축구협회는 월드컵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감독을 교체하기로 했다. 본프레레 감독이 스스로 물러나는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협회의 경질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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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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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프레레 감독 시절 팀 장악력 부재 문제로 고민했던 대한축구협회는 딕 아드보카트(Dirk Advocaat)의 통솔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그를 새 감독으로 데려왔다. 강신우 기술위 부위원장은 "큰 대회 경험을 갖고 있으며 강한 리더십으로 선수단 전체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진두지휘했던 아드보카트 감독은  1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강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통솔했다. 2006년 월드컵 때 한국은 종합성적 17위로 16강 진출에는 아깝게 실패했지만 원정 경기 사상 첫승이라는 결과를 이룩하며 한국 축구의 희망을 확인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월드컵이 끝난 직후, 러시아 프로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히딩크 이후 계약기간을 온전히 다 채우고 아름다운 이별을 한 최초의 감독으로 남았다. 그는 고별 기자회견장에서 "한국에서의 매 순간이 즐거웠다"며 운을 뗀 후 "지도자로서 나이가 많다. 젊은 선수들과 하루 종일 호흡하고 싶어 대표팀보다는 클럽팀을 선택했다." 러시아로 가는 이유를 말했다. ▶기사 더보기

2006년 핌 베어벡 감독

핌 베어벡(Pim Verbeek)은 대표팀 사령탑으로는 역대 7번째 외국인 감독이었다. 베어벡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 팀의 수석 코치를 맡아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4강을 이끈 '지한파(知韓派)' 지도자이다. 2002년엔 히딩크를 보좌했고, 2006년엔 아드보카트 감독과 일했다. 어떤 외국인 감독보다 한국 축구를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한국 축구를 잘 안다는 그도 특유의 한국 축구 문화를 소화하기에는 버거웠던 모양이다. 2006년 아시안컵에서 베어벡 감독은 스스로 사퇴 기준으로 삼았던 4강 진출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당초 우승이 목표였던 대회에서 단조로운 전술과 부진한 경기 내용을 보여 내내 경질설에 시달렸다.

결국 그는 계약기간을 1년 여 남긴 채 사퇴의사를 밝혔다. 아시안컵 6경기에서 3골밖에 못넣는 졸전 끝에 3위에 그친 직후였다. 그는 현지 기자회견에서 "한국 팬들은 매우 경쟁적"이라고 말했다. 팬들의 기대가 너무 컸다는 뜻이다. 평소 유순한 성격으로 알려진 그의 '비(非)한국적' 성품이 한국 축구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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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와 16강으로 설욕
허정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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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대표팀을 맡은 허정무 감독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원정 사상 첫 16강의 쾌거를 이뤘다. 2007년 12월부터 2010년 까지 대표팀을 맡은 허 감독의 임기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까지였지만 16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대한축구협회는 허 감독의 유임을 희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허 감독은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2년6개월 동안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지 않았고 가족의 반대도 영향도 있었기 때문이다. 허 감독의 부인 최미나씨 등은 한국의 16강이 확정됐을 때도 축구협회 게시판 등에 '허무 축구' '허접 축구'라는 내용의 인터넷 악플(악성 댓글)이 계속 이어지자 감독직 유임을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팬들의 '냄비 속성'에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허 감독도 이날 회견에서 "인터넷 댓글을 안 본 지 10년이 넘었다"면서도 "인신공격성이 지나친 것이 많아 가족도 힘들다. 문화가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해 이런 분위기를 풍겼다.

절차도 밟지 않고 돌연 경질
조광래 감독

허정무 감독에 이어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조광래 감독은 "한국 축구는 남아공월드컵 16강에 오르며 앞으로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해 감독직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시절 세밀하고 세련된 기술로 볼 점유율을 높이는 플레이를 구사했다. 대표팀 전술도 '기술 축구'에 중점을 둬 세계 무대를 공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기사 더보기

하지만 그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5차전에서 레바논에 1대2로 패하면서 자리가 흔들렸다. 레바논전은 한국이 역대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서 패한 첫번째 경기였고, 이로 인해 최종 예선 진출을 확정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2월 예선 최종전인 쿠웨이트와의 경기를 앞두고 최악의 경우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자 축구협회는 2011년 12월 그를 돌연 경질했다. 당시 경질은 대표팀 감독 인선을 관장하는 기술위원회를 거치지 않아 절차상의 문제가 있기도 했다.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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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성배 다 마시지는 않겠다
최강희 감독

조광래 감독에 이어 대표팀 사령탑에 임한 최강희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나의 소임은 월드컵 최종예선까지"라며 "계약 기간을 2013년 6월까지 해달라고 협회에 요청했다. 이를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감독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가더라도 감독을 더는 맡지 않고 전북으로 돌아가겠다는 '깜짝 발언'이었다. ▶기사 더보기

그는 정말 딱 2013년 6월까지만 대표팀을 맡고 다시 전북 감독으로 돌아갔다. 그의 임기 만료로 다시 공석이 된 대표팀 감독 자리를 두고 이 때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이 나왔다. 대우가 좋고, 명예롭지만 한국 축구의 모든 문제를 뒤집어 쓰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계약기간에 상관없이 늘 해고의 불안이 도사리고 있기도 했다.

