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과 권력, 그들의 말로는

구성=뉴스큐레이션팀 정영민
입력 2016.10.28 08:33 수정 2016.10.28 14:45

박근혜 정권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의 정체가 점차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충격과 실망감이 극에 달했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한 25일 오후에는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1~10위가 모두 대통령과 최순실에 관한 것으로 채워졌다. '탄핵' '사과' '하야'와 같은 부정적인 검색어가 대부분이었다.

/조선DB

청와대는 대국민사과를 한 뒤 한숨 돌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태가 쉽게 잠잠해질 것 같지 않다. 이번 사태처럼 일반인이 국정 전반에 관여한 일은 대한민국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러나 권력자 옆에서 부를 축적하고 사익을 취한 최순실의 수법은 과거 몇몇 여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역대 정권에서 '권력형 비리'를 일으킨 그녀들의 말로는 어땠을까?

1982년, 전두환 정권의 장영자

그녀는 누구인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대학시절 '메이퀸'


1944년 전남 목포에서 유복한 집안의 셋째 딸로 태어난 장영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인척이었다. 큰 언니의 남편, 즉 장영자의 형부가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던 전 전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이었던 것이다.


장영자는 대학시절 '메이퀸'으로 뽑힐 만큼 미모가 뛰어났으며 언변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졸업 직후부터 두 번의 결혼 실패를 거치며 생활고를 겪었고, 이로 인해 사채업계에 발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은 중앙정보부 차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권력자인 이철희였다. 이들 부부는 대통령의 인척이라는 배경을 활용해 은행장과 기업인들에게 접근한 뒤, '건국 이후 최대 금융사기'라 불리는 *어음사기사건을 벌인다. 돈이 필요한 기업에 쉽게 거금을 빌려주던 장영자는 '큰손', '장 여인' 등으로 불렸다. 사건 당시 장영자의 나이는 38세였다.


장영자의 말로
일평생 옥살이 하다 71세 할머니로 출소


장영자는 어음사기사건으로 당시 법정 최고형이었던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한다. 이후 가석방과 광복절 특사로 두 번 세상 밖으로 나올 기회가 있었지만, 또다시 일을 벌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잘 알려진 구권화폐 사기사건인데, 이로 인해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꽃다운 미모의 30대 여인은 권력과 지위를 등에 업은 연이은 사기 행각으로, 71세의 노인이 되어서야 감옥을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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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희·장영자의 어음사기사건
이철희-장영자 부부가 자금 압박을 받는 기업들에 접근해 사채를 빌려주고, 그 대가로 차입금의 2~9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유통한 사건. 장영자가 자금을 빌려준 기업은 공영토건, 일신제강, 라이프주택, 삼익주택, 태양금속, 해태제과 등 6개, 어음 총액은 2624억 원이었다. 그러나 기업들이 실제 빌려 쓴 금액은 576억 원에 불과했다. 이 사건으로 일신제강과 공영토건은 부도가 났으며 조흥은행장과 상업은행장, 기업체 간부 등 30여 명이 구속됐다.

1996년, 김영삼 정권의 린다 김

그녀는 누구인가?
무기 사업에 돌연 등장한 미스테리한 여인


1953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린다 김(한국명 김귀옥)에 대해선 학창시절 미국으로 갔다는 것 외에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2001년 출간한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고등학교 2학년 때 10년 연상의 재벌 2세 유부남을 만나 살림을 차렸다가 남자 집안의 반대로 헤어진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스스로 밝힌 것이 전부다. 젊은 시절 가수와 CF 모델 등으로 활동했다는 기록도 있다.


린다 김이 무기 로비스트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 건 김영삼 정부에서 실시한 백두사업의 무기 입찰에 참여하면서다. 일명 *린다 김 무기 로비사건은 그녀를 고용한 미국의 E-시스템사가 무기 응찰업체 중 가장 비싼 가격을 제시했음에도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자, 탈락한 경쟁업체들이 의혹을 제기하며 불거졌다. 조사 결과, 최종 사업자 선정 3개월 전 당시 이양호 국방부 장관이 린다 김을 만난 사실이 확인됐다.


린다 김의 말로
軍 주름잡던 여인, 커피에 필로폰 타 마시다 '쇠고랑'


린다 김은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 불법 로비를 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게 된다. 특히 이양호 전 장관과 국회의원 등 3명으로부터 받은 '야릇한' 내용의 연서가 공개되며 더욱 세간을 시끄럽게 했다. 미모의 로비스트와 정부의 핵심 인물들이 얽힌 사건이었기에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질타를 받았다. 이에 린다 김은 "몸 로비를 한 적이 없다"며 "난 외국에서 상당히 인정받는 로비스트인데, 한국에서만 섹스 스캔들의 산 증인인 양 떠든다"고 항변했다. 수사 결과 린다 김의 불법 로비 의혹은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공군 중령 등으로부터 2급 군사기밀을 빼낸 혐의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재판 후 미국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던 린다 김은 올해 다시 미디어에 등장했다. 돈을 빌린 뒤 갚지 않고 채권자를 폭행한 혐의였다. 이어, 자택에서 커피에 필로폰을 타 마신 것이 적발되면서 결국 63세의 나이로 쇠고랑을 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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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다 김 무기 로비사건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2,200억 원 규모의 백두사업(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 당시, 무기 중개상이었던 린다 김과 국방부 장관 등 군과 정치권 인사들의 부적절한 관계 의혹이 제기된 사건. 당시 기사에 따르면 린다 김은 빼어난 미모와 뇌물을 활용해 군 간부들에게 접근, 무기 구매계획·예산 등 군 기밀을 빼냈다. 이 사건으로 예비역 공군 장성과 현역 장교 등 6명이 구속됐으며,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이 물러났다. 그러나 당시 불거졌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 없었고,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남아있다.

