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共和國의 가치에 대한 자부심, 한국에선 왜 이상하게 취급받나"

입력 2016.10.24 03:00 수정 2016.10.24 08:45

['북한의 프로파간다' 연구해온 美國人… 브라이언 마이어스 교수]

"北에는 김일성 부자 銅像 3만개… 자신의 체제에 대한 긍지 있어
광화문엔 세종대왕·이순신 동상… 공화국의 가치에 관한 건 全無"

"북한은 '공산주의' 아닌 日帝를 모방한 '극우 체제'
민심 잡기 위해 도발 감행 '억압된 공산체제'보다 더 위험"

"한국은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공화국(共和國)입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이런 상황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공화국(북한)과 경쟁 중이지 않습니까. 북한은 민족주의가 강하면서도 자신의 공화국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우월해도 체제 경쟁에서는 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부산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브라이언 마이어스(53) 동서대 교수를 만났다. 북한의 문화와 프로파간다(선전·선동)를 연구해온 그는 국내 언론보다 서구 매체에서 더 자주 인용된다. 몇 년 전 미국에서 '가장 순결한 민족(The Cleanest Race: How North Koreans See Themselves and Why It Matters)'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의 '글로벌한' 이력은 흥미롭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 고향인 버뮤다(영국령)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남아공으로 이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독일로 건너가 대학을 다녔다. 1984년 겨울 미 8군에 군목(대령)으로 근무하던 아버지를 찾아오면서 한국과의 인연이 닿았다.

"그때 서울 명동에서 '약국' 간판을 보고 신기한 글자체에 반했습니다. 한글 체계는 과학적이어서 이틀 만에 글자를 배울 수 있었지만 말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 뒤 휴학을 하고 다시 서울로 와 정식으로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국문학과 출신에게도 생소한 '한설야(韓雪野·1900~1976년 월북 작가) 연구'다. 이는 영어로 출간된 최초의 북한 문학 연구서(1994년)로 평가된다.

"한국 여자와 결혼한 뒤 독일로 되돌아가 '소련학'으로 석사 학위를 따니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공산권 붕괴로 '소련학'을 공부한 게 도로 아미타불이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타이밍이었습니다. 남은 공산주의 국가는 북한이니, 김일성 개인 우상화 작업을 추진했던 한설야로 주제를 바꿨습니다. 그런데 연구할수록 북한은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라 '극우 이데올로기 체제'였습니다."


 

마이어스 교수는 “한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민족이지 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 최보식 기자
―북한을 '극우 체제'로 정의하는 게 흥미롭군요.

"북한은 남한과 달리 친일파를 청산했다고 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습니다. 최승희·김사량·송영 등 친일파들이 월북해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김일성의 개인 우상화도 일제강점기의 유산입니다.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자신을 '대원수'로 지칭했는데, 1945년 이후 북한에서도 김일성을 '대원수'라고 했습니다. 히로히토 일왕은 사진에서 일본 민족의 순수성을 상징한다는 '백마(白馬)'를 탄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김일성 역시 흰말 타고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북한 체제를 '공산주의'로 보면 북핵 문제에서도 정확한 대응을 못 하게 됩니다."

―단도직입으로 북한 정권과의 비핵화 협상은 과연 가능할까요?

"북한은 개정헌법에서 '공산주의'란 용어를 모두 뺐습니다. 공식적으로 자신의 체제를 '선군(先軍)주의'라고 했습니다. 이는 1930년대 일제와 나치 독일의 군국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겁니다. 북한이 '공산주의'라면 경제적 대가로 핵무기 감축 협상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선군'을 내세우는 극우 체제는 그런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지속돼 북한 경제가 파탄 나도 버틸 것으로 봅니까?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한국에 뒤처졌습니다. 이런 북한 정권은 핵무기와 군사 강국을 내세워 체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만약 핵을 포기하면 '남한의 2류(流)'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이는 북한 정권의 정치적 자살(自殺)을 의미합니다."

―스위스 유학을 한 김정은이 세습했을 때 북한 체제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1994년 핵 협상 결렬로 전쟁 위기로 치달았을 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하자, 북한 선전 기관들은 '북핵 위협에 항복해 평양을 방문했다'고 선동했습니다. 이 공로는 그 직후 집권한 김정일에게 돌아갔습니다. 북한에서도 권력 세습의 정당성과 민심 동향에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을 '선군주의 총사령관'으로 내세우기 위해서는 핵이든 뭐든 그의 치적(治績)으로 돌릴 수 있는 일을 꾸며야 합니다."

―민심을 잡기 위해 김정은의 도발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까?

"극우 정권은 감시 체제의 공산 정권과 달리 억압만 할 수 없습니다. 국민을 열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핵과 미사일 실험만 거듭하면 주민들의 관심이 식을 수 있습니다. 그때쯤 도발을 생각하게 됩니다. 문제를 계속 일으켜야 민심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이 '억압된 공산주의' 정권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겁니다."

―북한을 '거대한 수용소'라고 묘사하기도 하는데, 억압과 감시 체제가 아니라는 겁니까?

"저는 북한을 그렇게 억압적인 국가로 보지 않습니다. 북한을 방문해 보니 유신(維新)과 5공 시절의 한국을 연상케 했습니다."