최강희 감독이 애초에 계약기간을 월드컵 전으로 명시하고, 예선전 준비만 하겠다고 밝힌 것도 대표팀 감독직 자리의 이런 특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2002년 이전으로 돌아간 한국축구
홍명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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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는 2013년, 2006년 독일월드컵 대표팀 코치를 맡으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홍명보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는 2009년 FIFA(국제축구연맹)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팀을 8강에 올려놨고,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한국 축구 사상 첫 동메달을 일군 일궜다.

하지만 지도자로서 어느 정도 검증을 받은 홍명보 감독에게도 브라질월드컵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선수 선발 과정부터 문제였다. 그는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를 뽑겠다'는 원칙을 깨고 박주영 등 자신의 지도 아래 오래 뛰었던 선수를 발탁해 국내 축구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또한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월드컵에서 1승 이상씩 거두며 아시아 축구의 희망 역할을 했던 한국 축구 대표팀이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2패 조 최하위 성적을 보였다. ▶기사 더보기 

당초 2015년 1월 호주에서 개막하는 2015년 아시안컵까지 팀을 이끌기로 계약했던 홍명보 감독은 유임 결정이 나온 지 일주일 만에 사퇴했다. 홍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 드려 죄송하다"며 "잘못했던 점을 반성하고 후회하는 차원에서 스스로 사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기사 더보기

본선 진출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슈틸리케 감독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4강에 올랐던 한국 축구는 이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다 브라질월드컵 참패로 2002년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울리 슈틸리케(Uli Stielike) 외국인 감독에게 희망을 걸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스타일은 한마디로 '실학 축구'. 그는 기본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사 더보기

그러나 지난해 한복을 입고 추석 인사를 할 정도로 축구 팬들에게 친근감을 표현했던 그의 상황은 2016년이 되면서 바뀌었다. 한국이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1~2차전을 모두 졸전으로 끝냈기 때문이다. 1승1무의 성적이지만 팬들은 경기 내용에 실망을 넘어 우려를 표했고 비판의 화살은 슈틸리케 감독을 향했다. ▶기사 더보기

10월 12일 끝난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4차전 이란과의 원정경기(테헤란)에서 한국은 0대1로 졌다. 이날 패배하면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승1무1패(승점 7)를 기록, A조 3위로 밀렸다. 이대로 가다간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도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이 나왔다. 월드컵 본선 진출 여부에 대한 우려는 해가 바뀌고도 계속됐다.

지난 6월 약체로 꼽히던 카타르를 상대로 2:3 패배를 하자 일명 한국 축구는 '도하의 충격'에 휩싸였다. 최종 예선 2경기를 남긴 상황에서 본선행이 불투명하자 축구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했다. ▶기사 더보기

그리고 신태용 감독

국가대표 소집 훈련 첫날 선수들을 지도하는 신태용 감독. /연합뉴스

신태용(47) 신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6일 취임 일성을 밝혔다. 신 감독은 1986 멕시코월드컵부터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까지 8회 연속, 28년간 이어져 온 한국과 월드컵의 인연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소방수'로 투입됐다.

그러나 지난 31일 한국 축구 대표팀은 이란과의 아시아 최종 예선을 0:0으로 마무리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특정 팀을 상대로 이렇게 판박이 졸전을 거듭한 적은 없었다. 전문가들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90분"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평소 논리적인 '달변가' 신태용 감독이 이에 대해 내놓은 해명도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신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이동국이 90분을 뛴다고 해서 골을 넣는다는 보장은 없다"면서도 "단 1분을 뛰더라도 이동국의 결정력을 믿었다"고 했다. 기자석에서 "이게 무슨 뜻이냐"고 서로 묻느라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이날 신태용 감독을 본 많은 축구계 인사는 "평소 자신만만했던 신 감독 얼굴과는 달랐다"고 했다. 월드컵 본선행 위기 상황에서 느닷없이 A대표팀을 떠맡은 신태용 감독이 전에 없는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였다. ▶기사 더보기

이미지 출처 = 조선DB

[신태용 감독의 유쾌한 리더십] 申에게는 '난놈'의 DNA가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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