2007년, 노무현 정권의 신정아

그녀는 누구인가?
하루아침에 추락한 '미술계의 신데렐라'


1972년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출생한 신정아는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성곡미술관 큐레이터와 동국대학교 조교수라는 타이틀에 이어, 광주 비엔날레 심사위원에까지 선정되며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불렸다. 세간의 부러움을 사던 그녀가 추락하게 된 건, 학력 의혹으로 불거진 *신정아 사건 때문이었다.


신정아의 미심쩍은 박사학위와 비엔날레 심사위원 선정 과정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자, '윗선의 비호를 받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실제로 당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 해외 출장 중 직접 동국대에 전화를 걸어 "더 문제 삼지 말라"고 했다는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 신정아는 자신과 변 전 실장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보도가 쏟아지던 2007년 7월, 미국으로 도피 잠적했다가 두 달여 뒤 공항에서 바로 검찰로 연행됐다.


신정아의 말로
용서받지 못한 '불륜녀'


학력 위조로 시작된 이 사건은 당시 환갑에 가까운 청와대 정책실장과 30대 여인의 불륜에 좀 더 초점이 맞춰졌다. 서로가 주고 받았다던 100여 통의 이메일 중 공개된 일부에는 '성적인 관계'를 암시하는 표현이 있어 대중들의 분노와 비웃음을 샀다. 한 언론에서는 신정아의 누드사진이 공개돼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엘리트 공무원이던 변양균 前실장은 옷을 벗고 말았는데, 후에 그는 "신정아는 내 생애 유일한 시련이었다"고 회고했다.


신정아는 학력을 속여 교수직을 얻고 미술관 공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2009년 보석으로 석방됐다. 이후 스스로의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집을 발간하고 큐레이터로 복귀한다. 최근까지도 언론 인터뷰와 방송에 종종 얼굴을 내밀고 있지만, 대중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우리는 연인 사이였다"고 쿨하게 인정한 그녀는 대중들에게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불륜녀'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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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아 사건
학계·문화·연예계 등 대한민국에 한바탕 학력 검증 바람을 일으킨 계기가 되는 사건. 동국대 이사였던 장윤 스님이 해당학교 조교수던 신정아의 '가짜 박사학위'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실제 신정아는 대학 중퇴 학력으로, 그녀가 주장하던 예일대 박사학위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후 변양균과 신정아의 가십성 이슈 위주로 사건이 진행됐으며, 신정아의 교수 임용 및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선정 과정에서 압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수사는 증거불충분으로 끝났다.
2016년, 박근혜 정권의 최순실

그녀는 누구인가?
말 한마디면 다 되던 '대통령의 여인'


박근혜 정부 최대 정치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인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은 1956년 최태민 씨의 다섯 번째 딸로 태어났다. 박근혜 대통령보다 4살 연하이며, 대통령과 절친한 관계였던 아버지 최태민의 소개로 스무 살 무렵 박 대통령과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2006년 박 대통령이 선거 유세 중 면도칼 피습을 당했을 때 극진히 간호한 인물 역시 최순실이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한 달 여 전만 해도 그간 소문으로만 떠돌던 '비선 실세'가 이렇게 실체를 드러내게 될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청와대 주도의 예술·체육단체인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수상한 설립 및 자금모금 과정이 드러나고,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대 입학 비리가 불거지며 마침내 최순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현재까지 밝혀진 최순실의 국정 농단 의혹들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아무런 직책도 없는 일반인인 최순실은 청와대 관료가 전달해주는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보고 직접 수정했으며, 극비 사항인 대통령의 순방일정과 안보 관련한 사안들도 모두 공유 받았다. 최순실 것으로 추정되는 컴퓨터에서 이를 입증할 파일들이 대거 발견됐다. 이밖에도 최씨는 대통령 측근으로서 국정 전반에 간여할 수 있는 지위를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온갖 혜택을 받으며 살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사안의 중대성과 지금의 국민적 분노로 볼 때 이들 모녀의 말로는 평탄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권선징악'으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 불분명한 최씨 모녀의 행방만큼 그들의 앞날도 아직은 안갯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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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정권마다 '권력형 비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건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여성들 외에 남성들이 얽힌 사건까지 언급하자면 셀 수 없이 많다.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 같은 '권력형 비리'가 터질 때마다,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 일반 국민들은 절망스럽기만 하다. 이 어마어마한 정치 스캔들의 끝은 어떻게 결론이 날지, 5천만 국민의 눈이 지금 두 여인에 쏠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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