―'극장(劇場)'에 들어간 것처럼, 북한이 보여주는 것만 보고 온 것은 아닙니까?

"금강산과 개성 관광을 했고, 그 뒤 2011년 미국 NGO 직원과 함께 평양·사리원·원산·남포를 여행했습니다. '극장' 같다는 느낌이 있었고 인위적인 모습도 많았지만, 과거 동독처럼 '국가 수용소' 같지는 않았습니다."

―북한은 동독보다 더 폐쇄적이지 않습니까?

"제가 서독에 살던 1984년 동독에 여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때 지하철을 타고 동독에 들어갔다 나오면 딱 하루 만인데도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비밀경찰의 감시가 피부로 느껴졌으니까요. 그런 경험과 비교하면 북한은 허술했습니다. 장마당에서 단속 경찰과 아줌마가 싸우는 장면이 찍힌 비디오를 봤지 않습니까. 공산 감시 체제라면 어림없는 일입니다."

―늘어나는 장마당에서 북한 변화의 기대를 거는 전문가들도 있는데요?

"장마당이 북한 체제를 크게 위협하지 않습니다. 장마당의 증가는 '선군(先軍)'을 위해서는 주민들을 먹여 살릴 수가 없으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뜻입니다.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자기 정권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북한 정권의 취약점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저는 연평도가 피격됐을 때(2010년) '이제 북한은 끝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 같았으면 엄청난 보복을 했을 겁니다. 그때 한국이 군사적 우월함을 보여줬으면 김정일 정권은 흔들렸을지 모릅니다. 선군주의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믿음이 깨졌을 테니까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발생 뒤 뉴욕타임스에 '한국인들이 국가보다는 민족 개념에 더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지요?

"한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민족이지 국가가 아닙니다. 여중생이 미군 탱크에 치여 숨진 사고로 '반미 촛불시위'(2002년) 같은 이벤트를 목격한 뒤부터 그걸 확실히 느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독도 문제에선 분노하면서, 북한 정권의 만행에 대해선 같은 민족으로 여겨 그렇게 분노하지 않습니다."

―선생의 책에서 보니, '이승만은 광복절을 선언하는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요?

"이승만은 분단 상태에서 체제 경쟁을 벌일 국가 건설의 중요성을 잘 몰랐습니다. '남한에 한반도 인구의 3분의 2가 있고, 역사적 수도와 조선의 정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식이었습니다.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북한 국기와 비교하면, 태극기에는 뚜렷한 체제 상징이 없습니다. 공화국의 가치가 담겨야 할 애국가에도 단일민족의 정서만 들어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절과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일 혹은 건국절, 어느 쪽이 우선입니까?

"1945년은 일본의 항복(降伏)에 불과했고, 그 뒤 미국이 왔습니다. 나쁜 놈이 가고 좀 더 나은 사람이 왔지만… 완전히 해방됐다고 볼 수 없는 겁니다. 1948년 정부 수립이 자주성을 얻은 날입니다."

―좌파 진영에서는 이승만의 친일(親日) 정부 수립으로 분단이 고착됐다는 비판을 합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은 노예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공화국은 단두대에서 피를 묻히고 탄생했습니다. 도덕주의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 뒤 대한민국이 구현해온 가치에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자신의 공화국에 대한 프라이드가 없는 게 저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공화국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면 이상하게 취급받지 않습니까."

―한국인이 공화국의 가치에 대해 자긍심이 없다는 걸 어떻게 느끼게 됐습니까?

"한국에 오자마자 일주일 만에 9·11 사태(2001년)가 터졌어요. 내가 직접 두들겨 맞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연평도 피격 사건(2010년)이 났을 때 한 서방 기자가 노래방에 들어가는 한국 대학생들을 취재했습니다. 학생들은 웃으면서 '연평도는 여기서 멀잖아요'라고 답변하더군요. 이런 나라를 왜 미군이 와서 지켜줘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권(政權)에 대한 불만과 반대가 그렇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둘을 동일시합니다. 나쁜 정권이 집권하고 있기 때문에 공화국을 좋아할 수 없다는 거죠. 정권 위에 국가가 있는 겁니다. 나치를 경험한 서독 사람들은 '국가'를 앞세우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었지만, 자신의 민주적 가치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는 좌파·우파와 무관한 겁니다. 이런 공화국의 가치가 동독에 투영됐고, 그것이 서독에 대한 동독 주민들의 반감을 줄였고 동독을 민주화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위는 판명된 것이고, 대부분 북한 주민들은 한국행(行) 열망을 갖고 있을 겁니다.

"교육과 선전·선동에 의한 것이든 체제에 대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는 쪽은 북한입니다. 북한에는 김일성 부자 동상만 3만개쯤 됩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동상이 공공장소에 몇 개 있습니까. 서울 중심인 광화문에도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습니다. 공화국의 역사와 가치에 관한 것은 없습니다. 자신의 공화국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면 북한을 적극적으로 이끌 수 없습니다."

그의 첫 직장은 벤츠자동차 회사였다. 중국 베이징 지사에서도 5년간 근무했고 일본에도 잠깐 살았다. 그 뒤 미국으로 돌아가 '애틀랜틱' 잡지의 편집자로 일했다. 아내의 고향인 한국에 정착한 것은 2001년부터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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